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나 그냥 집에 갈래!



혜숙은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더니
짐가방을 든 채 갑자기 병실문을 열고 복도로 뛰쳐 나간다.
나는 뒤쫓아 나가 혜숙을 붙들고 달랜다.

 

 " 나 그냥 집에 갈래!!! "

 

그런 걸 할려면 미리미리 해 두었어야지
왜 지금에 와서 그러느냐는 거다.

 

담당 의사와 병실 간호사들 모두가
오늘 퇴원하는 줄 다 알고
병실 환자들도 다 아는데
인사까지 다 했는데

 

퇴원한다던 사람이
퇴원 수속 때문에
입원비 때문에

하루를 더 붙잡혀 있게 되었으니
창피스러워서 못 있겠다는 거다.

 

800 만 원이든 얼마든
당장 만들어 놓을 테니까

지금 빨리 내려가서
오늘 당장 퇴원할 수 있도록
다시 수속하라고 난리다.

 

내가 자꾸 미그적거리면
혜숙이 직접 원무과로 달려가서
수속을 다시 밟겠단다.

 

혜숙은 숨을 씨근씨근 몰아 쉬며
원무과로 향해 간다.

 

혜숙이 워낙 머리 끝까지 화가 치솟아 있던 터라
나는 더 이상 말리지 못한 채
짐이나 받아 들고 뒤를 쫓아 간다.

 

혜숙은 원무과장을 만나
당장에 퇴원할 테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처리하라고 다그친다.

 

느닷없이 봉변 당한 원무과장은
난감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처음부터 사정을 미리 알았더라면 차질없이 처리할 수 있는 건데
입원할 때 기록부터 모든 서류를 다시 정리해야 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자기 임의대로 처리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러면서 실무자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하루만 더 참아 달라고
오히려 혜숙에게 사정한다.
그제서야 혜숙은 화가 좀 풀렸는지 수그러든 표정이다.
 
나는 혜숙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눈치를 살피며
다시 병실로 데리고 간다.

 

하루이틀 사이에 혜숙이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고
예쁜 옷 입고 싶어 하고
뜬굼없이 신경질 부리고 화내는 모습 지켜 보면서

 

암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휩싸인
속내를 들여다 보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토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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