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부 / 89. 가족 여행

 

지금까지의 그리 짧지 않은 이야기들은
내 아내 혜숙이 1987 년 4 월 암 수술을 받고
그 해 7 월 중순 경까지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내 인생에 너무 충격적이고
그만큼 힘들었던 사건이었기 때문인가
3 개월 여 동안의 이야기로는
너무 길고 지루한 점 없지 않았다.

이제 호흡을 좀 빨리 해서
마무리 정리를 해야겠다.

1985 년 7 월 마지막 주간에
우리 가족은 다함께 동해안에서 휴가를 보냈다.

어머니와 두 아이까지 모두 함께 여행하기로는
실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때 혜숙은 내게 조용히 임신한 사실을 알리고 
꼭 건강하게 낳고 싶다고 했다. 

 

나는 뜻밖의 통보(?)에 약간 멈칫했지만
이내 고마운 마음에 손을 꼬~옥 잡고
격려의 뜻을 담아 어깨를 감싸안아 주었다.

 

이처럼 온 가족이 함께 단란하게 여행하는 것이 
혹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아내와 아이들, 어머니를 모델로 삼아 사진 찍기에 바빴다. 
 

무려 여덟 통을 찍었다. 
이 사진들은 지금도 우리집 앨범에 담겨 
암울했던 가운데서도 한때나마 즐거웠던 가족 분위기를 소중하게 밝혀 주고 있다.

 

오색약수터 근처에 숙소를 마련하고 

탐방로를 따라 선녀탕과 금강문을 지나 용소폭포에 닿았다.

 

▲ 1985년 7월, 막내 중현이를 임신하고 설악산 용소폭포 앞에서


용소폭포는 높이 약 10m, 소 깊이 약 7m로, 
이 소에서 살던 천년 묵은 암수 이무기 두 마리가 용이 되어 승천하려다가
숫놈만 승천하고 암놈은 미처 준비가 안 된 탓에
이곳에서 굳어져 바위와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후 4 년 뒤
막내 중현이가 세 돌 되는 해 여름
우리 가족은 또다시 동해안과 설악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 때에 어머니는 힘이 드실 것 같다고 집에 계셨다.

초등학교 5 학년이던 딸 사옥이와 3 학년이던 아들 중수에게
체력 단련도 시킬 겸 해서 설악산 금강굴을 향해 올라갔다.

비선대에 이르러 우리는 주변의 경관에 취해서
잠시 쉬고 있었다.

거울처럼 해맑은 물 하며 물줄기에 곱게 다듬어진 웅장한 바위들은
깍아 세운듯한 산줄기를 배경으로 자연이 빗어 놓은 아름다움을 한껏 빛내주고 있다.

비선대에서 흘러 내리는 물은 이내 큰 바위를 굽이쳐 폭포로 변한다.
폭포 위로는 비선대 각자바위에서 연못으로 건너가는 사다리형 다리가 놓여 있었다.

 

▲ 설악산 비선대

 

▲ 비선대 각자바위 : 비선대 암반에 새겨진 각자로 세로로 내려 쓴 글씨가 선명하다.

 

세 아이와 우리 부부는 각자바위 아래 다리를 건너

위에 보이는 고인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취한 듯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 댔다. 

세살배기 막내 중현이도 신명이 났던지 
옷을 홀랑 벗어 버리고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잠깐 절경을 둘러보는 사이에 
막내 중현이는 사다리형 다리가 신기했던지 
그 쪽으로 다가가 사다리 사이에 팔을 걸치고 폭포 위에 서 있었다. 

다시 위로 오르기가 어려웠던지 
중현이는 잡고 있던 사다리를 놓고 
밑으로 빠져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막내가 폭포 아래 낭떠러지로 
휩쓸려 떨어지리라 직감했다. 

중현이를 구해 낼 시간이 없었다. 
비명소리를 내지르는 것 외엔 방법도 없었다. 

나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연못에서 뛰쳐 나왔다. 

 

 

하지만 중현이는 이미 
물살에 몸의 중심을 잃고 기우뚱거리더니 
거대한 폭포에 휩쓸려 낭떠러지 절벽으로 떠내려 갔다. 

이제 
중현이를 살릴 방법이 없다. 

나는 몸을 돌보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이 
막바로 낭떠러지 절벽 폭포를 향해 몸을 내 던졌다. 

천만다행이게도 폭포에 미끄러져 내려 오는 중현이보다 
한 뼘 정도 먼저 떨어 질 수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바위에 부딪칠 찰라에 있는 
중현의 머리를 팔등으로 막아 냈다. 

중현이의 머리와 몸이 
내 팔등에 세차게 부딪쳤다. 

그리고는 퉁겨져 나와 
폭포를 타고 웅덩이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재빨리 물 속으로 따라 들어가 
가라 앉는 중현이의 몸을 찾았다. 

잠시 후... 
나는 중현이를 받쳐 들고 
물 위로 떠올랐다. 

주위에 있던 관광객들이 모두 경악하면서 
삽시에 폭포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내가 중현이를 받쳐 들고 물 속에서 떠 오르자 
300 여 관광객들은 
"와 ㅡ !!!" 하는 함성과 함께 
힘차게 박수를 쳐 댔다. 

나는 새파랗게 질리고 놀란 중현이를 
가슴에 꼭 껴안고 
한동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관광객들은 팔과 팔을 이어서 
인간 밧줄을 만들어 중현이를 받아 올려 주었다. 

중현이가 무사하게 구출되는 순간 
다시 한번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중현이를 올려 보내고 
너무 긴장했던 탓에 호흡을 가다듬던 내가 
인간 밧줄을 잡고 마지막으로 기어 올랐을 때 
주위 분들 모두 비선대가 떠나갈 듯 함성을 지르며 
우렁찬 박수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설악산에 머물 기회가 있으면

나는 되도록 비선대를 찾아 옛 추억을 기린다. 

 

[영상] 비선대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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