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고향만큼 친근한 광주

 

 

1974 년 민청학련 사건 이후로
나는 다른 지역보다도 광주를 자주 내려간 편이다.

어쩌면 가까운 고향이나 선산보다도
멀리 떨어진 광주에 내려갈 기회가 더 많았다.

한국의 학생 운동을 이끌어 온 세력을
출신 지역별로 살펴 보면 대체로

50 년대부터 60 년대 초중반까지는
경북고를 중심으로 한 영남 출신들이

60 년대 중반부터 70 년대 초반까지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 출신들이

그러다가 70 년대 초중반 무렵부터 80 년대 말까지
무려 15 년 여 동안은 광주일고를 중심으로 한
호남 지역 출신들이 주도하다시피 했다.

심지어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치안본부 등에서는
각 대학마다 광주일고 출신 학생들의 명단을 작성해서
모두 요시찰 감시 대상으로 삼았었을까...

80 년 5 월
치열했던 광주 민주화 운동도
이런 일련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광주에 내려가면 가까운 동료들만도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많고
지역 사회 운동을 이끄시는 선배 어르신들도
대개 잘 아는 사이다.

그러니만큼 광주는 내게
고향만큼이나 친근한 곳이다.

오랜 만에 광주에 들어 섰다.

80 년 5 월의 도시...
무등산의 도시...
나의 친구와 선후배 동료들의 보금자리 광주다.

안내를 받고 낯선 집에 들어 서니
낯익은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장두석 선생...
성함으론 누구신가 했는데
만나 뵈니 서울에서 중요한 전국회의 때마다
더러 뵙던 분이다.

그러고 보니 광주가 더욱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 온다.


▲ 장두석(1938~2015) 선생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장두석 선생은 혜숙이 입원한 직후부터
소식을 전해 들어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나보다도 훨씬 먼저 알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집으로
직접 문병을 올려고 하셨단다.

우리가 내려 온다는 기별을 받고
식사 준비를 해 놓았으니
우선 간단하게 씻고 저녁을 먹자 하신다.

우리가 묵게 될 방에 들어서니
한 켠에 운동 기구가 놓여 있고
방 문짝같이 생긴 나무판이 서너 겹 세워져 있다.

그 곁에는 베개용으로 보이는
반달형 나무토막이 놓여 있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방을 둘러 보고
우리는 한 켠 구석으로 짐을 가지런히 챙겨 놓았다.

장두석 선생은 어린 시절
심한 간질환과 폐수증으로
사경을 헤맸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견딜 수 없어
산으로 들어가 산생활을 하는데
어느덧 몸이 점점 좋아지고 병이 완치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자연 건강법에 눈을 뜨고
전통의학과 민간요법
동서고금의 의학서들을 접하면서
자연과 생활에 기초한 민족의학의 체계를 세우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가톨릭 농민회 활동을 통해서
지역 사회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우리나라가 서구화되고 산업화됨에 따라
자연 환경이 파괴되고 그 피해가 점점 드러나자
일찍부터 환경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신용협동조합과 양서협동조합 운동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여러차례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장두석 선생은 세워져 있던 나무판을 방바닥에 뉘어 놓고
반달형 나무토막을 그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혜숙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면서 누우라고 한다.
혜숙의 눈꺼풀을 까뒤집고는
위로 아래로 좌우로 움직여 보란다.

그런 다음 두 팔을 꼼꼼하게 검사하듯 들여다 본다.
두 발도 자세히 살핀다.
손과 발, 팔의 한 지점을 손가락 끝으로 눌러 보곤 한다.

혜숙은 어떤 지점에서 통증을 심하게 느끼듯
'아~~~아!' 하며 비명을 내지른다.

한동안 심각하고 진지한 자세로
장 선생은 혜숙의 신체를 이리저리 진찰한다.

" 수술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힘들게 됐어...
양의 하는 놈들은 과학이니 현대 의학이니 해 가면서
환자들에게 무조건 마구 칼을 대고 잘라 내고
하는 방법으로밖에 취급을 안 하니 참 큰일이야...
사람의 생명체에 치명적인 독이 되는 약물이나 마구
집어 넣고 말이야....."

그는 서양 의학에 대해서
입에 담지 못할 표현까지 섞어 가며
격렬하게 욕을 해 대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암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잘못된 먹거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음식 생활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어서
자연식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밥일텐데
백미로 지은 밥은 쌀껍질을 완전히 다 벗겨 내서
때깔 좋고 먹기에 부드럽겠지만
인체에 필요한 영양분까지 모두 벗겨 내버린 꼴이 되어
오히려 도움이 않 된다는 거다.

쌀껍질을 3 할 정도 남겨 둔 것을 현미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필수 지방산 등이
충분히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적인 음식 생활은
신토불이에 맞추어 먹는 것이란다.

이를테면 우리에게는
우리 땅에서 난 음식이 제일 좋고
계절마다 제 철에 난 채소가 제일 좋다는 것이다.

암 환자의 경우에는 이미 몸의 균형이
깨어져 있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식사법으로는
신체적 이상을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러므로 때로는 단식과 생식 요법 같은
엄격한 식사요법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다.

저녁상이 마련되었다는 전갈이 왔다.
우리는 안방으로 건너가 상 주위에 둘러 앉았다.

장 선생이 설명한 바대로 현미 잡곡밥이 올려졌다.
현미와 조, 수수, 콩, 통밀 등이 섞인 잡곡밥...
부드러운 맛은 없지만 입에서 백 번을 씹으니까
고소한 맛이 감돈다.

반찬은 주로 각종 야채로 된 것이다.
상추와 깻잎과 케일을 비롯해서 제철 생야채가 가득하다.

밑반찬도 김치와 알타리무, 물김치 등등
열을 가하지 않고 절이거나 담근 것이 주종이다.

나는 감옥 생활을 포함해서 그야말로 오랜만에
먼 여행길이어선지 시장기도 있었거니와
음식이 너무도 싱싱하고 입에도 맞아
참으로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혜숙은 그저 수저를 드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내려 놓고 자리를 물러나려 한다.

" 박 선생... 병을 고칠려면 억지로라도 좀 먹어야 돼요...
병원에서 한다는 짓들이라는 게 신체 기능을 다 잘라 내지 않나
항암제니 방사선이니 해 가면서 독약이나 다름없는 것들을
몸 속에 마구 집어 넣고 쏘이지를 않나...
그러니 아무리 몸에 좋다는 음식인들 먹히겠냐 말이요...
이거야말로 생사람 잡는 짓들이지....."

장 선생은 말끝마다 서양의학을 호되게 비판했다.
서양의학은 인체에 나타나는 증상을
모두 질병으로 본다는 거다.

몸에서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여서 억지로 열을 낮추고
설사를 하면 지사제를 써서 억지로 설사를 멈추게 한다는 거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사람에게 생기는 증상을
몸 안에서 자연적으로 치유하려는 현상으로 본다는 거다.

이를테면 몸에서 열이 나면
몸 안에 들어 온 병균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
열을 내는 것이라 보고 오히려 열을 더 북돋운다는 거다.

설사를 하면 몸 안에 있는 이물질이 더 많이 빠져 나가도록
오히려 설사를 더 북돋아야 한다는 거다.

간질의 경우도 온 몸을 떨면
몸에 피를 돌리기 위해 떠는 것으로 보고
더욱 더 떨게 해 주어야 한다는 거다.

우리는 장 선생의 주장이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현대의학의 성과와 업적을 전적으로 외면하고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왕에 광주까지 먼 길을 온 바에야
민족생활의학과 자연 건강법이 무언지...
혹시 무슨 도움이라도 얻을 수 있는지...
알아 보는 정도라도 필요하겠다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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