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 / 18. 냉동기술학원



학교로부터 제적을 당한 나와 민청학련 관계자들은
가을 학기가 시작됐지만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이때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와 독일 정부 등에서
석방 학생들을 위한 지원금을 보내 왔다.

순수한 학생들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엄청난 고문과 조작이 있었다는데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들을 한국 정부가 보호하지 않는다면
국제 사회가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이 지원금을 집행하게 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 인권위원회와
엠네스티 한국지부에서는 석방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기술 훈련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나는 냉동기술을 배우기로 하고 당시 수원역 앞 매산로에 있던
수원냉동기술학원 2 급 기능사 과정에 등록했다.

기술을 배워 두면 공장에 취직하기도 쉽고
어쨌든지 살아 가면서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함께 공부하는 학원생들은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수원 공군 비행장에서 근무하는 공군부대원 그리고 고3 취업 준비생들이었다.

오산에서 수원으로 통학을 하면서 나는

대학생이 제적당하고 냉동학원에 다닌다면
주변에서 좀 이상하게 생각하고 의아해할 것 같아서
일절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무실에서 약간 소란이 일었다.
이대 약대 뱃지를 단 여학생이 애인을 만나러 왔다면서
수강 중인 나를 면회하겠다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보기 드문 풍경이지만
그 적에는 대학에서도 학교 뱃지를 달고 다닐 것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던 때다.

이 일로 내 신분은 그만
어이없이 들통 나버리고 말았다.

"이대 약대생이 애인이라고 면회를 올 정도면
아무개 씨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혹시라도 면회를 안 시켜 주면 어쩌나 염려하던 혜숙이
"그 사람 연세대 다녔어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교무실 분위기가 이상해 졌고
나는 학생운동 전력이 드러나지나 않을까 해서 말을 얼른 둘러댔다.

"저... 브라질로 이민을 가려고 하는데
거기서는 냉동기술이 인기라고 해서요..."

수업은 4개월 과정이었다.
4개월을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해도 필기 시험 합격율이 15% 정도밖에 안 된다는데
나는 초등학교적부터 자연이나 과학 과목에 취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성적도 그리 신통치 못해서 내심 저으기 걱정이 됐다.

게다가 전선은 어떻고 배선은 어떻고 플러스 마이너스가 어떻고

하는 강의 내용은 가끔씩 결강해 가면서 알아듣고 이해하기가 힘이 들었다.

더욱이 연세대에 다닌다고 소문이 나버려
떨어지면 망신일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이대 약대생이라는 여자는
자기 수업이 끝나는대로 매일같이 찾아와
야간 수업 중간에 떼를 쓰다시피하며 불러 내는 통에
나는 혜숙이를 붙잡고 사정을 했다.

"이러지 말고 앞으로 두 달만 참자...
내가 연세대학에 다녔다는 소문을 다 내 놓고
시험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무슨 창피냐?..."

두 달 여를 혜숙의 극성스런 면회 데이트 때문에 망친 나는
필기시험에 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
막판 한달 간은 열심히 공부했다.

이해가 잘 안 되는 내용은 무조건 외워 댔다.
필기시험은 평균 60점이 합격점이다.

시험을 치르고 난 후
답안지 메모한 것을 가지고 학원에서 맞춰 보니까
가까스로 76점은 되는 듯했다.

그러자 함께 공부했던 학원생과 강사들이 놀라는 표정이다.
4개월 가운데 근 3개월 가량은 3 시간 수업 중에 2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땡땡이를 치면서 시험은 포기한 듯 매일이다시피 찾아 오는 애인과
데이트만 다니던 사람이 만만치 않은 시험에서 합격 점수에 들었다는 것이다.

'역시 뭔가 틀리긴 틀리구나...'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불안했다.

맞춰 본 건 그렇더라도 혹시 결과가 나와봐야 하니까...
하지만 그 시험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나는 또다시 수사 기관에 연행되어 구속되고 말았다.

첫 면회를 온 혜숙에게 나는 무엇보다먼저
시험에 합격했는지 여부부터 알아보라고 했다.

다행히 냉동기술자격시험 2급 기능사 1차 필기 고사에 합격했다.
하지만 1년 이내에 서너 차례 시행하는 실기 시험을
치룰 수 없어서 필기 시험은 효력이 없어졌다.

필기 시험 발표 후 내가 1년 1개월 여 동안 구속되어
감옥에서 출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실기시험을 봤다면
지금쯤 냉동기술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냉동 학원에 다니던 시절 혜숙과 나는
수원역에서 남문까지 이르는 매산로를 수없이 왔다갔다 했다.

지금도 예전과 다름없이 그대로인 이 길은
우리에게 참으로 추억을 안겨 준 곳이었다.

주말에는 하루에 몇 번 밖에 안 다니던 버스를 타고
딸기밭이나 저수지 등지에서 낭만을 키우기도 했다.

서울에서 대학 친구나 후배들이 오산으로 놀러 오면
인근에 있느 산척이나 장지리 저수지 세마대 등지로 안내했다.

기나긴 오산천변 뚝방길을 걷기도 하고
청학봉을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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