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1970 년대 민주화 운동과 기독교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이고
그 후 협의회 총무를 맡았던 김동완 목사에게서 만나자는 전갈이 왔다.


김동완 목사는 내가 소속된 감리교단의
교회 개혁과 사회 운동을 실천적으로 대표해 오던 분이다.

 

▲ 김동완 목사 (1942 ~ 2007 )


김동완 목사는 일찌기 박형규 목사와 더불어 빈민 운동과 노동 운동
우리 사회의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 오면서 세 차례나 구속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나와 혜숙은 김동완 목사와 각별한 관계로
함께 기독학생 운동을 하기도 했다.

"아니! 이게 무슨 난리야!...
우리 혜숙 씨 병 구완도 못 하고...
세상에 최 아무개가 이렇게 돼도 되는 거야???
이게 말이나 되는 거냐구!!!
당신이 감옥 들어가기 전 기사연(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 있을 때
당신들이 계획하고 준비해 왔던 '1970 년대 민주화 운동과 기독교'를
우리 인권위원회에서 펴 내기로 했소...
기사연에서 내게 되면 정보 기관의 압력을 버텨 내기도 어렵고
위험할 것 같아서 우리가 내기로 한 거요...
어차피 당신들이 계획하고 준비해 온 거니까
기왕이면 직접 맡아서 출판까지 해 주시오...
예산은 한 1 천 5 백 여 만 원을 당신도 알다시피 별도 통장으로
관리하고 있으니까 필요하면 언제든지 가져다 쓰고..."

원고를 가져 왔다. 실로 엄청난 양이다.
4 . 6 배판으로 2,200 여 페이지 가량 되는 분량이다.
당시 20 여 평형 아파트 값이 천 여 만 원 할 때던가 그랬다.

상황이 또 바뀌었다.
공타기로 조판하기에는 어느 세월에 마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첨단 컴퓨터 기술을 응용해서 마악 새로 개발해 시중에 나온
전산 조판기를 구입해야 했다.

다시 보름 만에 사무실을 40 여 평으로 늘리고
최신형 한컴 전산 조판기 4 대와 사진식자기 1 대를 리스로 구입했다.

<말> 지를 비밀리에 인쇄하기 위해서 서울 시내에는 3 대밖에 없다는
미국산 최신형 4 절 마스터 인쇄기도 리스로 구입했다.

구입 비용이 6 천 여 만 원에 달했다.
15 평 남짓 되는 인쇄 공장도 별도로 마련했다.

직원도 20 여 명으로 늘었다.
시작한 지 40 여 일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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