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운명의 갈림길에서 담담한 모습
나는 말꼬리가 그칠새라
이것저것 되지도 않는 질문을 계속 이어 간다.
그러면서 혜숙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절박한 상황에 대해 질문하고 상담하기를 바랜다.
이 아까운 시간에 혜숙이 빨리빨리
적시적절하게 핵심적인 질문을 하지 않고 뭐하나
하는 생각으로 내 마음은 초조하다.
그래도 남아 있는 15 퍼센트의 가능성에
집착하고 매달려서 상담할 말이 있을텐데...
왜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만 앉아 있느냐는 불만의 뜻으로
나는 옆에 앉은 혜숙의 몸을 툭툭 건드리며
말하기를 재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숙은 아무 말 없다.
아무런 표정 없이 그저 병상 기록부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
김용일 박사와 작별하고 내과 전문의 실로 갔다.
담당 주치의는 여의사...
얼마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여의사는
혜숙의 언니와 경기여고 동창이면서
의과대학도 같이 다니고
미국 유학도 비슷한 시기에 같이 했단다.
내과 주치의 처방에 따라
혜숙은 항암제 주사를 맞는다.
이제 부정하고 거부할 수 없는
치료 과정으로 들어 선 것이다.
혜숙은 자기에게 닥친 운명을
침착하고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것 같다.
나는 차라리 신경질을 부리고
들뜬 마음으로 예쁜 옷 입고 병원 문 나서기를 바라는
혜숙의 모습이 오히려 더 그립다.
앞으로 얼마가 될 지도 모르는 세월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쳐야 하는 혜숙이
그 고통의 출발점에서
차디차리만큼 담담한 모습을 지켜 보면서
나는 가슴 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는 대신
한숨으로 바꾸어 계속 허어~ 허어~ 토해 낸다.
택시를 타고 그리운 집을 향해
봄 기운이 완연한 거리를 달리지만
우리는 계절이나 풍경을 감상할 기분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여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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