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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세민약국과 나눔기획

 

 

직접 찾아가서 만나기로 작정했다.
그러다보니 연락처가 있어야 했고
명함이 있어야 했다.
상호가 있어야 했다.

그로부터 9 년 전이던 78 년 6 월
혜숙이 나와 결혼하면서
약국을 차렸을 때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혜숙의 약국 상호를
무엇으로 할까? 궁리했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가 들어 서 있고
다가구 주택으로 변해 있지만
그때 적만하더라도 우리가 살던 곳은
닭장 동네라 불릴만큼 판잣집이 많았다.

그나마도 세들어 사는 이들이 많이 살던
달동네 어귀였다.

나는 '씨알' 약국이라 할까?
'민중' 약국이라 할까... 했다.

너무 '티'를 내고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았다.

조선조 숙종 때
우리 백성들은 참으로 생활이 곤궁했다.
많은 이들이 기아에 허덕였다.

함경도 평안도 등
북쪽 지방이 더욱 심했다.

백성들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맸다.
조상이고 친척이고 고향이고를 떠나
뿔뿔이 흩어져 헤매고 다녔다.

산에 닿으면 산나물을 뜯어 먹고
물에 닿으면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들에 닿으면 품을 팔아
곡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이런 이들을 일컬어 세민(細民)이라 했다.
가난하고 천한 이들이다.

함석헌 선생의 상징어가 된 '씨알'을
한자(漢字)로 표현할 때
민중(民衆)보다는 세민(細民)이 더 가깝다.

서양철학에서 임금 노동자 무산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안(Proletarian)이라는 개념보다도
더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말이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나는 혜숙의 약국 상호를
'세민약국'이라 작명했다.

한자로는 쓰지 않았다.
험악한 시절 냉전의 세상에서
상호에 담긴 의미를 가지고
괜한 빌미를 살까 염려해서다.

약국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더러 묻는 적도 있다.

상호가 부르기 쉽고 마음에 든단다.
무슨 의미냔다.

부부간에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지은 것 아니냔다.
그렇지 않다고 했다.

영세민(零細民)에서 영(零)자를 뺀 거 아니냐고 한다.
그렇다고 했다.

그 후부터 혜숙은
상호에 대해서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이 동네가 옛날부터 가난한 이들이 많이 살았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닭장동네라 해서
다닥다닥한 판잣집에 닭장처럼 옹기종기 모여 산 사람들이 많았잖아요.
그 분들이 다 영세민들이잖아요...
근데 '영세민 약국'하면 좀 이상하고 동네 자존심도 상할 것 같아서
'영' 자를 빼고 그냥 '세민약국'이라 했어요..."

상호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회상에 잠기던 나는
이번에는 무얼로 지을까 궁리했다.

목적과 대상이 되는 객관적 개념보다는
실천과 행동...
구체적인 당위를 뜻하는 개념을 찾고 싶었다.

'나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실천적 개념이다.
분배의 정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한 행동적 개념이다.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종교 단체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나눔' '나눔기획' '출판인쇄 나눔기획'......
상호를 '나눔기획'이라 정하고 명함을 만들었다.

사무실 입구에 네모반듯한 간판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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