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퇴원 수속


4 월 22 일, 혜숙은 아침부터 퇴원할 생각으로
마음이 한껏 들떠 있다.

처제와 병원 원무과에서 퇴원 수속하던 중에
복잡한 일이 발생했다.

구속될 당시에 나는 연구원에서
연구출판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직장에서 근무하다 시국 사건에 연루되면
쫓겨 나거나 적어도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사표를 내거나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던 직장은
독일 정부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의 기독교 기관 지원 아래
한국 사회가 정치적 민주화와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 발전을 이루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독교 연구 기관이다.

그러니만큼 내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구속된 일이야말로
설립 목적과 정신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었다.

연구원에서는 내가 구속되고 재판 받는 동안에
깊은 관심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변호사 비용까지 도맡아 주었다.
        
일반 직장에 비해서도 그리 적지 않은 월급과 상여금까지
꼬박꼬박 지급해 주었다.

그러다가 정보 기관에서 연구원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거세지고
그러니만큼 재정적 형편도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다.

혜숙을 통해서 연구원의 형편과 사정을 전해 들은 나는
석방되기 바로 한달 여 전에 사표를 제출했다.

문제는 의료보험이었다.
의료보험 제도가 생기고 지금처럼 일반화 되기 이전에도
우리 가족은 병원에 다니는 일도 없이 줄곧 보험료를 내 왔다.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연구원 직장의료보험에 줄곧 가입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혜숙의 퇴원 수속을 밟으려다보니까
내 사표가 수리되면서 불과 1 개월 여 전부터
우리 가족 모두가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의료보험 적용 여부에 따라 비용 부담이
그 당시 200 만 원 내외에서 800 만 원 정도로
4 배 가량 차이가 난다.

나는 대학 병원과 의료보험 기관
내가 근무하던 연구원과 약사회 등등으로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알아 보고 했다.

마침 가까운 친구의 주선으로
적지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병원 원무과에서는 서류를 보강하고 구비하는데 시간이 걸리니
하루를 연기해서 23 일 퇴원하는 것이 좋겠단다.

그리되면 간호사로 근무하는 처제의 직원 가족 배려 등등까지 적용해서
140 여 만 원만 지불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참으로 다행이고 잘 됐다 싶었다.

병실로 올라가 보니 혜숙은
자주색 투피스를 예쁘게 입고
짐가방을 품에 안고
침대에 걸터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퇴원 수속 과정에서 일어났던 복잡한 일들을
혜숙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병원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배려를 다 해 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이제 하루만 더 있다 나가면
모든 일들이 잘 마무리 될 것이라고 했다.

옷 차려입은 폼이며 기다리고 앉아 있는 자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터라
나는 혜숙의 눈치를 살펴가며 조심조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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