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선택하라! 선택하라!
말하기 거북스런 것이 또 하나 있다.
아마 이것은 나의 심약함의 반영이었을 게다.
재판부, 변호인, 검사, 나, 방청객, 신문기자 모두가 반 정치군부적 분위기 속에서 암묵적으로 의사가 통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게다가 법정 구성의 당사자들은 거의 서울대 출신들이었으며,
재판장인 서성 판사는 경기고등학교 4년인가 선배라는 말에 뭔가 기대를 건 적이 있었던 것이다.
웃기는 얘기겠지만 난 사실 그랬다.
육사 몇 기로 뭉쳐서 설쳐대는 저 정치군부들의 흉내를 내고 싶어 했던 것일까.
정치군부가 자기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서 어떻게 작용을 가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할 수 없는 내가,
조금만 양식이 있으면 누구의 눈에도 보이는 이것을 나는 얼마동안 눈감아, 애써 눈감아 외면했던 것이다.
그 대신 아주 사소한 끈에 매달리려고 한 꼴이 되고 말았으니, 이건 시궁창에 빠져 버린 쥐새끼처럼 참담해지고 만 것이 아니겠는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마음을 돌려 앉혀놓고보니 오히려 잘된 점도 있는 것 같다.
나에 대한 판결은 기본권 보장이니, 실체적 진실 발견이니 또는 사법적 정의실현이니 하는 주절거림으로부터
'깨어나라, 꿈을 깨라'는 통렬한 타격이었다.
사실, 하려면 이렇게 빨가벗고 나서서 "재판부는, 판사는 정치군부 편이다"고 선언해 주는 것이 속 편하다.
처음에는 분기탱천하는 바가 없지 않았지만, "아! 결국 당신들은 역시 그렇구나"라고 인정하면서 깨끗하게 끝낼 수 있었다.
더 이상 공연히 알쏭달쏭하게 만들고 헷갈리지 않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지난 4월 13일 전후 이곳 구치소 전 사동은 낮에도 밤에도 열기와 함성으로 들썩들썩했다.
병사 한 구석에 처박혀 있는 나는 늘 형광등 신세를 벗어나지 못해 어리벙벙했지만 사태가 심상치 않음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화려한 송별식이었다.
터져 나오는 통곡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예 처음부터 재판과는 담을 쌓았던 '민정당 연수원 사건' 관련 학생들의 형이 확정되던 날 시작된 것이었다.
전국 각지의 가막소로 실려 나가는 날 아침까지 학생들의 아우성은 솟구쳐 올라왔었다.
이들의 목소리에 방 창문을 열고 귀 기울이면서 나는 미안한 마음이 되었다.
과격하고 무모하다는 비난을 흠뻑 뒤집어쓰면서 학생들이 싸우고 있을 때 재판 속을 헤매고 있던 나 자신을 되돌아봤다.
학생들에 대한 정치군부의 야멸찬 매도, 핏대올린 선전이 귀가 따갑게 울리는 동안
학생들은 외침으로, 떨리는 가슴으로 대치해왔던 것이다.
이런 학생들을 나무라는 점잖은 사람들이 있는 줄 안다.
그들에게 해줄 얘기가 나에게 있다.
가막소 벽에, 구치감 벽 여기저기에 쓰여있는 글을 보면서 학생들의 가슴에 새겨 있는 한숨과 외로움을 나는 보았다.
'군사독재는 물러가라', '민주주의 만세', '민주화운동은 승리한다', '서민생계 보장하라' 등이 시멘트 벽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서울대 학우여 투쟁하라', '고대, 연대, 성대, 이대, 서강대, 숙대 학우여 나서라!' 등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당신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바인가? 그렇지 않다.
당신들은 그 글자는 알지만 거기에 쓰여있는 눈물과 설레임은 모르는 것이다.
당신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졸전을 벌였다고 공박을 받은 무하마드 알리는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신들이 링사이드에서 찬 맥주를 마시면서 낄낄거리고 있을 때, 나는 배에, 턱에 강력한 주먹을 얻어맞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헉헉거렸다. 당신들은 이 고통, 이 외로움을 알 수 없는 얼간이들이다"라고.
이 말을 점잖은 당신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일단 정치군부에 찍히면 그것으로 결정난 것이다.
그 이후는 하나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나같이 뒤통수 얻어맞고 꿈을 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들 학생처럼
분식행위, 가식적절차를 처음부터 거절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서성 판사의 승진소식을 들으면서 선뜻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넉넉한 마음가짐이 없기 때문도 있지만 따져봐야할 것이 있어서다.
아마 능력이 있고 충분한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정치군부의 요구와 기대대로 재판 결과가 마무리된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보다 공정한 재판 결과가 나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건 잘 모르는 일이다.
서성 씨에 대해서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그 개인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사회에서 법원의 독립, 법관의 독립이 사실상 형해화 되어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상황 아래에서, 다시 말하면 정치군부에 유리하게 했는가 아니면 불리하게 판단을 내렸는가가
법관 인사조치에 영향을 미치고 또 그렇게 추측되는 상황에서 자유심증주의는 매우 위험한 도구로 전락돼버리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엿장수 마음대로, '오야' 마음대로, 결국은 정치군부 마음대로
민주화 실현을 저지하고 국민을 탄압하는 방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벌써 그렇게 돼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법관의 인적, 물적 독립이 훼손되어 있는 상황 아래에서 법관 개인에게, 개인의 양심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치군부가 맹렬하게 제기하는 사건에서 법관은, 법관의 양심은 피고인이 된 민주인사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라도 법관 자신의 안전에 대한 고려가 작용하여 유죄로 예단하고 추정하게 될 것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자유심증주의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되었다.
앙상레짐을 타파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인류라는 이상을 드높인 불란서 대혁명 정신인 합리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전체적, 자의적 왕권지배, 규문주의적 재판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 획득된 원칙이다.
그런데 이 자유심증주의가 정치군부 독재 아래에서는 인권을 탄압하는 그럴 듯한 원칙으로 타락되어버린 것이다.
이번 나의 재판도 그 경우의 하나일텐데,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이렇다.
최민화씨가 증인으로 증언하고 있을 때,
서성 판사는 '민주화의 길'에 실려있는 '80년 서울의 봄에 대한 반성과 평가'에 대해 나에게 질문했다.
"그 글을 누가 썼는지 말할 수 없습니까? 대표라면 그 글을 쓴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게 여겨 할려고 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공판정에서 어떤 심문에도 진술을 거부한 적이 없었는데도 이처럼 느닷없이 도발적인 질문을 한 것은
법관이 '심리 도중에 피고인으로 하여금 유죄를 예단하는 취지의 말을 한 경우'(대판 74. 10. 16. 74모68)가 되어
당연히 기피신청의 사유가 되고, 예단과 편견배제원칙을 위배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자유심증주의라는 이름으로 정치군부는 사실상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번 법관의 인사는 그것을 더 한층 확고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현직판사로서 국가보위입법회의에 나갔던 사람들, 청와대 비서관을 했던 사람이
법원의 여러 요직에 발탁되어 임명되고 있는 것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정치군부의 또 다른 혹심한 탄압이 무르익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하며, 유죄를 99.5% 강요,
이제 거의 100%까지 올리고야 말겠다는 결의의 표명, 전 세계 최고기록을 달성하고 말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도 해석해야될 것이다.
폭력적 경찰, 나아가서 검찰이 야만적 정치군부의 하수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유신시대에서 본 것처럼, 5. 17과 광주사태 이 후 경험한 바와 같이 법관도, 법원도 이미 정치군부의 품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미련을 갖고 잇는 것이다.
거듭 소용없는 일임을 시퍼런 두 눈으로 확인해 가면서도.
정치군부의 폭력적 본성을 논리라는 당의정으로 겹겹이 싸 바르는 지식인들이여 ! 법관들이여 !
이제 당신들은 최종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우리시대의 대의인 민주화실현 대오에 설 것인지, 아니면 끝끝내 정치군부 옆에 서서 영원히 민족과 역사의 저주를 받을 것인지 선택하라 !
선택하라 !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당신들의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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