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예쁜 내 삼겹살
  


 그즈음 병원에서는
 의사들 사이에
 간호사들과 직원들 사이에

 혜숙이 수술받고 난 직후의 일화가
 한토막 에피소드로 소문 나 퍼져 있었다.

 
 혜숙은 무려 8 시간 동안

대수술을 받았다.

 

 배꼽 바로 위쪽에서 직선 2 cm
 아랫쪽으로 살을 베어 내려 가다가
 오른쪽으로 15 cm, 왼쪽으로 15 cm
 시옷(ㅅ)자 모양으로
 아랫배 전체를 다 열어 볼 수 있도록
 갈라 놓았다.

 

 위를 몽땅 잘라 내고
 비장과 췌장도 일부 잘라 내고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암세포를 모두 찾아 제거하고

 갈라진 배를 다시 봉합했다.
 
 배와 가슴
 온 몸통을 붕대로 칭칭 싸감고
 회복실에 들렀다가 일반병실로 올라 왔단다.


 며칠 후
 주치의와 담당 수련의들이
 온 몸통 칭칭 싸감은 붕대 풀고 환부 소독하려는데

 

 그 때 혜숙이 자기 아랫배에 생긴 상처 보더니
 고개들고 눈을 똥그랗게 치세우면서
 
 " 오머나... 이게 뭐야!
 예쁘게 생긴 내 삼겹살 누가 이래 놨어!
 누가 이렇게 엉망진창으루 썰어 놨어!
 선생님이 그랬지? "

 

 담당 수련의에게
 익살맞은 뽄새로
 항의하더라는 것이다.


 대개의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암인 줄 전혀 모른 채 수술받고 나서
 환부 소독할 때 흉칙스런 상처보고
 그만 놀래버린단다.

 

 그러고부터 혹시 위중한 병 아닐까
 의심하고 불안해 한단다.

 

 여성일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단다.

 때로는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단다.

 

 혜숙이 역시
 그랬을 것 아니겠는가?

 

 그런 경황에서 익살맞은 뽄새로
 담당 의사에게 농을 걸다니.....


 그 당시 두 개층 아래 병동에
 백기완 선생이 입원해 계셨다.

 

 백 선생과 나와 혜숙은
 1974 년 민청학련 사건 때부터
 잘 알고 지내 온 사이다.

 

 1979 년 계엄포고령으로 나와 함께 공범이 되어 구속된 백 선생은
 그때 당한 모진 고문으로 정신착란증과 협심증에 시달리다가
 그 후유증으로 입원한 것이다.

 

 선생은 혜숙의 걱정을
 문병 오는 이에게마다 쏟아 놓으셨단다.

 

 " 신랑은 아직 감옥에 있는데...
 우리 혜숙이가 암 수술 받고 요 위층에 입원해 있어~~~
 참 큰 일이야....."

 

 나는 석방 인사겸 문병겸 백 선생을 찾아 뵈었다.

 오랜 만에 해후하고 안부를 나눈 다음 백 선생이 내게 말한다.

 

 " 그 참... 대단하다 대단해...
 덩치는 자그마한 여인네가 그리 큰 수술을 받고 나서...
 아~니 담당 의사한테 예쁜 내 삼겹살
 누가 이리 엉망으로 썰어 놓았냐고 농을 걸었다니...
 그랬다는 말 나도 내 주치의 김광일 박사한테 직접 들었어...
 병원 의사들 사이에 소문이 쫘~~~악 났다고.....
 김광일이 알지?
 우리 민족 전통문화와 한국인의 정신분석학이란 주제로
 대단한 책 쓴 누마.
 그누마 고등학생 적부터 가까운 친구로 지내왔는데
 어렸을 적부터 배짱좋고 인물 좋고 머리 좋고 했던 넘이었지...
 아~니 그런 상황에서 그런 농이 나올 수 있는가 말이야 글쎄...
 여걸이야 여걸... 박혜숙이 같으면 극복해 내고 말꺼야...
 그런 성격에 그까짓 암이 무섭겠어???
 고금동서 고사에서도 여인네로는 찾아 보기 드문 뱃짱일꺼야...
 대단한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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