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박형규 목사

 

 

민주화 운동 진영에서 기독교계를 상징하고
실제적으로 이끄시는 박형규 목사님이
사모님과 함께 약국으로 문병 오셨다.

박 목사님은 나보다도 혜숙에게
더 각별한 관심을 갖고 계시다.



혜숙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박 목사님이 담임하는 서울제일교회를 다녔다.
교회 대학생부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이화여대 학생 동아리 모임과 연결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혜숙이 이화여대 학생으로는 유일하게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연유도
바로 제일교회 대학생부 활동을 통해서
이화여대 학생 서클 모임과 연결하는 고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혜숙은 이화여대 서클 회장으로서라기 보다는
제일교회 대학생부 활동으로 구속되었던 셈이다.

당시 제일교회에서는 박형규 목사와
지금은 기독교방송국 사장으로 있는 권호경 전도사를 비롯해서
대학생부에 소속된 20 여 명 회원 거의 모두가 구속되었다.

그러니만큼 박 목사님이 혜숙에게 갖는 관심은 남달랐다.
박 목사님은 나와 혜숙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 교회 교인하고 결혼해서 살려면 우리 교회를 나와야지!....."

하면서 우리가 다른 교회에 다니는 것을 못내 섭섭해 하셨다.
약국에 딸린 단칸방에서 심방 예배를 드렸다.

찬송 부르고 성경 구절 봉독하고 설교 말씀하고 나서
박 목사님은 혜숙의 병구완을 위해 안수기도 하신다.

정의와 평등,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민족과 한반도 땅 위에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헌신해 온 주님의 소중한 따님이

우리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병고로 말미암아
고통 가운데 있사오니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구원의 역사하심으로
다시금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간절한 기도다.

그리고 말미에 박 목사님은 앞으로 겪게 될 지도 모르는
혜숙의 고통을 위안하는 기도를 덧붙이신다.

"... 우리 민족과 사회를 위해서 앞으로도 소중한 역할을 해야 할
귀한 여종을 주님께서 필요하셔서 주님의 품으로 데려 가시려거든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가운데 두지 마시고...
두려움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고통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그 날 혜숙은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 후로 혜숙은 박형규 목사님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보려고 피가 마르게 아등바등대고
지푸라기라도 잡아서 매달리고 싶은 환자한테
심방기도 하시면서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죽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느냐고 뾰루퉁하게 따지곤 했다.

그러면 박 목사님은 당황한 표정으로

"...어?... 내가 그랬나?... 덕분에 이렇게 살아서 만나는 거라고
감사하게 여겨야지... 허 허... "

하면서 무안한 표정으로 웃곤 하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