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문용식, 이을호, 김근태

 

원심법원은 정치군부의 압력과 협박에 굴복하여 민청련을 이른바 이적단체 결성으로 인정하는 등 수치스런 과오를 저질렀다.

원심법원은 사전에 강제적으로 조성된 편견에서 해방되지 못했으며, 사실을 오인하고 채증법칙을 위반하고 심리미진의 잘못을 범했으며,

또한 법령을 위반하여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원심법원은 이적단체 결성이라고 하는 부분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든 국가 보안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인정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저 더러운 남영동 수사기록에 의존했다.

그것을 실체적 진실로 전제하고 인정하는 것이 공판과정에서 은연 중 드러났고,

때로는 편견과 예단에 사로잡혀 유죄를 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을호, 문용식, 그리고 최민화씨의 원심법정 중에서 증언과 검찰수사단계에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

자술서 등에 서로 모순되는 점이 있다.

이것을 '진실을 은폐하려고 하는 기도'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감추려고 하는 사건 해결의 열쇠는 남영동 기록에 준비되어 있다.

더구나 그 기록 내용이 체계적이며 비교적 합리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실체적 진실이 이미 훌륭하고 규명된 것이고,

사실상 더 다툴 여지가 없는 것이다'라고 추정한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이처럼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재판은 끝나 있었던 셈이다.

다만 형식적으로 검찰에서 있었던 피의자 신문조서, 진술서에 손도장을 찍은 적이 있었던가를 공판정에서 확인하고는

그것으로 유죄판결을 내려버린 것이다.

이것은 서성 판사가 말한 다음과 같은데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법정에서 이을호, 문용식, 최민화 등 각 증인에 의해 진정이 성립된 조서, 자술서를 검찰이 갖고 있지 않았다면

기소 제기조차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누가 손도장을 찍으라고 했느냐? 원망하지 마라. 그것은 당신들 탓이다"라는 뉘앙스를 가진 것이었다.

혼란과 공포속에서 찍은 손도장, 그것이 이 사건의 증거이자 유일한 유죄의 증거가 돼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문용식씨가 이을호를 물고, 이을호씨가 나를 물어서 확대된 사건이다.

다른사람으로 확대되는 그 사이사이마다 매개 수단이 되었던 것은 바로 잔인한 고문이다.

9월 초 이틀 또는 나흘 정도 차이로 문용식, 이을호, 그리고 내가 차례로 남영동에 끌려갔다.

그곳에서 세 사람은 모두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같은 상태였고, 칼잡이들에 의해 무참하게 회쳐져 버린 것이다.

혹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완전무결하게 짓밟혀져 버렸다.

 

세 사람을 한 곳에 잡아 놓고 고문을 가하고, 고문을 통해 튀어나온 사소한 사실을 확대시키고,

혹시 서로 모순되는 것은 조정, 일치시켰는데, 이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강제되어 획득한 것을 남영동 수사관들은 거듭된 회의를 통해 체계를 잡고,

미진한 부분 또는 비합리적 부분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은 또다시 고문을 통해 보완, 수정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축을 이루었던 것은 상부인 정치군부에서 거듭 요구하고 지시하는 정치적 활동에 적합하도록 하는 것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고문이 단 두차례로 끝나지 않고 열번이나 계속된 이유가 이때문이다.

남영동 사람들의 거듭된 회의와 그에 뒤따르는 지겨운 고문은 수사기록을 점점 더 피로 물들이는 한편,

소위 그 내용을 체계화시키고 풍부하게 만들었으며, 그럴듯하게,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데에 성공했다.

 

남영동에서 나에 대한 부신문관이었으며, 초기에 가장 악질적으로 고문을 지휘했던 백남은은

"당신들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우리들의 중지에는 못 당한다"라고 말하고 뽐내었다.

남영동 사람들은 조무래기 경찰들이 아니었다.

어찌보면 개인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정치군부의 통치에 반드시 필요한 집단임을 이렇게 증명했다고도 할 수 있다.

 

고문이 가해지고, 계속해서 가해진 데에는 위에서 말한 것 이외에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완전히 그리고 철저하게 세뇌시키고 그럼으로써 부정할 수 있는 심리적 힘이 말살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혹시 검찰이나 법정에서 강제된 것을 번복하거나 부정하려고 할 때는 큰 심리적 동요, 불안, 혼란이 발생토록 한 것이며,

구절구절마다 서려 있는 고문의 기억, 그 고통과 공포가 생생하게 되살아나도록 한 것이다.

 

나는 고문대 위에서 이미 강제하여 배운 것을 암기하고 복습하고, 또 되풀이해서 공부했다.

그럼으로써 성적이 좋다고 칭찬도 받았고, 머리가 뛰어나다는 찬사도 여러번 들었다.

고문대 위에서 고문을 받으면 극도의 고통과 공포, 혼란이 일어나고 모든 현실이 무의미해지는데,

한가지 펄펄 살아나는 것은 고문자들의 음성, 그 요구이며 그에 응답하는 나의 암기능력, 명령에 순순히 따르고 모방하는 능력이었다.

고문대 위에 묶여 있을 때 들려왔던 고문자들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이었고,

그에 회답하는 나의 떨리는 음성, 순명하는 마음가짐은 저 하나님 명령을 귀기울여 듣는 아브라함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나만의 일은 아니었고, 이을호씨, 문용식씨 모두 마찬가지였다.

고문은 내가 훨씬 더 가혹하게 여러번 받았지만, 개인의 인격동요와 붕괴에 미친 영향은 두 사람 모두 극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이을호씨 경우에는 정신분열적 혼란이 격발되었으며, 문용식씨는 아직 어린 나이어서 그 충격에 도저히 견녀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공황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

 

인격의 결정적 동요와 붕괴상태에서 검찰로 넘어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실이 올바르게 밝혀지고, 자신을 제대로 방어한다는 것은 애초에 글러버린 것이다.

고문과 협박, 세뇌로 야기된 정신적 위기상황이 구치소로 넘어오고 검찰에 송치되었다고 해서 며칠 새에 진정될 수는 없다.

고뇌와 공포로 물들어 있는 사항에 대해서 검찰이 신문할 때 이성적으로 대답하고 대처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더구나 이을호씨와 문용식씨 그리고 나는 각각 서 있는 위치에 차이가 있어서 자신에게 위험하고 절박한 것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며,

또한 이러한 위기와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에도 차이가 났다.

때문에 남영동에서 기막힌 솜씨로 조합되고 조립된 것으로부터 일정하게 이탈하며 들쭉날쭉한 결과가 있게 된 것이다.

남영동은 본래 일정하게 삭감될 것을 예측하고 미리 크게 부풀리고 공갈쳐 버렸던 것이다.

 

송치된 이후에서 이을호씨에게는 완화된 형태이긴 하지만 여전히 위험한 외적 현실이 덧씌워져 압박해 왔을 것이며,

남영동 고문에서 이미 격화되기 시작했던 내적 현실의 위기, 정신적 갈등과 분열은 오히려 시간과 더불어 심각해져 갔을 것이다.

이처럼 내외적 현실의 위기적 상황이 서로 상승적으로 작용하여 상태를 악화시켜 나갔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이런 자기 주체성, 동일성의 위기로부터의 탈출,

그리하여 인격의 붕괴를 회피하고 중지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있었겠는가.

나머지 모든 것은 마땅히 주변적이고 부차적이었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아마도 문용식씨는 반국가단체로 몰려고 하는 공격으로부터 민추위를 방어해 내고,

이것과 관련된 여러 사실을 분명히 해내는데 혼신의 힘을 쏟았을 것이다.

반국가단체로 몰릴 경우, 그것은 문용식씨 자신은 물론

민추위 회원들의 안전에 거의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가하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것만 사실대로 검찰이 받다준다면, 아마 나머지는 얼마든지 양보하고 그냥 인정해버릴 수 있었을 것이리라.

 

검찰수사 단계에서 이처럼 나에 관한 사항은 이들 두사람에게 당시 한낱 주변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차적인 것은 주어 버리고, 절박하게 중요한 것은 시급하게 획득해야 했을 것이다.

당시 이을호씨에게 중요했던 것은 가중되고 있는 강제수사와 공격적 질문과

더불어 닥쳐오는 그 위험으로부터의 해방, 아니 적어도 차단이었을 게다.

정상적인 사람도 한달 이상 완전히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강제수사를 받는 경우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이상심리에 빠지게 마련인데,

지독한 고문을 받고 정신분열적 갈등과 혼란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을 이을호씨의 경우,

끊임없이 밀어받치는 검찰 강제수사의 중압을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얼마동안은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시시각각 심해져가고 있는 자신의 내적 현실에 모든 주의를 빼앗기기 시작하면서

외적현실로부터 철수해 갔던 흔적이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보인다.

마침내 검찰의 요구와 기대대로, 이른바 이적단체 결성을 내주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의 의미와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했을 것이겠고.

 

문용식씨는 민추위를 반국가단체 결성으로 인정하라는 강요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견디면서, 다른 것들은 얼마든지 주었을 것이다.

나와 관련되었다고 하는 것은 - 판시 사실2중 나항 - 당시 문용식 씨에게 나머지 중의 나머지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용식 씨 공소장에서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 사실로 봐서도 그렇다.

검찰 수사가 뭐 시장의 장사처럼 주고받는 것은 아니고, 그래서도 안되겠지만 경험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정치적 사건에서 특히 근래에 생긴 이사건, 또 비슷한 사건에서처럼 증거란 게 모두 말과 고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

주고받고 하는 흥정과 거래가 검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치군부는, 그 하수인들은 이를 마치 예상하고 준비해 놓고 있었던 것 같다.

남영동은 잔뜩 부풀려 버렸고, 나 자신을 포함해서 이 사건에 엮어진 모든 사람들이 이 무게에 짓눌려 주눅들어 버렸던 것이다.

남영동에서 내 생활이 끝나갈 무렵, 느닷없이 '민청련은 반국가단체'라고 하면서 신문조서를 꾸미고 인정하라고 협박해 왔다.

 

처음에도 또 중간에도, 최악의 고문 속에서도 일찍이 입밖에 한마디조차 꺼내지 않던, 이 때아닌 홍두깨는 무엇인가,

무슨 이유일까, 그 의미는 무엇인가, 지옥의 그 고통 속에서도 너무 어이가 없어 '꺽꺽'하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최초에는 아주 소극적이었다가 중,후반부터 최고 악질고문자로 발전해갔던 전무 김수현조차 맹숭맹숭하고 조금은 열적은 모양이었다.

 

"마음대로 시키세요. 뭐든지 하겠어요"

 

이들이야말로 위험천만한 것이다.

상전인 정치군부의 요구와 지시에 회의할 줄 모르는 이들의 요구는 분명 현실이었다.

살을 꼬집으면 아팠을,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었으니....

 

아, 드디어 나를 죽이려고 하는가.

완전히 정치적 희생물로 만들려 하는가, 이 정치군부는.

이 죽음을, 이 어두운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되는구나.

주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나는 사실 지금까지 울지 않았다.

고문대 위에서도 고문대를 내려와서도 악을, 악을 써대고, 수없이 울부짖기는 했어도 말 그대로 울음을 울지는 않았다.

오직 이때 한 번이었다.

 

이제 되돌아 생각해보니 양수겹장이었던 것 같다.

가혹한 보복을 놓치지 않고 준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검찰과 법정에서 삭감될 부분을

이 반국가단체 운운으로 상쇄시켜 버리고자 한 것이리라.

정치군부는 멀치감치 뒤에 물러서서 팔짱 낀 채 앉아 있었고 남영동은 흥정거리가 필요하다면 에누리해 줄수 있는 부풀린 상품,

여분의 상품속에 이을호, 문용식, 그리고 나를 파묻어 검찰에 넘겨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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