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DJ 진영과 재야 단체에서

 

 

대통령 선거가 중반으로 접어 들자
김대중 후보 진영에서도 주문 물량이 쏟아져 들어 왔다.

구속과 망명과 가택 연금으로 대부분의 세월을 보낸 탓인지
김대중 후보는 조직과 재정이 김영삼 후보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것 같다.

종교 시민 사회 단체의 연합체인 민통련에서는
선거 운동 방침을 김대중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 입장으로 정했다.

그리고 '김대중 선생 단일 후보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서
지지, 지원 활동을 벌여 나갔다.

87 년 6 월 민주시민 항쟁을 이끌었던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에서는 공정선거감시운동본부를 구성하고
전국적으로 부정 행위를 감시 고발하는 활동을 펴 나갔다.

나와 가까이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 온 이들은
대부분 '김대중 선생 단일 후보 추진위원회'에 참여했다.
일부는 김대중 후보 선거대책본부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이 두 조직에서는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국적으로 모금 운동을 전개했다.

곁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로
모금 운동은 그야말로 쇄도할만큼 큰 성과를 올렸다고 한다.

이 두 조직에서도 나에게 많은 일거리를 맡겼다.
서로가 어려운 사정을 익히 알고 있던 관계로
나는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을 마련해서 차질이 없도록 홍보물을 만들어 납품했다.

민통련과 국민운동본부에 속한 부문과 지역 활동 단체들에서도
아연 활기를 띠며 활발하게 움직였다.

모든 단체마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선거 홍보물이었던만큼
나는 그야말로 눈코 뜰새없이 거래처와 인쇄 골목을 누비고 뛰어 다녀야 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12 월 말이 다가오는 즈음에
나는 혜숙이 부탁한 빚을 모두 청산했다.

혜숙에게는 정작
'1 년은 꼭 살아 있어야 돼! 당신 가슴에 한을 남길지도모를
빚을 그 안에 꼭 갚고야 말테니까...'
하고 말했지만, 내 마음 속 깊이 다짐했던대로 올 해 안에,
연말을 넘기지 않고 모두 갚게 된 것이다.

6 월 말에 시작해서 12 월까지
6 개월 만의 일이다.

1987 년 12 월 31 일 자정에
나는 혜숙과 함께 교회에 나갔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지나간 1 년 동안의 감회를 말하고
다가오는 새해에 바라는 소원을 종이에 써서 촛불에 태우는 순서가 있었다.

나는 파란만장했던 한 해를 되돌아 보자니
솟구쳐 오르는 눈물을 견딜 수 없어 한참을 울먹였다.

"여보! 나 해 냈어...
당신 가슴에 그토록 맺혀 있던 빚을 다 갚았어...
이제 당신이 해 낼 차례야...
당신이 내 부탁 들어 주어야 할 차례라구...
당신 살아야 해! 당신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구!!!..."

나는 눈을 감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나의 아내, 우리 혜숙이와
제발 헤어지는 일 없이 오래오래 함께 살게 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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