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 / 17. 허물없이 편안하게  



1965년 경 경기도 오산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매년 120 여 졸업생 중 서너 명에 지나지 않았다.

여학생은 이삼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정도다.

학교 수업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았고 과외 수업을 지도하는 곳도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나는 오산에서 서울로 올라 와
순화동에 있는 이모님 댁에 머물며 종로 사설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순화동에서 학원이 있는 종로까지 걸어가다 보면 길목에 이화여고와 경기여고를 지난다.
학원에서도 경기여고 학생들이 나와 같은 반에서 여러 명 수강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경기여고생들은 아무리 추워도 오버를 입지 않는다고 할만큼
교복과 배지와 가방을 그처럼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여기는 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시골 고등학생이 보무도 당당한 경기여고생을 은근히 부러워하면서
사춘기적 주눅들었던 경험이 오히려 혜숙이에 대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더우기 혜숙의 언니와 오빠가 모두 경기여고와 경기고 출신인데다가
그녀가 이대 약대에 진학하게 된 것도 언니가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집안에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었다니
시골 출신인 내 입장에선 이런 여자가 분에 넘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이처럼 분에 넘치는 여자가 쫓아다니니 나로서는 부담이 되어 떨쳐버리고 싶었고
혜숙은 이 대목을 전혀 이해하지도 눈치채지도 못했다.


나는 본래 마음 속으로 부담되는 일을 무리하게 하는 성격이 아니다.
나는 혜숙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면서 혜숙이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랐다.


나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약간은 손해보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 왔다.
무리한 상황이 닥쳐오기 전에 나 자신을 스스로 조절해 온 이 훈련은
학생운동과 재야운동 과정에서도 드러나 나는 주로 조정하고 화합하고 통일하는 역할을 맡아 해 왔다.

혜숙은 나와 약속한 시간에 늦어본 적이 별로 없다.
늦으면 만나는 시간이 줄어드는게 아까워서 그런지 항상 10 ~ 20분 전에 미리 나온다.


나는 약속 시간에 곧잘 늦곤 했다.
그녀가 30분, 1시간 씩 나를 기다리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한번은 연세대 앞에 있는 대야성 다방에서 아침 10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잊어버렸다.

오후 4시에 다른 약속이 있어서 그 다방에 갔더니 혜숙이 그때까지 앉아 있다가
입구에 들어서는 나를 보더니 반갑게 손을 흔든다.

"바빳어 형? 왜 인제서 나와?"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무려 6시간 이상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싫어서라기보다는 그녀와 결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전술적으로 다른 여자를 사귀어서
그녀가 스스로 포기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참으로 비인간적인 일이었지만 결혼할 의사도 없으면서
성균관대에 다니는 한 여학생에게 접근했다.
공주 출신인 숙희는 인형처럼 예쁜 여자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되던 해
여름방학에 있었던 일이다.

연세대 입학 동기생들 가운데 사회문제연구회 동아리 친구들이
지금까지도 유우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있는데
그 중 한 친구가 당진 앞바다에 있는 난지도라는 섬 주인집 아들이다.

그 섬에 관광명소로 해수욕장이 있어 우리는 거기에 놀러 가기로 하고
내가 함께 동행할 여대생 팀을 교섭하기로 했다.

나는 숙희에게 친구들을 모아서
내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녀도 좋다고 쾌히 승낙을 했다.
떠나기 전에 상견례를 겸해서 양측이 함께 만나기로 했다.

모임을 주선하게 된 나는
혜숙에게 진행되는 계획과 내용들을 이야기했다.

혹시 마음에 상처를 받을 지도 모르겠지만 자존심이 상하면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떠나겠지 하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자리를 준비하느라고 약속 시간 20분 전에
모임 장소인 시청옆 아가페 다방으로 나갔다.
그런데 혜숙이 한쪽에 앉아 있었다.

"어? 여기는 어떻게 왔어?..."

혜숙은 얼굴이 굳어지면서 대꾸했다.

"신경쓰지마!"
"왜 그래?"

"나는 그냥... 혼자서 형... 자기 얼굴 보고 싶어서 왔으니까..."
"어?..."

"난 형 얼굴만 보면 돼... 형은 나한테 신경쓸 필요 없어...
참견할 필요도 없구..."

그리고는 팩하고 삐쳐서
무릎 위에 얹어 놓은 두꺼운 책을 보고 있다.

"어? 그게 무슨 얘기야?..."

"난 자기 얼굴 보러 왔다구! 이제 얼굴 봤으니까 됐어...
나한테 신경쓰지 말고 모임 있다며? 거기 가봐..."

혜숙이 굳은 표정을 하며 언성이 점점 높아지길래
나는 주위 분위기가 부담스러워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 자리를 찾다가 일행이 많이 올 것이라 예상하고
넓은 공간에 자리잡고 앉았다.

시간이 되자 내 친구들은 모두 왔는데
숙희는 친구 한 명과 둘이서 나타났다.

"어, 정말 미안해요... 친구들 연락이 잘 안 되네요...
이 친구는 연락이 돼서 나오긴 했는데...
집에서 여행 허락은 못 받았다고 하고...
저도 시골에서 아버지가 빨리 내려오라 하셔서
함께 가기가 힘들겠어요..."

학창 생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른 대학 여학생들과 팀을 이루어
함께 떠나려던 여행 계획은 이렇게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마음 한켠에서 그때 나는 이 여자를 선택하면
인생이 이리로 갈 것 같고
한 시간 전에 나와서 삐쳐 있는 저 여자를 선택하면
내 인생이 저리로 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결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양자간에 뭔가 선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숙희는 자기도 못 가고
친구들도 갈 형편이 안 된다고 친구와 함께 바로 일어섰다.

주선한 입장에서 난처해진 나는 친구들에게
'나와 같이 운동하면서 가까이 지내는 이대 후배가 와 있는데
같이 동석해서 이야기를 해 보자'고 했다.

나는 혜숙이에게로 가서 사정을 말하고
내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의논을 하자고 제안했다.

혜숙은 굳었던 얼굴이 금방 풀어지면서
내 친구들과 자리를 같이 했다.

혜숙은 나와 함께 갈 수 있다는 희망에선지
같이 여행 갈만한 친구 몇몇에게 연락을 해 보겠노라고 했다.

약속한 날 모여 보니 내 친구들은 다 왔는데 여자는 혜숙 혼자 뿐이었다.
마침 얼마 전 약혼한 친구가 약혼녀와 동행으로 나와 다행스러웠다.

3박 4일 간의 바캉스에서 혜숙은 내 친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고
나 역시 그렇게라도 함께 해 준 혜숙이 더없이 고마웠다.

그 후부터 우리는 보다 허물없이
편안하게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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