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다시 찾은 세민약국

 

 

실제로 혜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성령의 은사를 받아
암세포가 완전히 없어지고 깨끗하게 병 고침을 받았다고 믿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확신하고 있었다.
나도 마음 속으로 점점 믿음이 생겼다.

언뜻언뜻 마음 한구석에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점점 자신감이 더해 갔다.
확신하는 마음으로 굳어져 갔다.

교회에서는 한달이 시작되는 첫째 주일마다
'박혜숙 권사의 건강을 위한 특별 기도회'를 갖었다.

낮 예배를 마치고 조승혁 담임 목사님의 인도로
전 교인이 다함께 참여하는 기도회다.

나는 1989 년 2 월
감리교 서울 종로지방회에서 장로로 안수 받았다.

기도회는 혜숙이 수술한 지 5 년 되는 날까지
무려 5 년을 작정하고 계속해 갔다.

혜숙은 별탈없이 건강을 유지해 갔다.
몸무게도 점점 늘어 50 Kg 까지 올라 가기도 했다.
우리는 주말마다 여행을 계속했다.

수술한 지 4 년 반 쯤 지나자
혜숙은 약국을 운영하고 싶어 했다.
약국을 다시 차려 달라고 내게 졸라댔다.

1991 년 가을 추석 무렵
그로부터 4 년 여 전에 넘겼던 세민약국을 다시 찾았다.
혜숙은 전에 없던 열성으로 신명나게 일했다.

매일 아침 8 시에 셔터문을 열고 밤 10 시에 문을 닫는다.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성으로 들어 준다.

동네 사람들의 상담역인 혜숙은 동네 사람들을
종우 엄마, 재헌이 아빠, 재경이 할머니라 부르면서 스스럼 없이 대한다.

동네 분들도 혜숙이 암을 이겨 내고
다시 약국을 차리게 된 것을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긴다.



손님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 역시 그 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이제 거듭난 삶으로, 새로운 삶으로 혜숙은 프로 약사가 되고 싶어 했다.

약사라는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혜숙은 주위 분들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박카스랄지 드링크제를 대접하는 인심도 후해 졌다.

생활이 어려운 이들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는
돈을 받지 않고 약도 그냥 잘 지어 준다.

학문적인 노력에도 열심이었다.
자연 건강법과 한약에도 관심을 쏟았다.

일주일에 3 일은 새벽 5 시부터 8 시까지
한약학을 배우러 다녔다.

새로운 의학 지식을 익히느라 열심이고
새로운 삶에 대한 감사와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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