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의사의 보람과 행복



자기의 생명 자신의 운명이 걸린 일이니만큼
나는 혜숙이 의학적으로 꼬치꼬치 캐묻고
이것저것 보다 더 자세하게 확인하기를 바랬다.

 

이를테면 두루뭉수리하게 5 년 생존율이라기보다는
바로 자기자신과 같은 처지에서 생존한 사람들의 경우
대개 어떤 과정과 노력이 있었는지.....

 

자기가 눈꼽만큼이나마 더 나은 희망을 가질 수 있으려면
의학적으로 어떻게 하는 게 보다 더 바람직한 건지.....

하지만 혜숙은 남의 이야기 듣듯 그저 무덤덤하다.


순간, 나는 혜숙을 꼭 껴안고
둘이서 꼭 부둥켜 안고
몇 시간이건 몇 날이건
엉엉 소리지르며 실컷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 이제 내 임무는 여기서 끝나게 됩니다. 앞으로는 내과로 넘어 가서
 담당 선생님이 정해지면 거기서 상담하고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김용일 박사는 재수술을 받지 않는 한
의사와 환자로 자기와 만나는 일은 없을 꺼라고 한다.

 

그러기를 바란다고 한다.
앞으로는 모든 일을 내과 선생님과 의논해야 된다는 거다.

 

나는 정신이 번뜩 하며
가슴 한 켠으로 야속한 마음이 밀려 온다.

 

이제까지 파란만장한 순간순간들을 겪고 거치면서
의지하고 싶기도 했고 매달리고 싶기도 했던 관계를
이제사 피차가 어느만큼 알만 하고 정도 들었던 관계를
이렇게 싹뚝 끊어 버리다니...

낯도빛도 모르는 이한테 훌쩍 떠넘겨버리고 말다니.....

 

나는 그 순간 묘하게도
도망다니다 붙잡혀 경찰서에 연행되는 기분이 든다.

 

어수선한 경찰서에서 대충대충 조사받다
살인적인 고문이 기다리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서빙고 보안사 대공분실로 남산 중앙정보부로
떠넘겨 지는 기분이다.

 

" 그래도 외래 진료 받으러 오가면서 가끔 찾아 뵈면 안 됩니까? "

 

야속해 해 본들 어쩔 도리가 없는 일 아니겠나 싶고
무언가 섭섭한 마음이 들어
나는 약간 퉁명스런 말투로 따지듯 묻는다.

 

" 안 되기는 요... 나야 그래주시면 반갑고 고맙지요...
 일반적으로 모든 의사들이 다들 그렇겠고 나 역시도 그런데...
 의사가 가장 보람을 느끼고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심장 박동이 멈춰서 죽어 있는 사람을 응급처치로 의술로
 다시 살려 냈을 때...
 그래서 살아난 사람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늘 감사해 할 때...
 불치의 병, 고통 속에 죽을 수밖에 없는 환자가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아서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 갈 때...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 줄 때...
 그럴 때 의사는 가장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겁니다."

 

야속하고 섭섭해 하는 내 속내를
훤히 들여다 보고 하는 위로의 말이었는지
나는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마감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 있다.

 

계속 김용일 박사에게
상담하고 싶고 매달리도 싶다.

 

 " 주변에서는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받아서는 안 된다느니
 고기를 먹어서는 절대 안 되고 음식을 가려서 먹어야 된다느니
 골치 아플 정도로 참견하고 여러 말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런지요?..."

 

나는 별 상담할 내용도 못 되는 말
그저 알아서 하면 되는 일
상담이라기엔 좀 무식하기 짝이 없는 말을
그냥 주섬주섬 늘어 놓는다.
 
 " 의학적으로 보면 환자가 위암 수술을 받은 것으로 95 퍼센트 이상의 노력을 다 하게 된 겁니다.

 수술 과정에 이미 현대적 의학과 기술의 성과를 거의 총동원한 것이지요.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는 나머지 3 ~ 4 퍼센트 정도를 채우기 위한 노력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혹시 1 ~ 2 퍼센트는 기적이라는 걸로 두든지 음식으로 두든지 하는 건 잘 모르겠고요...

 음식 문제는 앞으로 내과 선생님과 상담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은데요...

 되도록이면 고단백질 위주로 해서 먹고 싶은 것을 드시는게 제일 좋습니다.
 체중이 빠지지 않도록 고기 종류를 많이 섭취하는게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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