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슈퍼맨이 되지 못한 죄

 

 

나 중심으로 얘기하면 이렇다.

혼란과 당혹 속에 검찰에 넘겨진 세 사람은 각자 자신들의 절박함의 우선 순위에 따라 움직여 나를 검찰에 내주고,

그리하여 법관의 손에 넘겨주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아무런 다른 선택이 없던 것이다.

오직 마련된 길을 따라 등 떠다밀려갈 수밖에 없었으며, 누구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검찰에 갇힌 사람들이 부닥치는 문제점에 대해서 얘기하겠다.

우선 고문기관인 남영동 상급기관으로서 갖는 위엄과 그로 말미암은 위협감, 답답함이 가슴을 조이게 만들고

이런 사건이 모두 '괘씸죄'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잘 대처하고 따지게 되면 오히려 손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 되어

잘 보이려고 아양을 떨고 싶어 몸이 비비꼬일 지경이다.

나보고 '또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고, 또 그 얘기를 수긍할 수 있지만,

'또라이' 같은 얘기, 그러나 그때 내 심정이 그토록 어지러웠던 것을 말해 보겠다


나를 이대로 밀고 나가 결국은 죽이려고 하는가.

합법을 가장한 이러저러한 절차를 밟아서, 그리고는 분업화된 과정으로

아무도 큰 심리적 부담 내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교살하려고 하는가.

 

저 고문 남영동은 확실히 그런 방향이었고, 이 검찰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도대체 난데없이 KBS 방영이니 연합통신의 기승은 뭐란 말인가.

 

헷갈리고 또 헷갈리고, 돈다.

세상이 돌고, 내가 돌고.

 

나는 검찰의 손에 무릎꿇어 구애하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고 어지러웠다.

제법 딴에는 점잖은 체면이어서 호모 비슷한 분위기를 조성해서는 안된다고 굳게굳게 결심했기 때문에 거기까지 나가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차단된 상태에서 검찰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병적인 애정구걸 같은 심리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검찰에서 '피고인은 당시 그렇게 인정하지 않았느냐' 고 준엄한 얼굴로, 노기띤 음성으로 법정에서 꾸짖는다.

담당검사는 이렇게 하여 비열한 거짓말쟁이로 피고인을 입증해 내고, 그렇게 해서 증거가 발딱 일어나고,

판사는 유죄의 심증을 거기서 형성하고, 우습고 웃기고 웃겨서 웃기는 장난이 된다.

이게 모두 두려움에 얼어버린 채 남영동에서 검찰로 왔을 때, 끊임없이 교양있는 검사를 짝사랑하고, 또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혹시 버티다가 재차 남영동으로 끌려가지 않을까 싶어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하며 저려온다.

한편 그래도 끔찍한 고문을 안해서 고맙고 감사하고, 때로는 슬쩍 가족 얼굴을 보게 해주고

따스한 입김이 볼에 닿게 해줄 때 우리들의 검사님은 너그러움의 표상이 되는 것이다.

 

어찌 이 하늘같은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직 배덕자, 패륜아의 짓이고, 인간이면 검사님의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하고, 요구와 기대에 알아서 부응해야하는 것이다.


"오호 통재로다. 이것이 올가미구나."


깨닫게 되는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다음인 것이다.

때는 이미 지나가 버린 뒤고. 우리들의 눈이 크게 열려 올바로 보게될 때는.

그러나 언젠가 온다.

 

검찰은 남영동 서류를 굳게 믿는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공격적 충동을 기르고 길러 내서 피묻은 남영동 서류조차 별 양심의 가책없이 믿도록 감시는 인도된다.

조종된다.

 

공소유지 의무와 더불어 정치적 사건에서의 기여도에 따라서 정치군부는 평가하여 훈장을 주고 처벌을 한다.

인사정책을 통해서, 검사는 이렇게 해서 검사가 되는 것이다.

 

나도 검찰에서 얘기할 것 다 얘기했다.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더 버틸 마음이,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다만 글로, 조서로 남기지 않았을 뿐이다.


내겐 기적같은 만남이었다.

은혜처럼, 성령처럼, 비둘기같은 성령으로 날아들었던 것이다.

검찰청 청사 그 계단에서 내 처 인재근을 만난 것은.

 

그리하여 김상철 변호인을 만난 것은 나에겐 축복이었다. 구원이었다.

그 만남이 없었다면 나도 틀림없이 남영동에서 두드려서 훌륭하게 만들어 낸 모든 것을 검찰 신문조서에,

자술서에 올리고 손도장을 꽝꽝 찍어댔을 것이다.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만남이 발생하여 거기에 기대어 나는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검사의 도발적 언사 한마디가 계기가 되어 화를 낼수있는 기력이 되돌아와준 것이다.


법정에서는 명백히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고, 그렇게 이용될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고 예견하면서도 진술한 것이 많이 있다.

검찰에서 이미 모두 말했던 것들이다.

그것을 잘라서 얘기하거나 수정 변경하지 않았다.

나는 더이상 째째해지지 않기로 결심했고, 검찰한테서 비웃음을 받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건 자존심이었을게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법관을, 법원을 믿으려 했고 검찰의 기본적 양심을 믿으려고 했던 시기였다.

어떤 신뢰를 저버리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사실이 너무나 명백하므로 재판에, 그 결과에 아주 자신하였던 것이다.


아, 그러나 재판이 무엇인지 나는 몰랐던 것이다.

아니 재판은 한낱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특히 정치적 사건에서는 그렇다는 소문을,

나의 사전 인식은 아마도 지나친 단순화이고 편견이라고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검사 또는 판사 그 개인들과 은근히 통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모종의 분위기, 어떤 관계에 나는 취해 있었다.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 그리고 거기서 느껴지는 개인적 관계를 확대해서 재판을 보려고 했다.


나는 반쯤 눈이 멀었던 것이다.

참담한 결과가 올 수밖에 없었다.

 

논리학 교과서 첫 부분 어딘가에 나오는 확대적용의 오류를 그래도 뒤집어써 버린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개인적인 관계에서 그 모순은 작고 미미하지만, 좋은 나라인 민주화운동세력과 나쁜 나라인 정치군부 사이 속에서

그것은 아주 심각하고 격렬한 불신과 갈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라는 것을 말끔히 잊어버렸었다.

 

아니다. 그 간극을 사실의 증명격과 지식인으로서 판, 검사들의 양식이 메꾸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인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집단)'라는 책의 어떤 페이지들이 떠오른다.


판사, 검사 중에 개인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군부 체제 아래에서 이러저러한 재판을 하는 판사들, 검사들은

주관적 선의와 상관없이 군사독재의 옹호자이며 방위자로서 역할을 틀림없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중에게는 마땅히 존경을 바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본래 알고 있었던 그대로가 맞는 것이었다.

사물과 사건 속에 휘말려 어지러웠고 직접성에 노출되어 피곤하였으며, 심약해진 마음때문에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눈을 잃었던 것이다.

단어가 너무 격렬하고 선동적이어서 쓰고 싶지 않지만, 군사독재 지속에 단단히 한 역할하면서도 태연스러운 위선자들은 틀림없이 있다.

이 사건 재판에 관계했던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은 없었는지 자꾸만 따져보게 된다.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남영동에서 고문에 끝까지 버텨 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5층 15호실, 그 방안에는 죽음의 공포와 그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고 그렇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굴복하고 말았지만, 다시 그런 경우에 부딪쳐도 역시 무릎꿇겠지만, 누구도 나처럼 당하면 결국 꺾일 것이라고 단정하지만,

만일 내가 끝까지 버텼더라면 나는 거기서 살해되었을까, 아니면 그것으로써 사건은 끝나 버렸을까.


"남영동에서 누가 당신더러 굴복하고 인정하라고 했는가.

더구나 그럴듯하게 꿰어 맞추도록 협조도 하고, 증거가 될 것이라고는 말뿐임을 피차 진작 눈치챈 것이니,

그것을 손바닥 뒤집듯 홰까닥 엎지 못하도록 요리조리 꿰어 맞추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또한 예측 가능한데도 그것에 코 꿰어 끌려간 당신 자신이 잘못한 것이다.

이제와서 고문을 당해서 그랬느니, 어쨌느니 해봐야 다 소용없는 일이다.

딱 잘라서 말하면 그건 당신 사정이고, 그러니 찧고 까불며 나를 원망하지 마라.

그렇게 되면 피차 지저분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이리하여 나는 깨달음에 이르른 것이다.

그렇다. 모두 내 탓이로소이다.

 

능히 슈퍼맨이 되지 못한 나한테 죄가 있는 것이지, 강제로 정치군부가 가두고 때리고 짓밟고 한 그것은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슈퍼맨이 되지 못한 내 죄가 톡 튀어나와 누구 눈에도 아주 잘 보이도록, 극적 대비가 되도록 하기위해서 고문이 필요했었던 것이다.


어쩐지 시력이 나쁜 판, 검사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그리하여 흔들리는 팔로 꽝꽝 유죄를 내리 찍을 수 있도록 고문을 활용한 것뿐이니까.

내가 오해를 했었던 것이다. 오해, 오해, 해오, 해오....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렇다면 결국 힘에 진 것이니까.


모든 깨달음은 위대할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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