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협박당하고 끌려가고

 

 

고영하와 문국주는 방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마당에 선 채로
대짜고짜 좋게 말할 때 우리와 같이 가잔다.

고집을 부리면 강제로 납치할 각오로
자가용까지 대기시켜 놓았다고 기세가 등등하다.

그들의 말인즉슨 한마디로 위암이란 게
방사선과 항암제로 치료될 병이 아니라는 거다.

방사선 치료는 원폭 피해자들처럼
핵 폭발물에 온몸을 노출시키는 거나 다름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몸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란다.

우리 형수 병 낳게 할려면
민간요법인 자연 건강법에 의존해야만 되는데
우물쭈물할 시간적 여유도 없고 한시바삐 시작해야 한다는 거다.

광주에서 가톨릭 농민회 활동하는 분 가운데
자연 건강요법으로 암을 치료하는 유명한 전문가가 있으니까
지금 당장 같이 내려가자는 거다.

나는 우선 방으로 올라와 앉아서 얘기하자 하고
혜숙의 몸이 의학적으로 이러저러한 상태에 있고
앞으로 남은 의학적 노력도 한시적인 것이니만큼
우선 현대의학에 의존해서 최선을 다한 연후에
생각해 보겠노라고 차분차분 얘기했다.

하지만 이들은 막무가내였다.
형이 뭘 알지도 못하면서
중간에서 가로막고 있는 줄 다 알고 왔다는 거다.

의과대학을 다녔던 고영하가 특히 더 심했다.
형수의 병을 자기도 웬만큼은 안다고 했다.

형수의 병은 양의학에서 말하듯 갑자기 생긴 게 아니란다.
오랜 세월 민주화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일상생활이 안정되지 못하고 불규칙하다 보니까
신체 리듬이 변하고 체질이 바뀌어서 그런 거란다.

혜숙과 동년배인 문국주는 이 일은 특히
우리 동료들이 함께 책임지고 다같이 감당해야 할 문제이지
형과 형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했다.

주위 사람들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러니만큼 힘을 합해서 다시 살려내야 할 문제라면서
오히려 나를 향해 형님은 너무 나서지 말고
주위에서 하자는 대로 따르기만 하라고 욱박지른다.

나는 그들의 속 깊은 뜻은 고마웠지만 치료 방법에서
내 뜻을 굽히고 물러설 마음이 전혀 없던 터라
신경이 예민해 지고 언성이 점점 높아 갔다.

" 야! 너는 네 아버님께서도 지역 사회에서 저명한 외과의사시고
너도 의과대학에서 현대의학을 전공했던 처지에
어떻게 인류사회가 오랜 세월 수많은 임상 실험과 경험을 통해서
과학적으로 발전시켜 온 성과를 그리 무시하는 거냐!...
나도 자연 건강법이니 민간요법이니 하는 얘기
귀가 닳도록 들었는데 가만히 듣고 보면 그렇게 하다가
효험이 있었다거나 살아났다는 얘기만 들었지...
효과가 별로 없었다거나 아무 소용없었다는 얘기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런 만큼 나는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100 명의 환자를 임상 치료했으면
그 중에서 10 명이 됐든 90 명이 됐든
성공률과 실패율이 종합해서 통계적으로 나와야지...
구름잡는 식으로 1 명인지 99 명인지
밑도 끝도 없이 살았다는 둥 효험이 있었다는 둥 하니까...
도대체 뭘 보고 신뢰하겠냐!!!....."

본래 남달리 집요하고 고집이 센 고영하는
전혀 물러설 기미가 없다.

형님이 몰라서 그렇지 영국과 일본에서도
많은 임상 경험이 있고 성공한 사례도 많다는 거다.

특히 일본에서는 저명한 의과대학 교수들이
현대의학의 방법에 한계를 느끼고

민간요법에 의한 자연 건강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체계를 세워서

공식적으로 임상치료에 적용한 결과
의학적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일단의 학파를 형성하고 있다는 거다.

형수의 몸이 조직 검사 결과
위험한 상태로 진단이 나왔다면
애당초 수술을 하지 말고
자연 건강법에 의존했어야 했단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바에야 앞으로라도
방사선과 항암제 치료를 받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거다.

만약에 형님이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형님이 형수를 죽이는 거라고
극단적인 말도 서슴치 않는다.

그냥 피차가 뜨거운 동지애를 가지고
차분차분 얘기해서 넌지시 거절하려던 내 생각은
점점 빗나가고 있다.

막판에는 내가 일단 여기서 끝내고
생각 좀 해보자고 했고

그들은 이대로 그냥 놔두면
형님이 방사선과 항암제로
형수를 죽이고 말게 뻔한데

납치를 해서라도
광주까지 데리고 가야겠다고 했다.

한동안 더 실갱이 하고 옥신각신 하다가
나와 혜숙은 결국 광주로
끌려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 사랑과 희망으로 > 2. 생명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48. 박형규 목사  (0) 2008.01.22
49. 위로가 지나쳐 강요가 되고  (0) 2008.01.22
51. 고향만큼 친근한 광주  (0) 2008.01.22
52. 숙변과 마그밀  (0) 2008.01.22
53. 잠자리  (0) 2008.01.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