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얼굴 보는 게 마지막일지도...

 

 

중증 근무력증은
쉽게 고쳐 질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위암처럼 수술을 통해서 암세포를 떼어 내거나 제거하고
항암제나 방사선으로 치료하듯 정확한 치료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신 질환 치료처럼 효험이 있겠다 싶으면 일단 한 방법을 써 보고
그것이 혜숙에게 효과가 없으면 또 다른 방법을 써 보고 하면서
시체처럼 말을 듣지 않는 근육들이 혜숙의 의지대로 움직이도록 방법을 찾아 갔다.

처음에는 치료 방법 중에 하나로 부신피질 호르몬제를 강력하게 써 보았다.
그런데 효과가 전혀 없었다.
그러자 피를 깨끗하게 걸러 내는 혈액투석법을 써 보았다.

혈액투석이란 양질의 피를 공급하고 한쪽 팔에서 피를 빼 내어
혈액투석기로 걸러 낸 다음 다른 팔 쪽으로 보내는 방법이다.

혜숙은 암 수술과 항암제 주사 그리고 방사선 치료를 받느라고
혈액 농도가 아주 나빠져 있었다.

피가 너무 탁하니까 깨끗한 피로 만들기 위해서
혈액 투석기로 혈청 성분을 걸러 내는 것이다.

피갈이를 하는 동안 혜숙의 몸은 고무 호스줄로 칭칭 연결되어
온통 감겨 있다시피 했다.

피갈이를 5 ~ 6 회 계속하자 산송장처럼 처져 있던 혜숙의 눈꺼풀에 힘이 생겼다.
눈을 뜨고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 혈액투석법으로 신체 기능이 좋아져서
다른 치료와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주치의의 권유로 혜숙은
흉선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게 되었다.

어떤 임상 실험 결과 흉선을 제거하니까 근무력증 증세가 좋아 질 수 있었다고 하면서
혜숙이도 아마 흉선이 비대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아예 제거해 버리자는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매달리는 심정으로 우리는 수술에 기꺼이 동의했다.
수술에 들어 가기 직전에 간호사로 있는 처제가 내게 울먹이며 말한다.

"형부! 살아 있는 언니 얼굴 보는 게 여기서 마지막일지도 몰라요..."

나는 가슴이 떨리고 소름이 끼쳐 왔다.
혹시라도 암세포가 흉선에 전이되어 부풀어 오른 것이라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그 결과는 일단 수술을 해서 가슴을 열어 봐야 알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내게 수술 과정을 설명하는 의사는 의미심장하거나 심각한 표정이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만만하고 여유 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약간 안도가 되면서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나는 의사에게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는 아닌지 물었다.

주치의는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뒤집어서 말하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지만

나는 또다시 지옥에서 천당으로 오르는 끈을 쥐어 잡고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쳐대는 심정이었다.

" 그래. 걱정하지 않아도 될 꺼야...
주치의가 그리 걱정하지 말랬잖아...
혜숙이 다시 입원하게 된 것도 어쩌면 다행스런 일인지도 몰라...
이제 혜숙이 몸 속에 혼탁하고 오염된 피도 새로 갈고 깨끗해 졌잖아...
정말로 다행한 일이야...
이제 수술만 받으면 곧 나을 꺼야...
이제는 깨끗이 나을 수 있을 꺼야..."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천당으로 오르는 끈을 놓칠새라 꼭 잡고
희망의 세상을 맞이할 생각으로
오히려 가슴이 부풀어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는 혹시 거부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환자와 보호자의 심리는 아닐까 불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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