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 / 2. 운전교육대에서


그 후 1970년 11월
나는 논산 훈련소에 훈련병으로 입소했다.



논산 훈련소 여러 연대 가운데서도
가장 춥고 배고프고 고달프다던 30연대에서 훈련을 마치고
나는 가평 1군단 운전교육대에서 운전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대학을 다니다 입대한 이가
한 내무반에서 4~5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저런 이유에서였는지
나는 교육생 구대에서 학생장을 맡게 되었다.

학생장은 함께 교육 받는 교육생들을
자치적으로 지도하고 통솔하는 것이었지만
그보다는 같은 동료들을 강요하고 협박해서
돈을 뜯어다가 고참병인 구대장에게 바쳐야 하는
악역을 맡아야 했다.

처음에 한 두 번 시도는 해 보았지만
나는 양심이나 이성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우선 내가 가지고 있던 돈을 다 털어서 바치고 나니까
나에게는 매일 무서운 매질이 퍼부어졌다.

그때 어금니가 부서진 것을 나는 어디다 하소연도 못 하고
평생을 안고 살아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학생장으로 있는 구대에서
휴식 시간 중 교육생 가운데 한 명이
탈영하는 사건이 벌여졌다.

부대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부대장을 비롯한 모든 간부들이 긴급 소집되고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인근일대를
샅샅이 수색하는 작전에 돌입했다.



탈영한 교육병은 제주도 출신이었다.
그는 군에 입대하기 전에는
육지에 발을 들여 놓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난생 처음으로 기차라는 것을 실제로 구경하고
훈련소에서 전방 운전교육대로 이송될 때 비로소
직접 타 보았다는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다.

가정 형편과 사정은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드넓은 바다와 높게 치솟은 한라산 자락
평온하기 그지없는 아름다운 섬에서
대자연과 더불어 마음껏 숨쉬고 자랐을 그가

군복을 입고 군모를 쓰고
엄격한 규율에 따라 제식 훈련을 하고
사격 연습을 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적응하기도 몹시 힘들었을 것이었다.

더우기 낯설고 물설은 전방에 갇혀서
협박당하고 기합받아가며 극심한 훈련을 견디어 내기란
그야말로 평온한 천국에서 생활하다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것같은 심사였을 것이었다.

그의 탈영 사실을
나는 불과 15 분 여 만에 확인해서 보고했다.

그리고 CP라고 불리는 부대 본부로 가서
일어난 정황을 자세히 보고했다.

나는 그 당시 계급이 상병인 구대장에게
온갖 협박과 강요와 구타를 당하면서
그야말로 견디기 힘들만큼 주눅들어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내가 학생장으로 있는 구대에서 탈영병이 발생했고
이제까지 얼굴도 보지 못한 부대장에게 불려가게까지 되었으니
나는 이제 초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나보다 하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온 몸이 떨려 왔다.

야전 잠바 양쪽 어깨와 군모에
대위 계급장을 단 하늘같은 부대장은
지휘봉을 든 채 열중 쉬엇 자세로 꼿꼿하게 서 있었다.

부대장은 내게 탈영 전후의 정황을 보고받고
몇몇 사실을 확인한 다음
탈영 사건 후 내가 어떻게 조치했는가를 물어 왔다.

그리고는 출신 학교 등 나의 신상에 대한 일까지
이것저것 심문하듯 물어 왔다.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부대장이 묻는 말에 대답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하늘같은 부대장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모든 신경세포가 바짝 긴장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부대장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신속하게 확인하고 보고해서 다행이네...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테니까 곧 잡을 수 있을꺼네..."

하면서 격려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어안이벙벙했다.
중대장은 입술을 내 귀 가까이에 대고
작은 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나도 3년 전에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네...
정법대 학생회장으로 활동했었지...
애로 사항이 있나? 있으면 뭐든 얘기해 보게"

그 때 나에게 가장 절실한 애로 사항은
학생장의 직분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저...... 부탁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구대장님을 통해서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요..."

"알았네..."


탈영병은 부대장의 말대로 3 시간 여 만에 붙잡혔다.
붙잡힌 탈영병은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마치 혼절해버린 사람 같았다.

부대장은 탈영병에게 어떠한 기합이나 구타도
일체 가하지 못하도록 모든 부대원들에게 명령을 했다.

특별히 나에게도 탈영병이 소위 '고문관'으로
따돌림당하지 않도록
한 내무반에서 각별하게 보살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결국 우리와 함께 운전교육 전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제대할 때까지 근무해야 할 부대로 무사히 배속되었다.

나는 학생장의 직분을 다른 교육생에게 물려 줄 수 있었고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내려온 범칙과 비리도 어느정도 시정되었다.

교육 훈련을 마치고 중앙선 지평역 옆 1군 50병기대대 수송부로 배치되어 복무 중이던

1971 년 개악된 헌법으로 치러지던 대통령 선거에서 난생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나는
감시의 눈길도 아랑곳없이 당당하게 야당 후보에 기표했다.


▲ 중앙선 지평역 옆 1군 50병기대대 연병장에서


▲ 50병기대대 수송부에서

도대체가 헌법을 자기 권력 야욕의 도구로 일삼는 박정희 후보를
자유로운 형편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없이 찍는 사람들의 심사는 뭘까 하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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