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누어서 자는 게 소원



그 때 혜숙의 나이 34 살
여자로서 한창 젊디 젊은

어쩌면 미처 다 피어 보지도
맛보지도 못한 나이  

초등학교 3 학년 1 학년
갓 첫돌 지난 막내를 둔

세 아이의 엄마...

광주에 억지로 끌려 갔다 올라 와
방사선 치료를 받고
항암제를 맞는다. 

혜숙은 점점 더
아무 것도 먹지를 못한다.

물 한모금조차
삼키기를 힘들어 한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마다
토해 내기 바쁘다.

물만 먹어도 토하고
먹은 것 없이도
헛구역질 해 대며 계속 토한다.

머리털은 뭉텅뭉텅 빠지고
곁에 화장지와 휴지통을 끼고 산다.

내장 속에 쓰디쓴 쓸개액과
아직 남아 있는 액체란 액체 

모두 입으로 토해져 올라오면서
혜숙은 더욱 고통스러워 한다.

식도와 콧잔등이
헐대로 헐고 망가져서
얼마나 쓰라리고
견디기 힘들던지

방바닥에 떼굴떼굴 나뒹굴며
고통을 호소한다.

학생 시절 
나를 그토록 따르고
사랑하던 혜숙이

내가 감옥에 갇혀 있을 적에
하루도 빠짐없이 면회하고
옥바라지 하던 여대생

그 여인을 두고서
' 앞으로는 내가 절대로 놓치지 않으리라 ’
결심하고 결혼했는데

이제 나로서는 더 이상 
어찌 해 볼 도리 없는 상황으로
점점 가버리고 있는 게 아닌가...
 
5 월 5 일
혜숙은 갓 돌 지난 막내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야외에 나가 보고 싶단다.

기왕이면 이대 민주동문회가 주최하는
어린이날 가족 행사가 있으니
같이 참석하잔다.

스스럼없는 동창 선후배들이 모이는 자리에
막내는 그렇다치고

나와 시어머니까지 
온 가족을 함께 동행하고 싶어하는 건
무슨 까닭일까? 

혜숙이 죽더라도 
철모르고 자랄 막내를
잘 지켜 봐 주고

자식들을 키워 줄
남편과 시어머니를 
스스럼없는 동창들에게
잘 부탁하겠다는 의미는 아닐까?

혜숙이 죽음을 준비하느라고
그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치면서
몸서리쳐 진다.
. 
아내를 온전하게 지켜 내지 못하고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죄책감에선지

혜숙의 동창 선후배들과 그 가족을
집단적으로 만나기가 조금은 거북하다.

하지만 막내에게
무슨 기억 하나라도 더 남겨 주려는

엄마로서의 간절한 소원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혜숙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그날 혜숙의 동문들은
우리 가족이 나타나자
기대하지도 못한 일이라면서
반가워 어쩔줄 모른다.



경치 좋고 공기 좋은 서오능 이곳저곳을 배경으로 
엄마와 막내가 함께 노는 모습을
사진기에 담아 보내 주기도 한다.

혜숙은 똑바로 누어서 잠들지를 못한다.

수술 중 위에 붙어 있는 횡경막도 함께 잘려 나가
구토하면서 올라 오는 걸 막아 주는 기능이 없어진 것이다.

속에서 쓴 물이 올라 오면 
몸을 일으켜 앉아서 내려 보내고
가라 앉으면 다시 눕곤 한다.

앉았다 누었다 하기가 더 힘이 드는지
밤에는 아예 앉아서 잠들곤 한다.

혜숙은 앉아서 자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단다.

맘 편히 누어서 자 보는 게
그렇게 소원일 수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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