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비선대 추억

 

혜숙은 그때 막내와 내가 
함께 죽는 줄로 알았단다. 

혜숙이 면전에서 
사옥이와 중수가 벌건 대낮에 
시퍼런 눈으로 지켜 보고 있는 가운데서 
막내와 아빠가 사고를 당해 죽는구나 했단다.

 

 

혜숙은 중현이를 품에 꼭 안고 있었다.
중현이는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그날 중현이 귀에서
혜숙은 큰 귀우지 덩어리를 빼내었다.


내 팔뚝에 차고 있던 시계는
중현이 머리에 받쳐 바위에 부딪치는 순간
박살이 난 채 떨어져 나가 버렸다.

 

모여 있던 관광객들이 우리 가족에게 다가 와서
내게 악수를 청하고 중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모두들 천만다행이라고 위로한다.
참으로 고맙다고 인사한다.

내가 먼저 격려와 도움을 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일일이 올려야 했는데
모두들 오히려 먼저 내게 고맙다고 한다.

 

        ▲ 비선대 폭포에 떨어진 후 구출된 막내 중현이


이제 모여 있던 관광객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나도 점점 안정을 되찾아 갔다.

나는 사옥이와 중수에게
계획했던 대로 금강굴에 올라 갔다 오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들도 너무 놀란 가슴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나는 아내와 막내를 쉬게 하고
사옥이와 중수의 손목을 잡고 금강굴로 향했다.

힘들다는 투정없이
땀을 흘리며 산에 오르는 아이들 모습을 지켜 보면서
나는 가슴이 뿌듯해 왔다.

 

        ▲ 금강굴에서 중수와 사옥

이날 이후로
우리 아이들은 아빠에 대해서
무한한 신뢰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아빠는 자기들을 포기하지 않고
꼭 구해 주실 꺼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 가정에서는 이 일을 가끔씩 되돌아 보면서
화제를 삼아 왔다.

 

 

나와 혜숙은 막내가 너무 어릴 때라서
이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

몇 년이 흐른 뒤
막내 생일에 엄마가 이 이야기를 들려 주니까
그때서야 막내가 고백하더란다.

"엄마, 나 여태까지 엄마한테 비밀로 한 거 있는데...
말 해도 돼?"

"응, 그래그래... 뭔대? 우리 막내가 무슨 비밀이 있을까?
궁금한데?... 엄마한테 얘기해 봐. 무슨 비밀인지..."

"그때 아빠가 구해 준 거 나 기억하고 있어.
내가 잘못해서 그런게 아니라...
물미끄럼 타고 싶어서 일부러 그렁건데 아빠가 살려 준 거야...
지금까지 혼날까봐 말 안 하고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하하하... 아이구 우리 늦둥이!"

우리집 애들에게는 이 일이
두고두고 재미있게 구전되는 이야깃거리다.

이때부터 아이들이
아빠를 보는 눈빛과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아이들이 아빠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든든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 낙산해수욕장에서

 

 

'▷ 사랑과 희망으로 > 3. 죽음의 문턱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88. 죽으면 죽으리라  (0) 2008.01.22
89. 가족 여행  (0) 2008.01.22
91. YS 후보 진영에서  (0) 2008.01.22
92. DJ 진영과 재야 단체에서  (0) 2008.01.22
93. 분에 겨운 호사  (0) 2008.01.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