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잠자리

 

 

나와 혜숙은 장 선생이 열정적으로 거침없이 쏟아내는 말들을
그저 잠자커니 듣기만 했다.

마음 속으로 미심쩍은 내용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이론적으로 잘잘못을 따지거나 확인해 가면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황당하리만큼 자신만만하다 싶어

일단 들어 보고 받아 들여 본 연후에
지속적으로 실행하거나 매달리는 것은
차후에 우리가 알아서 스스로 선택할 문제라고 여겼다.

숙변의 원인과 대책에 대한 설명에 이어
장 선생은 우리 민족 전통의 생활 무예와
도인술에 배어 있는 단련법을
민족의학 운동요법이라 하여 소개했다.

우리의 몸은 아침에 일어나서 활동하는 동안
체액이 산성으로 기울어지게 된단다.

그러므로 밤이 되면 휴식과 잠을 통해서
체액을 알칼리성으로 조절해야 하는데
우리 몸은 자연적으로 이러한 조절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면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나무로 된 평평한 침상 위에서
목침을 베고 자는 것이란다.



평상과 목침은 조상 전래의
잠자리 생활 방식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직립해서 생활하기 때문에
척추에 많은 부담을 주게 되고
이로 인해서 척추가 뒤틀리거나 비뚤어져서
만병을 가져오게 되는데
이 척추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지혜가
바로 평상에서 자는 방법이라는 거다.

두꺼운 요와 이불, 특히 서구화된 요즈음
우리의 잠자리 문화를 뒤바꿔 놓다시피한 침대는
건강에 아주 나쁘다는 것이다.

원통을 반으로 잘라 놓은 모양의 목침...
목침 역시 직립 보행으로
뒤틀리거나 비뚤어진 경추를 바로 잡아 준단다.

푹신한 베개는 오히려 잘못된 경추를 더 고정시키게 된단다.
그러므로 잠을 자고 일어나도 머리가 개운치 않고
뻐근하고 무거운 기분이 들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의 잠자리 문화가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침대 생활을 해 왔다.
당시에는 침대가 아주 귀할 때였지만
어머니께서 진찰용으로 사용하던 것 가운데
제일 크고 좋은 것을 골라 내게 주셨다.

고향 인근에 미 공군부대와 비행장이 있는데
아마도 미군 장교의 사택에서 사용하던 것 아니었나 싶다.

두꺼운 철과 강고한 스프링으로 만들어진 침대는
푹신한 탄력성이 아주 좋았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챔벌링처럼
침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어 놀기도 했다.

오랜 세월 침대 생활을 하다 보니까
나는 너무도 지겨워서 내 방에서 침대를 없애버렸으면
하고 바랜 적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침대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집안에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내게
침대를 다른 사람에게 주든지 처분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신다.

그러면 나는 어쨌거나 오랜 세월
나의 생활 가운데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침대가
나와 영영 헤어지게 되는 게 몹시도 안타깝고 서러웠다.
침대가 괜시리 불쌍해 지기도 했다.

그리고는 다시금 침대를 소중하게 껴앉고 생활했다.
내 생활의 한 부분이라 여기고
할 수 없이 버리지도 못 하고 간직해 온 것이다.

그러다가 서울에 집을 마련하고 혜숙과 결혼하고 나서
나는 굳이 침대를 서울로 옮길 생각이 없었다.
아마도 내게는 침대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던 듯 싶다.

다른 한편으로는 침대를 버리거나
처분하겠다는 마음도 그리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용하지도 않을 침대를
보관해 두어야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침대에 얽힌 나의 이런저런 심사를
훤히 알고 계실 부모님께 처분을 맡기기로 작정했다.

결혼하고 몇 달 후에 부모님이 서울로 이사 오셨다.
이삿짐에 내 침대가 없다.
나는 침대를 어떻게 하셨느냐고 여쭙고 싶었지만
그 순간 침을 꿀꺽 삼키고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는 침대에 대해서 평생 여쭙지 않고 있다.

평상과 목침에 대해서 장 선생이 설명한 바대로라면
병은 아내보다 내가 먼저 걸렸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침대 생활 뿐 아니라 베개도 늘 높게 베고 잔다.

지금도 우리는 여름이건 겨울이건 요를 두껍게 깔고 잔다.
아내도 그렇겠지만 나는 평상 위에서
낮은 원통형 목침을 베고 자는 생활을 할 자신이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일종의 고문이나 다름없다.

오랜 동안 단련하고 익숙해지면
좀 편안해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 보았지만
그렇더라도 부부 생활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나와 혜숙은 훈련받고 있는 동안에는 일단
규칙과 권면에 따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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