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미움과 증오와 저주


 

물 한 모금 먹어도 토하고
급기야는 침까지도 삼키지 못한 채
입 밖으로 질질 흐르는 모습...

머리털은 거의 다 빠지고 
핏기 없이 창백한 몰골...

혜숙은 암 환자의 마지막 모습으로
점점 변해 가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
건강한 것에 대한 증오도 나온다.

가족들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할 때면 
혜숙은 철딱서니 없는 미운애기처럼
공연히 짜증을 부린다.

밥을 꿀꺽 넘기는 소리 
수저와 밥상이 톡톡 부딪치치는 소리
김치 씹는 사각사각 소리 등등

평소에는 전혀 관심도 두지 않고
기억에 남겨 두려고 해도 더듬어지지 않는 소리 따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화를 낸다.

함께 식사를 하다가도 느닷없이
“그래! 맛있게 잘들 먹어!”
하고 신경질을 부리며 옆방으로 나가 버린다.

나와 시어머니를 대하는 표정도
점점 미움과 증오로 변해 간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가
배배 꼬인 꽈배기처럼 뒤틀려 나타난다.

언젠가는 내가 물 한 사발을
꿀꺽꿀꺽 마시고 있는데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을 느껴
돌아 보니

혜숙이 증오서린 눈길로
나를 노려 보고 있다.

원혜영이 개발해 가져 온 야채 엑기스와 현미효소
김영인이 지어 준 보약
최정순이 한약재를 넣어 삶아 보내 준 개고기
연구원 식구가 보내 준 장어탕 등등

몸에 좋다는 음식과 보약을 버리기 아깝다며
한사코 시어머니께서 드시라 하고서도
막상 시어머니가 드시는 것을 보고는
얄미워 한다.

말 마디마디마다 평소처럼
정상적이지 않고
배배 꼬인 투로 변해 간다.

" 내가 싫지? 지금 내가 귀찮아 죽겠지? 피곤하지?
내가 얼른 죽어버렸으면 좋겠지? 그렇지?"

사실 나는 혜숙이 그럴 적마다
정말 피곤했다.

혜숙이 저토록 고통스러워 하니
나무랄 수도 없고

사랑하는 가족에게까지 이러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겐
정말 보여 주기 싫었다.
  
" 내가 죽을 것 같애? 나 안 죽을 꺼야! 
내가 살만큼 살다 죽을 꺼라구! "

신경질은 점점 더 날카로워 진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한 모습 자체를 미워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자기 혼자만이 겪고 있는 현실을 

혜숙은 증오하고 저주하는 것이다.

죽어 가는 암 환자의 심리 상태에서 두 번째 단계를
혜숙은 예외 없이 겪고 있는 것이다.

너는 멀쩡하고 아무 걱정 없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이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떨어야 하느냔 말이다.

그러면서 거부하고 부정하는
첫 번째 단계로 가기도 하고

때로는 부정과 거부
증오와 저주가
뒤섞여서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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