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간증 ㅡ 하나님의 은총으로 / 박혜숙

 

 

(1) 먼저 드리는 말씀

오늘 본 교회 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성도님들을 만나 뵙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우선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신앙 체험을 귀한 예배 시간을 통해서

간증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3 기에서 말기로 진행 중이던 위암과 중증 근무력증에 따른 호흡 마비 증세로
두 번을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었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 일을 되돌아 볼 때마다 죽음의 사선을 넘고 소생의 길로 들어 서서
이처럼 건강한 몸으로 여러 성도님들 앞에서 간증할 수 있게 된 것을
저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별로 내세울 것도 없이 평범하게 살아 가는 저에게
귀한 은사를 세 번이나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마귀의 형상이 나타나서 저를 혹독하게 시험하고 갔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달콤하고 산뜻한 향내음으로 제게 향기로운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자마자 샘을 내고 시기해서인지 시멘트못 형상을 한 마귀가 나타나서
저를 혹독한 시험에 빠뜨립니다.

다음으로 위암 수술을 받고 죽음의 문턱에 들어 선 제게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셔서 암세포를 깨끗이 씻어 내 주십니다.

그리고 제가 호흡마비 증세로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차라리 죽음의 사신을 달콤하게 그리워하고 있을 때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나서 저를 천국 가는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은사가 과연 어떤 모양으로
어떤 형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 보이시고
한편 마귀는 어떤 형상과 모양을 띠고
우리를 시험하고 있는가 하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신앙 체험을 바탕으로 성도 여러분께 간증드릴 때
다함께 은혜 받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신앙을 가지게 된 배경

우선 먼저 제가 신앙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본래 유교를 지키는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 계통인 정신여중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때 다른 학생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성경과목을 저는 참으로 흥미있어 했고 좋아했습니다.

성경 구절 암송대회. 성경 퀴즈대회에 나가서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때여서인지 정서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등학교는 공립학교인 경기여고를 다녔는데
그때 저는 성경 과목이 없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1972 년 이화여대 약대에 입학하자마자
저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KSCF 라고 불리는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에 가입해서 활동했습니다.

이 단체는 당시 전국적으로 거의 모든 대학에서
활동하고 있던 기독학생회 모임의 연맹체입니다.

요즘에는 대학마다 기독학생회 단체가 여러 성격으로 나뉘어 있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한국 기독교계 단체와 지도자 그리고 기독학생들이 학원 사회에서까지도
교파와 교권으로 분열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의논하고 합의해서 다함께 통합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래서 YMCA와 YWCA에서 대학생부를 없애고
기존의 기독학생회와 더불어 초교파적 통합체로 KSCF를 구성한 것입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1972 년 가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유신헌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그 때, 대학 사회는 물론 온 나라 전체가 두려움과 공포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물론 온 국민들도 잔뜩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때 우리 기독교계 목사님들과 교수님들이 독재 권력을 우상화하고 신격화하는 데
앞장서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한국 사회에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지식인들 가운데 특히 우리 기독교계 인사들이
제일 강건하게 비판하고 저항해서 수많은 분들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신앙적 결단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유신체제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처럼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저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정치사회적 배경 속에서 저는 기독학생회 활동을 하다가 목사님과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동료 대학생들과 함께 1974 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었습니다.

여학생의 몸으로 저는 100 여 일 동안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혹독한 조사를 받고

서대문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여기 앉아 계신 최민화 장로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3년 동안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하고 서로 사귀기도 하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사이에 최 장로님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서 두 차례 구속되었습니다.
졸업 후에 결혼하고서부터는 장로님을 따라 서울 회원교회에 다녔습니다.

장로님은 결혼 후에도 두 번을 더 감옥에 가게 되어서 첫 애 낳을 때만 제 곁에 있었고
둘째 셋째 애는 남편이 감옥에 있는 동안에 낳았습니다.


(3) 향기로 주신 첫 번째 은사

저는 졸업과 함께 결혼하자마자 약국을 개업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경험도 없고 실력도 모자라서 제대로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1 년 여 만에 약국을 정리하고 종로 5 가에 있는 대형 약국과 제약회사에 다니면서
3 년 여 동안 경험을 쌓고 모자라는 실력도 키워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겠다 싶어서
1984 년에 다시 개업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고등학교와 대학 동창으로 믿음이 돈독하고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약국을 다시 개업한다니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시작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저는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순복음교회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안내로 시무하시는 목사님께 특별 안수 기도를 받았는데
저는 그때 이상한 향내에 도취되었습니다.

아카시아향 같기도 하고 박하사탕에서 나는 향내 같기도 한데
달콤하고 생그러운 맛과 산뜻한 향내음이 제 코에 스며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순복음교회 목사님들은 박하사탕이나 껌을
입에 물고 기도해 주시나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 와서 저는 기도원에서 지낸 일들을 시어머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 시어머님은 경건하신 초대교회 목사님의 따님으로 신앙심이 깊고 돈독하신 분입니다.

어머니께서는 함께 안수 받은 제 친구는 그 향내를 맡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꺼라면서
한번 확인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친구는 제 곁에 바로 붙어 있었는데도 향내를 전혀 맡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선택하고 저에게만 내리신 특별한 은사라는 겁니다.
은사를 받고 나면 마귀가 샘을 내고 시기해서 시험에 드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라 하십니다.

어머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저는 온 몸이 떨려 왔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저를 택하셔서
은총을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내리신 사명으로 믿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약사라는 전문직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하라는
계시임을 믿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4) 마귀의 시험

며칠 후에 정말로 마귀가 찾아 왔습니다.
어머님의 말씀대로 어김없이 찾아 온 것입니다.

그 당시 저희 집은 한옥이었습니다.
곤하게 자고 있는데 시멘트못 형상을 한 마귀가 대청마루 유리창을 통해서

방으로 마구 쳐들어 오더니 제 오른팔에 무수히 꽂힙니다.

저는 어머님 말씀을 듣고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기도가 입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급하고 초조한 마음에 주기도문을 외우고 또 외쳤습니다.

외치면서 입으로 악악거리고 토해 내자
오른팔에 박힌 시멘트못 형상이 하나 둘 빠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것이 바로 마귀의 형상이로구나!
겁내지 말고 물리쳐 이겨 내야지!'

용기를 내고 희열을 느끼며 열심히 소리쳐 기도하니까
마귀들이 거의 다 빠져 나갑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마지막 남은 하나가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있을 때 대문에서 벨소리가 울립니다.

깨어 일어나 대문을 열어 보니 남편이 들어 옵니다.
그 바람에 저는 이 하나를 미처 뽑아 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은총을 내리시어
사랑을 베풀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겁니다.

또한 이를 믿고 매사에 항상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라는 메시지요 계시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후 저는 이 메시지를 잊어버리고
세상 일에 매달려 아둥바둥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생활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5) 위암 수술

어리석은 저는 제가 스스로 잘나고 유능해서
약국 운영도 잘 되는 줄 알고 교만을 떨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저에게 계속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1987 년 제 나이 34 살 때 일입니다.
그 당시 남편은 네 번째로 감옥에 갇혀 집에 없었습니다.

제 몸은 점점 말라가고 얼굴은 핏기없는 색으로 변해 갑니다.
온몸으로 통증이 몰려 옵니다.
척추가 부러질 것 같은 통증을 견딜 수 없어 등과 가슴에 파스를 더덕더덕 붙입니다.

진통제 약을 집어 먹고 영양 주사를 맞으면서
남편이 감옥에서 출소할 날만 기다렸습니다.

남편이 얼마 안 있으면 만기 출소하니까
그때까지만 참고 기다리자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출소하기 보름 전인 1987 년 3 월 말에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마구 뒹굴었습니다.
친정 오라버니와 여동생이 달려 들어 억지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초록색 수술복으로 갈아 입고 수술용 침대 위에 누어 있는데
저는 이 환한 세상을 과연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온몸이 떨려 왔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하나님께 두려움을 떨치고
이겨 낼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마음 속으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찬송가 364 장 입니다.

십자가를 진 고생의 길이 아니라 주님께 좀 더 가까이 가고
주님을 가까이 느끼기 위해서 부른 것입니다.

저는 무슨 수술을 받는 건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위궤양이 심해서 위를 좀 잘라 내야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제가 위암 말기 상태로
수술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겠는지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3 개월에서 6 개월 정도밖에 못 살꺼라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보름 후에 남편이 감옥에서 출소했습니다.
저는 주치의를 만나 본 남편을 통해서

제가 위암 3 기에서 말기로 진행하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암 세포가 이미 위 전체로 다 퍼져 있고
위 주변의 임파선까지 전이되어 있는 상태였다는 겁니다.

수술을 해도 별 소용이 없거나
수술 자체가 아예 불가능할 지도 모를 상태였다는 겁니다.

그나마라도 부탁하고 사정해서 위를 다 잘라 내고
위에 가까이 붙어 있는 비장과 췌장도 일부를 잘라 냈다고 합니다.


(6) 십중팔구는 죽을 병

암에 걸렸을 때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가망성을 의학적으로 5 년 생존율이라고 하는데
제 경우에는 5 년 생존율이 15 퍼센트 정도라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제가 살아날 수 있는 가망성은 15 퍼센트, 죽을 확율이 85 퍼센트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십중팔구는 죽을 꺼라는 얘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서른 네 살의 젊은 여자, 세 아이의 엄마...
막내는 아직 첫돌이 마악 지난 상태였는데...
죽으리라는 생각조차 하기를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직업이 약사인 저는

과학적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져 버립니다.
얼굴이며 살갖은 핏기와 탄력을 잃고 누렇게 변합니다.

온 몸은 앙상하게 뼈가죽만 남고
앉아 있기조차 힘듭니다.

빨갛고 시퍼런 항암제 주사를 맞고 있자니
그것이 바로 제 생명의 줄을 쥐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기계 밑에 누어 있으면
그 빛이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위에 붙어 있는 횡경막이 없다보니까
창자에 있는 분비물이 목으로 코로 사정없이 넘어 옵니다.

이렇게 넘어 올라 오는 쓰디쓴 쓸개액과 침액과 구토물로
저는 고통을 못 이겨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식도와 코는 망가지고 헐고 진물이 나서 얼마나 쓰라리고 아프던지
방바닥에 마구 뒹굴어야 했습니다.

수술 후 석 달 가량을
저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습니다.

주치의는 체중이 34 kg 이하로 떨어지면 위험하니까
죽음을 준비하고 있으라고 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체중이 34 kg 으로 떨어집니다.
남편과 가족이 거의 반 쯤은 포기하고 준비합니다.
저 역시 살기를 제 생명을 반 쯤 포기합니다.

이제 끝이로구나...
이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로구나...
참 별것도 아닌데 아귀다툼하고 살았구나...
단지 남은 가족보다, 다른 사람들보다 좀 먼저 갈 뿐인데...
하는 생각에 빠집니다.

숨이 멈출 때까지 그저 무력하게
남아 있는 숨만 쉬고 누어 있습니다.


(7) 뜨거운 안수 기도

이 때 교회 담임 목사님과 교인들이
마지막 심방으로 여기고 찾아 와 주셨습니다.

목사님이 우리집 대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저는 일어나 앉았습니다.

이제 깨어 있는 정신으로 마지막 보게 될 교인들과 목사님 앞에서
저는 눈물 콧물 할 것 없이 줄줄 흘리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에 땀을 흠뻑 흘리시면서
저를 위해 뜨거운 안수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왜 이 여인을 데려 가시려는 겁니까?
오랜 세월 한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열망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의로운 길을 걸어 온 이 여인이
왜 민주화 되는 세상, 좋은 세상을 못 보고
이다지도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 겁니까?...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 나라 이 백성을 위해서
고난과 역경을 감당해 온 남편을 뒷바라지 하고
어려운 동료들을 보살펴 온 당신의 귀하고 의로운 따님을
주님! 데려 가시면 안 됩니다...
앞으로도 주님을 위해서 해야 할 소중한 일들이
많이 남아 있사오니, 할 일 많은 이 여인을
주님! 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꼭 살려 주셔야 합니다.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교인들도 모두 합심해서 통성으로 울부짖고 통곡하며
보잘 것 없는 저의 생명을 위해서 간구해 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안수 기도 중에
온몸으로 심한 통증을 느끼셨다고 하십니다.

통증을 견디다 못 해
기도 소리가 더욱 더 커졌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때 제 가슴 속에서
'죽으면 죽으리라...'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말씀이 뜨겁게 전해져 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불안과 초조가 서서히 걷히고 마음이 평온해 집니다.
숨쉬기가 훨씬 수월해 지기 시작합니다.

목사님과 교인들이 다녀 가신 그 다음날부터
제 몸에서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배고프다'는 신호가 위에서 뇌로 전달되는 겁니다.
먹고 싶다는 의욕이 마구 솟구치는 겁니다.

저는 이때부터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먹은 것을 도로 토해 내기 바빴지만 저는 토해도 먹고,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교만함과 방자함을...
인간적인 사리사욕을 하나님께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 저지른 허물들을 수첩에 일일이 적어 가며
회개 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8) 두 번째 은사 ㅡ 성스러운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며 회개 기도를 드린 지 닷새 후에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깊은 잠에 들어 있는데 하나님의 성스러운 형상이 제게로 다가 오십니다.
측은한 모습으로 저를 내려다 보십니다.

그리고는
"여인아! 이제 네 뱃속이 깨끗해 지고 네 몸속에 병이 다 나았으니 걱정하지 마라"
하십니다.

저는 약사로서 전문 지식이 있어선지

의심 많은 도마처럼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고 더 열심히 치료하고 노력하면서 기다려야 하는데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성스러운 하나님 형상께서는
"여인아! 내가 네 배를 열어 보여 주리라"
하시면서 제 배를 십자가 모양으로 갈라서 열어 보여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보아라! 네 몸 속에 암세포가 없어지고

깨끗하게 다 낫지 않았느냐" 하십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니까 정말로 깨끗했습니다.
암세포가 깨끗하게 없어진 겁니다.

저는 그 발 앞에 얼른 무릎 꿇고 엎드려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로 저는 감사하는 기도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화장실에서도 꿈속에서도 저는 마냥 즐거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몸 안에 모시고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는 저는 갓난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웠습니다.

매일매일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생활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암으로는 절대로 죽지 않을 꺼라는 믿음과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9) 견딜 수 없는 고통 ㅡ 중증근무력증

그 후로 저는 찬송과 기도와 감사의 생활로 1 년 여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또 한번의 혹독한 시련이 남아 있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설명 드리자면 위와 비장, 췌장을 잘라 내고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 등으로 몸이 허약할대로 허약해 진 상태에서
저는 중증근무력증에 걸리게 되고 그로 인해서 호흡이 마비되는 증세가 온 것입니다.

근무력증은 세포와 세포를 이어주는 신경이 마비되는 병입니다.
의식은 있어도 몸 전체가 마비되는 병입니다.
심한 경우 호흡이 마비되면 순식간에 사망으로 이어지는 무서운 병입니다.

저는 가슴 부위가 마비되어 제 힘으로는 숨도 쉴 수 없었습니다.
병원 중환자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서 1 달 여 동안 있었습니다.

항암 치료로 피가 혼탁해져서 대 여섯 차례에 걸쳐
온 몸의 피를 걸러 내야 했습니다.

앞 가슴 갈비뼈를 톱으로 절단해서 쫘악 벌려 놓고
그 안에 있는 흉선을 제거하고는 다시 갈비뼈를 붙이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맥박이 30 ~ 40 까지 떨어지고
쇼크로 사망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제 몸에는 기관지를 절제해서 기계 호흡에 사용하는 줄,
소변 줄 등등... 호스 줄이 8 개나 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너무나 견딜 수 없고 고통스러워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찌하여 저에게
이처럼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시나이까?
저는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정말로 저를 위하고 아끼신다면
제가 잠들어 있을 때, 영원히 이 눈을 뜨지 말고 잠들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저를 제발 평안한 마음으로 주님의 곁에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내일이면 이 중환자실의 기계들을 보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통증에서 빨리 벗어 나게 해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하루 빨리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10) 세 번째 은사 ㅡ 예수님의 형상과 천국 가는 길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의 형상이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사진에서 늘 보았던 거룩하고 밝은 모습이 아니라
"저 여인을 어찌해야 하나..."

 하고 고뇌하면서 애처러워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이제 내 힘으로는 안 되는데...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해 줄까?..."
하는 모습... 안타깝고 불쌍해 하는 모습으로 저를 부르십니다.

"혜숙아~~~!!! 이제 나랑 같이 가자~~~"

저는 아무런 주저 없이 따라 갔습니다.
금보라빛으로 덮힌 그 길은 참으로 고즈넉했습니다.

그 길을 끝까지 따라 갔습니다.
마지막 끝에 계단과 문이 있습니다.

이제 이 문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천국으로 가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집에 있을 아이들 생각이 뇌리를 스칩니다.

"주님! 저 조금만 있다 가면 안 될까요?
집에 좀 가 봐야 되겠는데... 다음에 다시 올 께요"

저는 되돌아 왔습니다.
며칠 후에 예수님의 형상이 또 나타나십니다.

그 때에도 예수님은 한없이 애처롭고 안타까운 모습으로 저를 보듬어 주시면서
'이 여인을 어찌해야 좋을꼬...' 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저희 교회 담임 목사님께 이 말씀을 드렸더니
그 안으로 들어 갔으면 그 날로 천국에 가는 건데 되돌아 와서 다시 소생하게 된 거라고 하십니다.

저는 지금도 천당 가는 길이 눈 앞에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반짝반짝 화려하거나 호화로운 건 아니지만 금보라빛이 무척이나 따스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모습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이 여인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하는 모습
고뇌하는 인간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 인간적 예수의 모습을 보고 깨어났습니다.

암 수술보다 더 큰 수술을 받고 저는 다시 퇴원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으로 돌아 왔습니다.


(11) 맺는 말

그 후 저는 제가 운영하던 약국을 다시 인수해서
오늘날까지 열심히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내려 주신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지와 믿음으로
지역 주민들과 상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향기로운 은사를 내려 주셨습니다.

제 배를 십자가 모양으로 갈라 보이시며
암 세포를 깨�하게 없애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형상으로 나타나셔서
따스한 금보라빛, 천국 가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시멘트못 형상을 띠며 온 몸에 달라붙는 마귀를
물리쳐 주셨습니다.

저는 문득문득 하나님께서 저의 생명을 구해 주신 뜻이
과연 무엇인가? 어디에 있는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이 세상에 응답하실 일이 셀 수 없이 많고 많을텐데
어찌해서 보잘 것 없는 저에게까지
이처럼 각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은총을 내리셔서
하찮은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걸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저와 같이 마음이 연약한 이들
세상 만사에 흔들리며 갈등을 겪고 살아 가는 이들
믿음이 없는 사람들
암으로 또는 다른 병고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역사하고 계심을
저로하여금 증거케 하기 위해서였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잘 것 없는 저의 생명을
구원해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처럼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귀한 은총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사랑과 희망으로 > 3. 죽음의 문턱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1. 다시 찾은 세민약국  (0) 2008.01.22
102. "사랑이 뭐길래"  (0) 2008.01.22
103. 암으로부터 해방되던 날  (0) 2008.01.22
105. 에 필 로 그  (0) 2008.01.22
106. 글을 마치며  (0) 2008.01.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