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분에 겨운 호사

 

 

혜숙의 건강은 나날이 좋아졌다.
새해 들어서는 몸무게가 48 kg 까지 올라 갔다.

혜숙은 배가 고파 했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른 줄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승용차를 구입하고
주말마다 혜숙과 드라이브를 즐겼다.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 다녔다.
이제까지 살면서 해보지 못한 분에 겨운 호사였다.

혜숙도 건강에 자신이 있다며 운전 학원에 다녔다.
나는 혜숙과 보다 많은 추억을 남기기로 작정이나 한 듯
주말마다 전 국토를 누비다시피 했다.

온천을 찾아서, 음식점을 찾아서...
환상적인 드라이브 길을 찾아서...
동해로 남해로 서해로
산과 계곡과 바다로 여행을 다녔다.

혜숙은 그래도 성이 차지 않던지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던지
헐고 다시 짓던지 하자고 졸랐다.

그때까지 우리는 한옥집에서 살았다.
판자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산동네 중턱에
주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만큼
마당도 넓고 솟을대문이 육중해 보이는 가옥이다.

동네 아이들이 솟을대문 계단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이터를 삼고
상감마마 집이니 절간집이니 하고 불러대던 집이다.

하기사 겨울이면 웃풍이 세고 추워서 어머니께서도
부엌살림과 연탄 가는 일 등등으로 힘들어 하셨다.

혜숙은 다세대 주택으로 지어
좀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리저리 알아 보기까지 했는지
집터만 있으면 건축업자가 알아서 지어 준다고 했다.

전세를 내 주면 우리는 돈을 안 들이고도
한 층을 그냥 차지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몸도 성치 않은 혜숙이 간곡하게 바라기도 하고
살림을 맡아 하시는 어머니도 좀 편하실 것이라는 말에
집을 새로 짓기로 작정했다.

집안에 병고가 있거나 우환이 들면
집을 헐고 짓는 게 아니라는 풍습에
마음 한 편으로 찜찜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혜숙이 간절하게 바라고
어머니께서 편하시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앞서
건축업자를 선정하러 다녔다.

집을 짓는 동안 임시로 살 집을 마련해서
동네 이웃으로 이사했다.

반 지하실에 단칸방 두 개가 딸린 집이었다.
불편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한 3 ~ 4 개월 기다리면 되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온 식구가 견디기로 했다.

조승혁 목사님으로부터 안마에 능통하다는 분을 소개받았다.
주로 돈많은 재벌급이나 고위층을 상대하는 분인데
목사님의 각별한 부탁으로 시간을 낸다고 했다.

혜숙은 매일매일 두 시간 씩
그 분에게 안마를 받았다.

처음에 몇 번은 나와 어머니도 번갈아서 같이 받아 보았지만
나는 너무 아프기도 하고 시간 내기도 만만치 않아 그만 두었다.

하지만 혜숙은 좋아했다.
혈관과 경락을 지압으로 꼭꼭 집고 뼈마디마디와 내장 부위까지 맛사지하고나면
온몸이 그렇게 개운하고 시원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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