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새 집으로

 

 

흉선 제거 수술 뒤로 혜숙의 근무력증은 점점 나아져 갔다.
혜숙은 중환자실에서만 1 달 여
일반 병실에서 다시 보름 여 동안 입원해 있었다.

암 수술로 입원했을 때보다
무려 두 배나 오랜 기간을 입원해 있었던 셈이다.

그동안 우리집 건축도 모두 마무리 되었다.
반지하에 두 가구, 1 층에 두 가구
그리고 2 층과 3 층은 우리 가족이 살기에 알맞도록 설계해 지어 졌다.

새 집으로 이사한 지 닷새 후
혜숙은 한 달 보름 여 만에 병원에서 퇴원했다.

새 집으로 돌아 온 혜숙은
미처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 있는 짐들을 일일이 챙기고 싶어 했다.

커텐과 주방 시설은 물론이고 칫솔통과 비눗곽, 화장실용 슬리퍼까지
일일이 직접 참견해서 선택하고 싶어 했다.

새 집에서 우리 가족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 듯 했다.

근무력증 증세가 나날이 호전되어 감에따라
이제 병마는 옛집과 함께 우리 곁을 떠난 듯 했다.


* * *

암 수술한 지 2 년이 되었다.

후배 의사의 말로는 의학적으로 5 년 생존율이라 하지만
이를 다시 구분해서 우선 2 년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도 있단다.

말하자면 생존율이 낮으면 낮을수록 대개의 환자는

2 년 안에 암세포가 재발해서 죽음에 이르를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마의 벽 2 년의 관문을 넘어 서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다.

2 년 째 되는 날이다.

혜숙은 내 얼굴을 보지 않고
고개를 밑으로 수그린 채 내게 말했다.

"나 암으로는 안 죽을꺼야...
이런 말 해도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나 암 다 나았어..."

"아니... 주치의가 그래???
지난번 근무력증으로 입원해 있을 때 검사 해 본 거야?
정말 그렇대?..."

나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이제껏 나만 혼자서 가슴 졸여 왔던게 아닌가 했다.

"검사 안 했어...
검사는 해보나마나야...
암세포가 다 없어져서 나타나지 않을텐데 뭐..."

"그게 무슨 얘기야?..."

"...으응.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는데...
조 목사님이 우리집으로 마지막 예배 인도하러 오셨을 때
그날 나 성령의 은사 받았어..."

"...???..."

나는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린가 했다.
도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딱히 뭐라고 대꾸하거나 물어 볼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한참을 잠자코 있었다. 혜숙이 말을 잇는다.

"그날 밤에 자는데...
하나님의 성스런 형상이 나타나셨어...
나를 환하게 바라보시더니
'여인아! 이제 네 뱃속이 깨끗해지고 네 몸 속에 병이 다 나았으니 걱정하지 마라'
그러시더라구...
내 직업이 약사이다보니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선지...
처음에는 선뜻 믿어지지가 않았어...
뭘 좀 안다고...
암이란 게 그런 식으로 금방 낳을 병도 아닐꺼고
또 과학적으로도 5 년 동안을 살펴 보아야 하는 거라서 믿어 지지가 않았던 거야...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말씀드렸어.
'아직은 그렇게 안심할 때가 아니고...
더 열심히 치료하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되는데요?'
그랬더니 성스러운 형상이신 하나님께서
내 배를 십자가 모양으로 쫘악 열어 보여 주시더니
'보아라! 네 몸 속에 암세포가 다 없어지고 깨끗하게 낫지 않았느냐'
하시는 거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니까 정말로 암세포가 깨끗하게 없어진 거야.
그 순간 나는 그 발 앞에 얼른 무릎 꿇고 엎드려서 감사 기도를 드렸어...
바로 그 다음날부터 당장 배가 고파져서 마악 먹기 시작한 거야..."

"그게 벌써 언제 적인데...
1 년 반도 넘었잖아? 그 얘길 왜 이제서야 해?"

"그렇다고 떠벌리고 다닐 수도 없잖아...
직업이 약사라는 사람이 별 허튼소리 다 한다는 사람도 있을꺼구...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갖게 되는 심리 상태에서
자기 병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단계에서 나오는 소리일 꺼라는 사람도 있을 꺼구..."

"아무리 그렇더라고 그렇지... 나한테는..."

"당신도 그랬을 꺼 아냐. 암 환자의 심리일 꺼라구...
괜히 말 해놓고 상대방이 그런 의아심을 가지면 나만 모자라는 사람이 되고 바보가 되잖아...
지금 당신한테 이 말 하면서도 좀 찝찝해...
괜히 했나 싶구..."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 이런 말... 5 년 지난 다음에 할려구 그랬어...
병 다 낫고 난 다음에 당당하고 떳떳하게...
그동안 하나님과 나만 알고 아무에게도 말 안 할려구 했어...
괜히 바보 병신 취급 받을 게 싫기도 해서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나만 아는 비밀을 다른 사람들한테 말 하기 싫었던 거야.
왜 천기를 누설하면 그 벌을 다시 받는다고 그러잖아.
그래서 좀 찝찝한 거야..."

"하나님과 당신만 알면 그게 무슨 소용 있어?
성경에는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고 찬양하라 했어.
오히려 만천하 만백성에게 알리고 널리 간증해야 옳은 거지."

"그러잖아도 5 년 되는 날, 우리 교회에서 간증할려고 그래...
목사님의 안수로 성령의 은사를 받고 병고침 받은 거라고.
당신도 5 년 될 때까지 다른 사람들한테 이런 말 하지 말고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였던가?
나는 마음 한 구석에 혜숙이 2 년을 넘길 수 있을려나...
5 년을 넘길 수 있을려나... 하는 불안과 공포를 늘 안고 살았다.

위를 잘라 내고 비장과 췌장, 흉선까지도 잘라 낸 혜숙이
과연 얼마를 더 살 수 있을까 저으기 염려되었다.

하지만 혜숙은 언뜻언뜻 암으로는 죽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내면 깊숙히 있었던 것 같다.

암은 이미 다 나았다는 확신과 여유가
늘 마음 속에 차 있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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