[자료 2] 1심 최후진술

 

 

민주화를 위한 결단

 

 

먼저 본인과 본인의 사건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정치군부에게 당한 고문과 범죄행위에 대해 규탄, 항의한 국내의 민주인사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민주인사, 종교계인사, 양심수 가족들, 언론인들, 그리고 외국인과 외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격려로

본인은 남영동에서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시 인간으로 회생하여 복귀하게 됐습니다.

이분들의 격려와 항의로 정치군부의 음모의 그물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 뜨거운 관심과 격려에 보답하는 길은 오직 민주화 실현을 위한 역군으로 다시 회생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본인에 대한 이 사건은 두 개의 잘못된 가정과 정치군부의 보복에 기초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첫째, 오늘날의 민주화 열기가 김근태와 민청련에 의해 초래되었으며

 

둘째,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정치군부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의 배후는 명백히 존재하며,

그것은 분명히 김근태일 것이라는 단정적인 가정 하에서 이를 입증하기 위해 그리고 만들어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하여 정치군부의 범죄행위와 은폐행위가 형성되었습니다.

 

따라서 본인은 이 사건에 대해서 재판부는 마땅히 그리고 반드시 공소기각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본인의 사건과 고문 및 은폐행위를 두 개의 사건으로 분리해서 접근한다면,

또한 실체적 진실과 이러한 범죄행위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헌법과 법률위반 및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담당하고 있는 책무를 사법부 스스로가 포기하는 것이며,

계속 이러한 시각을 갖게 된다면 이는 고문자를 옹호하고 고문을 장려할 뿐 아니라

정치군부에 반대하고 민주화 실현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대의를 배신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70년대 긴급조치 시대에 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절망적 시대를 10 여년 이상 지내며 살아왔는데,

당시 독재자들은 이른바 국가안보라는 미명아래 수많은 사람을 교도소와 감옥, 고문장으로 보냈습니다.

 

그때 법원과 법관은 이를 합리화시키고 추인, 협력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80년 5월 17일을 전후하여 암담한 상황 속에서 국민들이 좌절과 공포로 보낼 때도

정치군부는 또다시 이른바 국가변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많은 사람들을 교도소로 보냈으며,

그 때도 법원과 법관들은 이를 무기력하게 추인하고 협력했습니다.

 

85년 중반 이후 본인이 있는 서울구치소에는 2백 여 명 이상의 많은 수인들로 꽉 찼는데,

이 나이어린 학생들이 본 구치소에 구속된 것은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서입니다.

며칠 전 면회 장소에서 나이어린 학생을 만났기에 몇 학년이냐고 물었더니 대학 1학년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오늘의 상황에 우리는 매우 슬프고, 이것에 굴종할 수밖에 없는 법원과 법관,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정치군부와 법관의 정치적, 물적 독립성를 파괴하는 그 귀결점에 결국 나이어린 학생들이 감옥에 갇히면서도

정치군부에 반대해야 되는 이런 비극적인 현실을 오늘 또다시 낳았던 것입니다.

 

나는 본 사건을 시대의 불행 중 하나라고 봅니다.

입장들은 서로 다르지만 그 동안 이 공판에 참여하고 고충과 어려움을 겪어온 재판부, 변호인들, 검찰관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이 시대 우리 사회의 비극으로서 우리가 같은 공감대를 갖고 통곡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이 이 공판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민주화실현을 위해 국민으로서, 그리고 자기 자리에서

민주화를 향해 나가는데 기여하고 자극이 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충심으로 희망합니다.

 

본인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일제치하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배웠는데, 그 분들 중의 일부가 일제의 탄압과 생활고로 인해

좌절하고 일제의 폭거에 침묵하고 나아가 그들의 주구배가 된 것에 인간적으로 부분적으로는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갔었습니다.

 

또한 70년대 암흑과 같은 긴급조치 시대에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독재에 항거했는데, 그 과정에서 투옥되고 박해받은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당시의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대열에서 멀어져 가고 침묵을 지키는 것을 보며 '왜 극복하지 못할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남영동에서 당한 고문과 그 후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지배자들의 조직적 폭력과

박해를 뚫고 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 되며 용기있는 일인가를 깨닫게 됐습니다.

 

나아가 본인은 이러한 70년대에 한번 투옥되면 원스타, 세번 투옥되면 쓰리스타가 되는,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어떤 의미에서는 어깨에 힘을 주는 이러한 민주인사들에 대해 이해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꼭 마땅하게 생각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적 박해와 폭력적 탄압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이 시대의 운명과 더불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이 사회로부터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하고 쓰리스타, 포스타 나아가서 원수로 칭송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개인, 인간은 정치군부의 폭력적 탄압에 굴복하고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은 체포된 이래 수많은 굴종을 강요당했습니다.

 

두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고, 아니 고통 없이 죽여 달라고 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그마한 저항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또다시 저들에게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지금, 본인은 수많은 사람들의 격려가 있기 때문에

다시 민주화대열에 한 사람으로서 참여할 것을 결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근태 개인은 앞으로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김근태가 민주화 대열에서 당한 고난이 우리 사회에서 열 명, 그리고 새로운 백여 명의 민주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창출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 민주화운동은 이미 폭력적 탄압 아래서 굴복하고 좌절해 가는 사람 숫자를 열 배, 스무 배로 보충하고도 남을 충분한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동조하는 배후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난 80년 5.17과 광주사태 이후 우리사회에 새로운 민주화열기를 고조시키고

물러설 수 없는 민주화실현의 몇 단계를 진행해 온 것만 봐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후반은 인류의 위대한 각성의 시대입니다.

20세기의 수치라던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에서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다양성과 합의와 토의를 통해 민주적 사회로 진행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70년대에 신흥공업국으로서 국제무대에서 뻐기고 많은 경제발전 국가들에 의해서 칭송을 받던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에서도

적과 동지, 폭력적 대응 이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던 군사정권으로서는, 이른바 국가안보는 물론

경제발건과 민생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해졌고, 이제 라틴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군사정권은 퇴진하고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서서 이른바 통치는 물러나고 정치의 사회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저 필리핀에서 지금 위대한 민주화의 승리의 나팔이 울리고 있습니다.

민주화 승리와 민중승리의 깃발이 올려졌습니다.

아키노 상원의원의 하염없는 눈물과 통곡, 뜨거운 피로써 차디찬 시신 위에서 그리고 필리핀 민중의 결단과 투쟁에 의해서

오늘 필리핀 민중의 승리가 다가온 것입니다.

 

정치군부는 이른바 국가안보를 운위할 자격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특권유지와 정치적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서부전선을 비운 채 서울로 진격했으며,

국민의 군대의 보안을 유지해야 될 보안사령부가 국민을 탄압하고 민주적 질서를 기본적으로 훼손시키는 장치로 기여하고 역할을 한

정치군부가 오늘날 국가안보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정치군부는 헌정질서를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참모총장 공관과 국방부에 총질을 하여 민주적 기본질서를 유린한 자들이 얘기하는 헌정질서라는 것은

근원적으로 정치군부의 특권에 대한 보호를, 정치군부에 대한 이의제기를 짓밟고

오직 굴종과 폭력적 탄압을 합법화시키고자 하는 하나의 장치적 언어에 불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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