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 / 8. 1974년 4월 구속이 맺어 준 인연


당시의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민주화를 이루어 내기 위한 열망은 식을 줄 모르고 오히려 열기를 더해 갔다.

2월에는 구속된 분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전국 교회에 발송한 혐의로
권호경 김동완 목사와 이대 의과대학 본과에 재학 중이던 김매자
이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이미경(현 국회의원) 차옥숭(교수)
그리고 김용상(목사) 박주환(목사) 박상희(목사) 등 8 명이 구속되고
같은 절차로 각각 징역 15년에서 3년까지 선고받았다.


이어 2월 25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문인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고

이호철, 임헌영, 김우종, 장을병, 장병희 등을 간첩 혐의로 구속했다.



구속 당시에는 이호철과 임헌영에게 형법상 간첩죄가 적용되었으나,
1974년 2월 25일 구속·기소 당시에는 이 부분이 제외되었다.


같은 해 6월 28일에 있었던 1심공판에서 이호철과 임헌영에게 실형이 선고되었고,
10월 31일에 있었던 항소심 공판에서 이들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들어서자 대학은
대통령 긴급조치 1 호의 발동에도 아랑곳없어 했다.

한신대와 경북대 서강대 등에서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하는 학생 사건이 터져 나왔다.

정보 기관에서는 4월 3일을 기해
서울 시내에서 일제히 가두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3월 말 경부터 요시찰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해 연행하기 시작했다.


1974년 4월 3일 박 정권은 학생 시위 주동자와 그 배후 세력들이
대한민국을 폭력 혁명으로 전복시키고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일제히 궐기하려 했다면서
대통령 긴급조치 4호를 선포했다.



[대통령긴급조치 4호]


1. 전국민주청소년학생총연맹(민청한련)과 이에 관련되는 단체를 조직 하거나
또는 이에 가입하거나, 그 구성원과 회합, 또는 통신 기타 방법으로 연락하거나,
그 구성원의 잠복, 회합·연락 그밖의 활동을 위하여 장소·물건·금품 기타의 편의를 제공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단체나 구성원의 활동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2. 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에 관한 문서, 도화·음반 기타 표현물을
출판·제작·소지·배포·전시 또는 판매 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3. 제1항, 제2항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또는 선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4. 제1항, 제2항에서 금한 행위를 한 자는 1974년 4월 8일까지 그 행위내용 전부를

수사 정보기관에 출석하여 숨김없이 고지하여야 한다.


5. 학생의 정당한 이유없는 출석 수업 또는 시험의 거부...

학교 내외의 집회, 시위, 성토 농성 기타 일체의 개별적 집단적 행위를 금한다.


6. 이 조치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또는 선전하거나
방송·보도·출판 기타 방법으로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7. 문교부장관은 대통령긴급조치에 위반한 학생에 대한 퇴학 또는 정학의 처분이나
학생의 조직, 결사 기타 학생단체의 해산 또는 이 조치 위반자가 소속된 학교의 폐교처분을 할 수 있다.
학교의 폐교에 따르는 제반 조치는 따로 문교부장관이 정한다.


8. 제1항 내지 제6항에 위반한 자, 제7항에 의한 문교부장관의 처분에 위반한 자 및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유기징역에 처하는 경우에는 15년이하의 자격 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제1항 내지 제3항, 제5항, 제6항 위반의 경우에는 미수에 그치거나 예비, 음모한 자도 처벌한다.


9. 이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이 조치에 따르면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머리 속에 두고 있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그런 움직임 그런 모임 그런 사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사람까지
모두 5 년 이상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온 국민을 상대로 선전포고하는 것에 다름아닐 뿐더러
참으로 천인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조치로 말미암아 수 천 명이
쥐도새도 알게모르게 연행되어 고문당했다.

조직적인 기반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던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에서는 26 명이 구속되어 중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간디사상연구모임 회원 역시
대부분이 구속되거나 전국에 지명 수배되었다.

특히 함께 공부했던 서울대 김은희 김인성 정진성 등 여학생들도
봉원산거 모임집에서 등사기를 몰래 가져다가

민청학련 선언문을 필경하고 등사해서 운반 배포한 혐의로 구속되고

봉원산거 또한 샅샅히 수색당하는 난리가 벌어졌다.

윤보선 전 대통령과 장준하 선생 등 재야 정치 지도자와
박형규 목사와 가톨릭의 지학순 주교 등 성직자,
연세대 김찬국, 김동길 교수와 김지하 시인 등을 포함해서
종교인과 지식인, 청년 학생들이
그야말로 마구잡이로 연행되어 구속 기소되었다.

구속된 이들은 모두 남산 중앙정보부 6국과 서빙고 보안사 대공분실에서
무려 2 ~ 3 개월 동안 상상할 수 없는 고문과 조작 수사로 치를 떨어야 했다.

그리고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이라는 죄목으로 한두름에 엮어 졌다.


▲ 남산 예장자락에 있는 옛 중앙정보부. 앞에 보이는 낮은 건물이 중앙정보부 6국(학원수사담당) 건물이다.



나는 3 월 28 일 경기도 오산에서
서대문 경찰서 정보과 형사대에 검거되어
곧바로 중앙정보부 수사국으로 이첩되었다.

그당시 이화여대에서 학생 서클을 이끌고 있던
박혜숙이 나보다 먼저 검거되었다.

중앙정보부 6국으로 끌려간 박혜숙은 모진 협박과 공포 분위기에 빠져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았느냐는 추궁에 견디다 못한 나머지
"최민화로부터였다"고 내 이름을 진술했단다.

나는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숙명여대. 홍익대 등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서울지구와 인천지역 대학의 기독학생 지도부를

총괄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단 박혜숙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내 이름을 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나보다 먼저 검거되고 나로부터 지시 받았다는 진술을 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지시한 사실이 절대로 없노라고 계속 부인했다.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협박과 고문을 당하던 나는

계속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기도하기를
스승이나 여학생은 절대로 끌어들이지 않기로 작정했다.

나는 수사관에게 내가 군대까지 갔다 온 마당에
이처럼 엄혹하고 신변이 위험천만한 상황임을 모르는 바도 아닌데
어떻게 한창 발랄하고 나이 어린 여학생을 끌여 들여
사지로 몰아 넣는 짓꺼리를 할 수 있겠느냐면서
다만 여학생들은 우리가 구속되면
차후에 구속 인사들에 대한 석방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이번 사건에서는 빠지기로 한만큼
이번 일을 의논하거나 도모한 사실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다.

구속이 맺어 준 인연인가?...
비단 박혜숙이 아니었더라도 어쨋든 나는 이 땅에 사나이로 태어 나서
내가 고등학교 3 학년 때 쯤 중학교 2 학년밖에 안 되었을 천진한 여학생을

내 입으로 실토해서 물고 들어 갈 수는 결코 없는 일이라고 다짐했다.

그런 일로 말미암아 내가 핍박을 당하고 온갖 수모를 당해도
그것은 오히려 내 자신이 비굴하지 않고 한 여학생을 위해서나마 내가 떳떳하게
나의 명예를 지켜 내는 일일 꺼라는 의협심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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