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마지막 예배

 

 

한편 혜숙은 이제
죽음을 준비하고 정리하는 단계도 지나 있는 듯 싶다.

앞으로 몇 날을 더 살 수 있을지
내일이건 모래건 숨이 끊어지면 그냥 죽는거지 하는 표정이다.

의학 용어로 터미널 (Terminal) 상태...
우리 말로 풀자면 종착역 종점에 임박해 있는 상태다.

7 월 첫째 주...
혜숙이 여러 달 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하자
담임이신 조승혁 목사님과 교인들이 심방을 오셨다.

목사님과 교인들 모두 혜숙이 운명하기 전
마지막 심방 마지막 예배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조 목사님의 심방 예배가
마지막일 꺼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 조승혁 목사 (1935 ~ 2014 )


혜숙이 자신도 살아 있는 동안
마지막 예식이 되겠구나 싶단다.

혜숙은 교인들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듯
목사님과 교인들이 대문으로 들어 서는 기척에
벌떡 일어서서 울음으로 맞이한다.

방이며 마루 가득히 둘러 앉아 예배드리는 동안 내내
혜숙은 엎드려 앉아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흑흑거렸다.

나는 혜숙과 만난 이래로
이처럼 절망적인 혜숙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혜숙은 체신이니 뭐니 아랑곳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 콧물을 쏟으며 소리내어 통곡했다.

"... 하나님!!! 왜 이 여인을 데려 가시려는 겁니까?...
오랜 세월 한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열망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의로운 길을 걸어 온 여인이
왜 민주화 되는 세상, 좋은 세상을 못 보고
이다지도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 겁니까?...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온갖 역경과 고난을 겪어 온 남편을 뒷바리지하고
어려운 동료들을 보살펴 온 당신의 귀하고 의로운 따님을
주님! 데려 가시면 안 됩니다.
앞으로도 주님을 위해서 해야 할 소중한 일들이 많이 남아 있사오니
할 일 많은 이 여인을 주님!!! 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꼭 살려 주셔야 합니다.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조승혁 목사님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온 몸에 땀을 흠뻑 흘리며 간절하게 기도하셨다.
참석한 교인들도 모두 울고 통곡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목사님은 교회가 세워진 이래 이처럼 뜨겁고 간절한 마음으로
전 교인이 합심된 기도를 드린 적이 없었다고 하신다.

안수 기도 중에 조승혁 목사님은 배와 등허리 쪽으로 심한 통증을 느끼셨단다.
통증을 견디다 못 해 기도 소리가 더 커졌다고 한다.

함께 울고 통곡하고 기도하던 혜숙은 마음이 조금 평온해 지는 듯 했다.
그날 밤 혜숙은 오랜 만에 모처럼 잠을 편하게 들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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