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1 년은 살아 있어야 돼!

 

 

나는 당장에 대답을 못 하고 주저주저 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내게서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닐테고...
아무런 반응이 없자 혜숙은 보름마다 한 번씩
두 번을 더 울먹이며 내게 매달렸다.

이 때 혜숙의 상태는
점점 죽음의 나락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6 월 중순 경...
혜숙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했다.

이제는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당신이 가부간에 대답하고 결단을 내려야 된다고 했다.
나는 혜숙에게 말했다.

"우선 약국부터 정리하고 급한 불부터 꺼 나가자 여보...
집은 우리가 장만한 것도 아니고
어머니 명의로 되어 있으니 그냥 두고...
내가 집을 안 팔고도 당신 보는 앞에서
1 년 안에 빚을 다 갚을께...
그대신 당신... 앞으로 1 년은 꼭 살아 있어야 돼!
빚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죽으면 안 돼! 알았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고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나는 죽음을 앞둔 사랑하는 아내의
마지막 남은 애절한 소원과 기대를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그동안 마음 속으로 각오하고 다짐했던 계획을
나는 당장에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나에게는 뭔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왠지 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돈을 굴리고 재산을 축적하는 일을
해 본 적은 없었지만 해 낼 자신이 있었다.

다가 올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나는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자라오는 과정에서
나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그리 시달리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공부나 진학 문제에
그리 걱정하고 불안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결혼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택에 대한 문제를 걱정해 본 적도 없다.

자녀 교육에 대한 문제 역시
지금부터 신경을 곤두 세우고 준비해 놓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크면 그때 가서 감당하면 되는 거지...
하는 자신감이 늘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1 년 안에 해 낼 꺼야... 해 낼 수 있어...
그런데 우리 혜숙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떻하지?
그러면 혜숙이 한을 남기게 될 텐데...
혜숙은 올 12 월까지만이라도 살아 있었으면 했는데...
기간 좀 줄여 보자... 올 연말로... 6 개월로 줄여 보자...
그래 6 개월 안에 감당해 보자'

나는 우선 약국부터 정리했다.
약품 도매상을 운영하는 분에게
관리 약사와 함께 전적으로 맡아 경영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은 돈으로 우선 시급한 부채부터 갚아 나갔다.
내 사업 자금으로 43 만 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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