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 / 4. 하얀 얼굴 하얀 장발머리에 하얀 긴 수염


읍내에 장이 서는 날이면 얼마 전부터인가
싸전마당 한복판에 높은 연단이 세워지고
전봇대마다 확성기가 매달려져 있었다.

"이승만 박사..." 운운
"이기붕 선생..." 운운 하던 소리가
장꾼들의 흥정을 방해하면서
귀청을 울리고 있던 적이었다.

지낼만한 이웃 어른들 중에는
자유당이라고 적힌 완장을 팔뚝에 걸치고
장꾼들을 불러 모으는 이도 있었다.

정 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둔 1960 년 3 월 13 일
오산 장날에 나는 희안한 행렬 끄트머리를
또래들과 더불어 신명나게 따라다녔다.

낯익은 동네 형들이 앞장을 서서
검은 교복으로 우글거리는 학생들을 이끌고 있었다.

"부정 선거..."
"공명 선거..." ... 등
상기된 모습으로 구호를 외치며 장바닥을 휩쓸고 다녔다.

장꾼들도 행렬 가장자리에서 웅성거리며 구경하고 있었다.
더러는 손벽을 치는 이들도 있었다.

선생인지 면사무소 직원인지 순사인지 싶은 어른들이
행렬 속으로 뛰어 들어 학생들을 붙잡고 끌어내고 하였다.

한참을 그러더니 행렬은 점점 흩어져 갔다.
동네 어른들 중에는

"제 애비는 자유당 완장차고 유세하고 다니는데...
자식 놈이 제 애비보다 백 번 낫구먼..."

하며 대견해 마지않는 이들도 있었다.
1960년 3. 15 부정선거를 이틀 앞두고 있었던
오산중고등학교 학생 가두 시위는
마산과 대구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더우기 3월 15일 이전에 일어난 역사적인 거사로
4. 19 혁명사는 기록하고 있다.

저녁나절 파장될 무렵 쯤 되자 한 사람은 리어카 위에서
양쪽으로 확성기를 단 나무사다리를 어깨에 짊어지고
다른 한 사람은 끌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마이크를 잡고

"조병옥 박사..."
"장 면 박사..." 운운하며 세 사람이서
잔뜩 상기된 모습으로 유세하고 다녔다.

이런 분위기 적을 전후로
경기도 오산 시골 구석 씨알에게까지 퍼져 오가던
함석헌 선생의 담대한 필력에 관한 이야기들과
사설만큼씩한 분량으로 신문지상에 여러 날 연재되면서
글머리 밑에 씌어진 "함석헌"이라는 친필 함자가
초등학교 5 학년에 지나지 않던 나의 머리 속에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함 선생님을 직접 뵙기로는
연세대에 입학하고서다.

연세대 기독학생회에서 함 선생님을 연사로 모신
강연회가 있었다.

강연장에 들어 선 나는
하얀 얼굴 하얀 장발머리에 하얀 긴 수염
거기에다 하얀 한복을 단정하게 차리고서
연단 위에 곱상히 서 계신 함 선생님의 모습이
전혀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좀 일찍 오게 돼서...
이 학교 교정을 한번 둘러 보았소...
참 크고 훌륭해. 좋은 교정이요.
아름다운 꽃도 많고 나무들도 좋고...
한참을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면서 봤어...
그런데 젊은 학생들이 왜들 그 모양이야 ! ! !"

청중들이 모여들면서부터 자리를 마련한 학생들은
한창 부산하게 움직거리며 애를 태우게 된다.

한 5 분에서 10 분 가량을 여유로 남기고
맞춤하게 도착해서 좋을 함 선생님은
그 날 강연 시간보다 무려 2 시간 가량을
미리 도착하셨다는 것이다.

강연장에 둘러 보니 청중은 고사하고
준비하는 학생도 하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정을 이리저리 둘러 보았단다.

그런데 제 나라가 어찌 되어 가는 판국인지도 모르고
배우는 학생들 머리 속에
'생각'이란 게 도무지 없다는 것이다.

젊은이는 쉬 늙어 버릴 사람이고
배움은 이루기가 힘든 것이어서
한시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데
봄날 날씨 좋다고 교정에 앉아 정신 못 차리고
단꿈만 꾸다가는 마지막에 가서
제 망하고 나라 망한다는 것이었다.

"... 이 사람들이 도대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려고 이러는 게요?...
도적질한 죄수한테서나 받아 두는 지문을
선량하고 착한 백성들한테
뭣하러 몽땅 찍어 둘려고 그러는 게야!!! ...
이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그래!..."

정치라는 건 본래 더러운 것이라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모두 도둑이라는 것이다.

주민증을 바꾸는 속셈도 필경
도둑의 심보에서 나온 것이라 했다.



훌륭했을 법한 가문에서 남달리 귀하게 자라신 교수님들,
살기 좋은 외국에서 많은 학문을 쌓고 돌아오신 교수님들,
제 나라에서는 내놓고 자랑해도
뒤질데 없이 존경받을 체면에도 불구학고
앞에 나서거나 크게 주장하는 법 없는 교수님들,
조용한 목소리, 겸손한 표정으로
선진국 이론이나 엮어 전수하는 점잖고 으젓한 교수님들...

이들에 대한 인격적 감상에 젖어 있던 나는
그럴 법한 부류의 상징이어서 마땅할 함 선생님의 첫 모습에서
적지아니 혼돈을 갖게 되었다.

고작해서 한 발자국도 안 되는 탁상과 칠판 사이에 끼어
한 두 시간이라야 손가락으로 세기에 족할만큼
개념적인 어원만을 간단히 메모하는 것 외에
탁상 위에 펼쳐 있는 노우트를 보기 위해서
손에 쥔 안경이 눈가로 잠깐 옮겨지는 습관을 제하고 나면
거의 구두 밑굽만 떼었다 놓는 정도로 마감되는
조심스런 자태가 전혀 아니었다.

이런저런 이론들을 엮어서
역사적인 맥락을 깔끔하게 꿰어 내고
반론을 한다거나 재해석하는 따위로
논리정연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는 도대체가
음성이 조용한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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