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모르는 게 약

 

 

병실에 누어 있으면서
혜숙은 자신이 약사인 것이 싫다고 했다.

의사들이 자기들끼리 자연스럽게 전문 용어를 쓰고 영어를 섞어 가며
환자의 의학적 상태나 치료 방법 등을 의논하는데
그 내용들을 거의 알아 듣는 수준이다보니

자신의 몸 상태를 너무 적나라하게 알게 돼서
오히려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세상말로 '모르는 게 약'이란 말도 있는데...

혜숙은 위암 수술 때 췌장의 일부를 절제해 내는 바람에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혈당이 1,000 까지 올라 갔다.
인슐린을 링거에 섞어 계속 주입했다.

수술 후에 일시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혈당이 정상으로 돌아 오는데 일주일 가량 걸렸다.

중환자실에만 무려 30 여 일 있었다.
혜숙은 중환자실에 장기간 누어 있으면서
'내가 일반병실로 옮겨 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단다.

중환자실에서 오랜 기간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란다.

중환자실을 나서서 갈 곳은
영안실 아니면 일반 병실로 가는 두 길 뿐이란다.

혜숙은 중환자실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다.
언제 일반 병실로 옮겨 갈 수 있을까...
과연 그 길로 나갈 수 있을까... 했단다.

주치의는 하루라도 빨리
중환자실을 벗어 나고 싶어 하는 혜숙을 배려하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산소 호흡기와 함께
혜숙을 일반 병실로 옮기도록 했다.

일반 병실 환자들은
혜숙이 보기를 꺼려하고 무서워 했다.

기도에는 고무 호스를 달고
목에서 가래를 뽑아 낼 때마다
꽥꽥 하는 소리가 무섭게 들리고
곁에서 보기에도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던 모양이다.

성대를 제마음대로 쓸 수 없어
말을 하려면 목에 뚫어 놓은 구멍을 막아
가까스로 작은 소리, 바람 새는 목소리를 내면서 기를 써야 했다.

혜숙이 일반 병실에 옮긴 후 맏아들 중수가 병원에 들렀다.
한달 여 만에 보는 아들 얼굴이다.


혜숙은 초등학교 2 학년인 중수를 부둥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너무 갑작스럽고 생각지 않던 분위기라선지
중수는 "엄마! 왜 그래... 왜 그러는 거야 엄마!..." 하며 당황해 했다.

혜숙은 아이들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 가운데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오로지 아이들 생각에 뒤돌아 서서 나와
가까스로 다시 살아난 환상을 떠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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