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에 필 로 그

 

 

혜숙이 암으로부터 해방되고 중증근무력증 증세도 점점 호전되면서
병마는 이제 우리 곁을 멀리 떠난 듯했다.

하지만 혜숙은 그 후 2 년 만에 또 쓰러졌다.
이번에는 서너 가지가 연속적으로 들이 닥쳤다.

근무력증 치료를 위해서 2 년간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이제는 다 나았다고 안심하던 때였다.

약국은 전에보다 손님들도 많아 관리 약사를 두고 운영도 잘 되었지만
그만큼 더 신경을 쓰게 되고 피로가 누적되었던 것 같다.

두 번에 걸친 큰 수술로 위와 비장과 췌장뿐만 아니라
흉선까지 제거한 상태이다보니 면역과 조절 기능이 크게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94 년 4 월 혜숙은 갑상선 기능 저하로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갑상선 질환은 수술해서 고치는 병이 아니라
평생동안 약을 복용하면서 기능을 조절해야 하는 병이란다.

그 후로도 혜숙의 몸은 자꾸 야위어 갔다.
그동안 50 kg 까지 늘었던 몸무게가 38 kg 으로 다시 줄어들었다.

혜숙은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닐 때 60 kg 에 이를 정도로 몸집이 뚱뚱했다.
그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안경 밑이 달걀처럼 부풀어 있고
눈은 얼굴살에 가려 지금보다 조그마했다.

바지를 입으면 허리와 몸통을 구분하기 어려운데도 꼭 벨트를 차고 있어서

가까운 친구들이 '드럼통에 중간 표시를 하고 다닌다' 고 놀려대곤 했었다.

그러던 몸집이 몇 번의 병마를 겪다보니

왜소하게 말라버린 것이다.

갑상선 치료약을 계속 복용하던 중에
혜숙은 1 년도 채 지나지 않은 95 년 3 월 또다시 입원했다.

신경외과에서는 갑상선 비대와 심장 저하로 보았는데
검사 결과 의외로 당뇨병에 초기 결핵이 합병증으로 왔다는 진단이다.

급히 호흡기질환 격리 병실로 옮기고 무려 두 달 여 가량을 입원해 있었다.
퇴원 후에도 혜숙은 당뇨병으로 주머니에 설탕이나 사탕같은 것을
항상 지니고 다녀야 했고 마실 물을 늘 곁에 준비해 두어야 했다.

그 후 1999 년 연말까지 한 해에 두어 차례는
잠을 자다가 혹은 주위 친지 집에서 모임을 갖다가 혈당이 갑자기 저하되어
그야말로 시도때도 없이 119 앰블런스 편에 병원 응급실로 급히 실려가곤 했다.

2000 년에 들어 서서도 이런저런 증세로 한 두 해에 두어 번은 입원을 하게 되고
윗니 아랫니 합해서 반 이상은 상하고 다쳐서 틀니를 하고 생활한다.

우리 가족과 가까운 동료들은 혜숙을 '종합병원'이라고 부른다.
평생동안 한 가지 병만 지니고 살아 가기도 힘든데
세상에 못 된 병을 두루 돌아가며 앓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의학적으로도 싸이클 현상이란 게 있단다.
염주목걸이처럼 한 번씩 돌아가며 병치레를 겪는 현상이란다.

한양대 병원에서는 혜숙을 의학적으로
희귀한 임상 대상으로 삼아 연구하고 있단다.

그래선지 혜숙이 오랜 만에 외래 진료를 받으러 가면 주치의가 놓아 주지 않고

며칠 만이라도 입원해서 검사를 받아 보자고 굳이 권면하고 부탁한다.

혜숙이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전문의 수련 과정에 있는 의사들이
시도때도 없이 찾아와서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혜숙은 자신이 약학을 전공한 때문인지
어려워 하지 말고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지 물어 보시라면서 친절하고 편안하게 대해 준다.

의학적으로 볼 때 혜숙의 몸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신비하단다.
생명의 오묘함이요 기적이란다.

혜숙은 자신의 병력을 굳이 감추거나 숨기려 하지 않는다.
수련의에게 뿐만 아니라 주변 분들에게도 필요하면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혜숙은 가끔 스스로 생각해도 자기 몸이 기이하고 오묘하다면서
죽으면 시신을 의학 실험용으로 기증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런 표정으로 내게 묻기도 한다.

여학생의 몸으로 서슬퍼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면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 온 세월...

경제적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가정을 지켜 온 세월...

혜숙이 이처럼 모진 세월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희망이라는 불씨를 가슴 속 깊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살아 왔기 때문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해 본다.

이 땅의 민주화에 대한 믿음과 희망...
남편과 가정에 대한 지극한 책임과 사랑이 없었다면

아마도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그렇다! 혜숙과 나에게는 사랑과 희망이야말로
그 어떤 고통과 좌절, 절망과 죽음도 극복할 수 있는
고단위 항암제요 치료제였다.

지금도 내 아내 혜숙의 건강이
온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도
자신의 의지와 확신으로
사랑과 희망의 불씨를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살아 간다면

몸과 마음의 병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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