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또 하나의 시련

 

 

한편으로 그 당시 우리 가정은
경제적 사정까지도 큰 곤경에 빠져 있었다.

나는 감옥에서 마악 출소하고 혜숙은 약국을 후배에게 맡겨 놓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데다가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까지 처분해야 할 처지였다.

혜숙은 나에게 재정적 부담을 안기는 것이 무척이나 미안하고 죄스러웠던지
주저주저 하면서 조금씩 말문을 열려고 했지만 나 또한 사정을 알기가 두려웠다.

나는 네 번을 감옥에 드나들면서도 내 또래의 다른 동료들에 비해서는
경제적 형편이 그리 못한 편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제적된 상태였지만 일찌기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거기에다 결혼하고서부터는 집을 장만하고 약국까지 운영했으니
다른 동료들보다 형편이 좀 괜찮은 편이었다.

아마도 그 당시 내가 직장 생활을 하고 혜숙이 약국을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적금을 들고 저축을 했더라면 또는 여유 자금을 만들어
이리굴리고 저리굴리는 데 관심을 가졌더라면
우리는 70 년대 말부터 돈을 좀 모아 둘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나는 내가 받은 만만치 않던 수입 모두를
운동 단체를 설립하고 유지하는데 써 왔다.

말하자면 재야 민주화 운동 단체의
재정 책임을 맡아 해 온 것이다.

그러다보니 비축한 재산이나
저축한 돈이 남아 있을 턱이 없었다.

오히려 세상을 살면서
갚아야 할 비용과 감당해야 할 빚들이 조금씩 늘어 났던 것이다.

혜숙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내가 먼저 감옥에 들어 가게 되면
지명 수배된 동료들이 혜숙을 찾아 온다.

감옥에서 나올 때마다 우리 집에는 내가 신었던 양말이나 입었던 옷가지
속옷까지도 남아 있지를 않았다.
도피 중인 동료들이 모두 가져가는 것이다.

그 뿐인가?
약국에는 언제나 다만 얼마라도 현금이 있을테니까
돈이 떨어지면 동료들이 혜숙을 찾는다.

그럴 때마다 혜숙은 있는 돈을 몽땅 털어 주곤 했다.
어느 날 혜숙이 심각한 사정을 내게 털어 놓는다.

"당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
내가 집안 일을 잘 건사했어야 했는데...
이런 말을 하게 돼서 미안해...
당신한테 지급된 월급과 상여금은
꼬박꼬박 수령해서 수배 중인 동료들한테 전달해 왔어...
쫓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약국에 있던 돈도 좀 보탰고...
그러다보니까 빚도 좀 지게 됐어...

여보! 나 지금 돈 때문에 피가 말라 죽겠어...
이거 어떻게 좀 해결해 줘...
내가 이렇게 죽어 가고 있는데 나 죽은 뒤에
나 때문에 경제적 피해를 볼 사람들한테서 받을
원망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

당신은 어차피 아이들하고
건강한 몸으로 살아는 갈 테니까...
죽어 가는 내 소원 좀 들어 줘 여보!!!
지금 당장 약국을 정리하고 집을 처분해야 될 꺼야 여보!!!
흐흐흐흑......"

혜숙은 내게 울먹이며 매달리다시피 했다.
집을 처분해야 할 정도라니...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혜숙이 기록해 둔 메모지를 보았다.
갚아야 할 돈이 모두 합해서
그 때 돈으로 4 천 8 백 만 원 가량이다.

막상 약국을 처분하려다 보니까
그동안 약품을 제약회사에서 외상으로 들여와
현금을 받고 팔다 보니 받을 돈은 거의 없고
갚아야 할 외상매입금만 남아 있었다.

41 평 가량 되는 집과
약국 임대보증금 등등을 합해서 처분하면
대략 5 천 여 만 원 정도가 된다.

혜숙이 소원대로 당장에 빚을 몽땅 갚고 나면
한 2 백 여 만 원이 남게 된다.

우리 여섯 식구가 길거리에 나 앉을 수는 없고
살만한 전세를 얻으려면
그 때 돈으로 1 천 만 원 정도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8 백 만 원 가량의 빚은
계속 더 남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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