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생일 선물



 밤이 깊어 지면서
 세상은 점점 고요해 지고
 병실의 불빛도 하나 둘 꺼져 간다.

 

 " 오늘이 중수 생일인거 알지?
 내가 중수한테 귀가 닳토록 얘기했어.
 우리 맏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해서 첫 번째 생일 맞는 날
 아빠가 외국에서 맛있는 거 많이 사 가지고 돌아오실 꺼라고.....
 중수하고 고운이가 아빠 많이 기다릴 꺼야.
 이제 빨리 집에 가 봐.
 학용품이랑 초콜릿이랑 준비해 놓았으니까
 외국에서 사 왔다구 선물로 주고..... "

 

 그랬던가.....
 내가 출소하는 날이 공교롭게도
 초등학교 입학한 둘째애 생일과 한 날이라는 것은
 징역형이 확정될 때부터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 하루종일
 그 일을 생각조차 못 한 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첫째 딸 고운이와 둘째 아들 중수는 연년생이지만
 생월이 2 월과 4 월이어서
 3 월을 입학 기준으로 삼는 교육 연령으로는 2 년 차이다.

 그 당시 고운이는 3 학년, 중수는 1 학년이었다.

 

 혜숙은 내가 구속될 때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 밝히기를 꺼려 했다.

 

 아빠의 행동과 처신이
 부끄럽거나 명예롭지 못해서가 아니다.
 
 가까운 친척이나 동네 사람들을 비롯한
 어른들 세계에서도
 각자가 처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따라서는
 민주화 운동을 하고
 감옥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복잡미묘하고 다양할 터인데

 

 한창 철없이 뛰어 놀고
 자유롭게 활개치며 자라날 아이들에게
 시국이라든가 역사적 상황
 구속과 재판 등등 유별난 어른들 세계를
 굳이 드러내서 밝히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겠다고 여겼던 탓이다.

 

 갓난 아기 적에는
 혜숙이 내게 자랑삼아
 아이를 가끔 품에 안고 면회 오기도 했지만
 그것도 조심스러워 했다.

 

 나는 혜숙이 아이들을 위해
 정성스레 마련한 선물을 받아 안고
 그만 눈시울이 시큼해 왔다.

 

 아직 철모를 아이들이 바라는
 아빠에 대한 기대가
 혹시라도 흠 잡히거나
 상처받지 않을까 염려하는
 아내의 마음이 가슴 속 깊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혹시라도
 이처럼 정성스런 엄마의 선물을 받아 보는 것도
 이번으로 마지막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절망어린 생각이
 내 가슴을 더욱 미어 왔다.

 

 차라리 엄마가 수술을 받고
 엄마의 생명이 어찌 될 지 알 수 없는 지경에서도
 너희들을 위하고 사랑해서
 마련해 준 선물이었다고
 아이들에게 말 해야 옳지 않겠는가?......

 

 어찌 내가 이 지경에서
 아이들에 대한 엄마의 애틋한 사랑을...
 남편에 대한 아내의 배려를...


 혼자서 몽땅 가로채야 한단

 말 인 가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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