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 / 23. 마지 못한 각서

 


독방에서 등을 벽에 기대고 비스듬히 누어 앉아
거미줄 낀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나는
혜숙의 울음과 표정과 말들을 곰곰 되새겼다.

 

혜숙이 토해낸 표현들이 뜨거운 피가 되어
가슴 속 깊숙히 배어들면서 나의 전신을 감돌았다.

 

'아 ~ 난 혜숙이와 결혼하겠다!...
꼭 결혼한다!...
그래서 평생을 같이 한다!...
이제까지는 혜숙이 나를 놓지 않았겠지만
앞으로는 내가 혜숙을 놓지 않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놓지 않겠다...'

 

혜숙은 그래도 계속 면회를 왔다.
몇 번을 거부할까 하다가
쓸쓸하게 눈물을 흘리며 돌아갈 혜숙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롭게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긴급조치 9호로 1년을 언도 받은
나의 징역형 만기일이 점점 다가 왔다.

 

하지만 나는 각서를 쓸 생각이 없었다.
만기 보름 전, 각서를 거부하면
12년을 더 살아야 되는 순간이 왔다.

 

교도관이 중앙정보부에서 특별 면회를 왔다고 안내하여
교무과로 나갔다.

 

나는 장영달의 생각이 머리 끝에서 맴돌아
결국 못 쓰겠다고 거부를 했다.

 

"여보시오. 난 장영달을 감옥에 놔 두고
나 혼자 나갈 생각이 없으니
여기서 괜히 시간 보내면서 설득하려 애쓰지 말고
그냥 돌아 가시오..."

 

냉정하게 거절하고 사방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아 ~ 이제부터 장기 징역을 살아야 하는구나...


혜숙의 절망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혜숙은 포기하지 않았다.


민청학련 사건의 공범이기도한 윤보선 전 대통령과
박형규 목사를 찾아가서 혜숙은
어떻게 석방될 도리가 없겠느냐고 사정하고 부탁했다.

 

"아무개가 저와 결혼할 사람인데
각서 한 장을 안 쓴다고 형 집행정지를 취소시켜서
12년을 더 살리겠대요... 
제가 12년을 기다려야 해요?
어떻게든 석방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혜숙은 특별 면회를 하면서
나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박 형규 목사님 댁이랑 안국동(윤보선 전 대통령)이랑 찾아갔는데
자기한테 이렇게 전해 달라고 당부하셨어... 
재판도 없이 12년 동안 감옥살이를 할 바에야
그까짓 각서 한 장 대충 써주고
일단 나와서 일을 하다가 다시 들어가서
재판을 받고 징역살이를 하라고... 
12년을 징역 살 각오라면
밖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할 수가 있는데
왜 하찮은 각서 때문에 그런 역할을 포기하느냐고...
재판도 안 받고 12년을 사는 건
전술적으로 너무 무모하고 가치 없는 일이라고..."

 

며칠 후 중앙정보부 요원이 다시 면회를 왔다.
안국동 어른과 박 목사님이 내 걱정을 많이 하신다면서
다시 한 번 가 달라고 해서 왔다고 했다.

 

나는 착잡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 채
창 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각서를 써주기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이번에는 각서를 써 주고 나간다...
하지만 나가서 더 열심히 싸우다가 꼭 다시 들어 오겠다...
장영달이가 감옥에 있는 한 나는 반드시 또 들어 오겠다...'

 

중앙정보부에서는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하고
법을 준수하며 어쩌고하는 내용으로 쓰라고 견본을 주었는데
나는 "각서라는 게 마음에서 우러나와 스스로 쓰는거지
양식을 보고 베끼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까탈을 부리면서
내 나름대로 쓰겠다고 했다.

 

"본인은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할 것을 다짐하며
이에 각서를 제출합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요식 절차라고 마음 속으로 위안을 삼으며...


훗날 나는 이 사건의 재심을 통해서

2013년 10월 30일, 37년 여 세월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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