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엉뚱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TV 드라마 얘깁니다.

 

얼마 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삼순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드라마를 자주 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처음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모처럼 집에서 쉬는 날, 우연히 그 드라마를 봤습니다.

 

<내 이름은 김삼순>. 아마도 요즘 ‘세 자녀를 낳자’고 선동하고 다니는 제 ‘직업적인’ 관심 때문에

‘김삼순’이라는 고향스런(?) 이름에 신경이 쓰였던 모양입니다.

삼순이 덕분에 ‘세 자녀 갖기’에 탄력이 붙을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를 갖기도 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삼순이는 너무 솔직했고, 너무 적나라했습니다.

편하게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순간 ‘움찔’ ‘움찔’ 했습니다.

“오래 굶은 이 누나는 피눈물이 난다”는 식의 표현은 민망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그 드라마를 보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자꾸 삼순이가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묘한 기분과 함께 어쩌면 삼순이가 바로 나 자신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서 ‘너도 삼순이처럼 살고 싶었잖아’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습니다.

거리낌 없고, 솔직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꿀리지 않고…. 그런 삼순이가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삼순이를 보면서 후련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보낸 20, 30대에는 꺼릴 꺼리가 많았습니다.

솔직할 수 없었고, 하고 싶은 대로 한 것보다 하지 못한 일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리고 ‘삼순이’보다 ‘희진이’가 더 소중했습니다.

그녀를 외면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었습니다.

힘들지만 희진이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내 맘 속의 삼순이가 속상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땐 희진이 옆에 잘 생긴 다니엘도 없었으니까요.

 

“세상에 태어나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 중 하나가 바로 헤어진 남자한테 전화질하는 거야.

(…) 그래도 그렇지, 난 줄 뻔히 알면서 생까고 있단 말야 지금? 나쁜 자식”

삼순이가 그렇게 말할 때는 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럽고 괜히 화도 났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나니 ‘삼순이’가 편해졌습니다.

슬며시 웃음도 나왔습니다.

 

삼순이가 상처받는 말들, “결혼은 했어?”, “애인은 있나?”라는 질문이 마치 30대 초반에 저를 걱정하는 선배들이

“요즘 뭐하니?”, “그래서 계획은 있니?”하는 질문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솔직한 삼순이의 삶이 부러웠나 봅니다.

어쩌면 평범할 수 없었던 제 일기장이 속상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제 선택이었고, 속상한 마음도 제 선택의 그림자겠지요.

 

<내 이름은 김삼순> 게시판을 찾아갔습니다.

드라마 기획의도에 “스토리는 심플하게, 감정은 깊게, 웃음은 호탕하게, 눈물은 진하게”라고 적혀 있더군요.

삼순이는 제작진이 그런 의도를 갖고 만든 모양입니다.

 

그럼 제가 선택한 길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스토리가 의미있게, 감정을 너무 드러내지 말고, 웃음과 눈물은 잔잔하게??”

 

후회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젠 삼순이를 편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삼순이, 당찬 삼순이를 이쁘고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이 소중한 만큼, 그녀의 인생이 소중한 건 분명합니다.

진지한 경험만이 정답이 아니듯이, 가벼워 보인다고 해서(이 세상 어떠한 인생도 가볍지 않습니다) 오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내가,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 얼마나 최선을 다해 몰입하고 있는가 하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드라마가 끝난다고 합니다.

TV를 통해 더는 삼순이를 볼 수 없겠지요.

 

그러나 드라마가 끝나도 수많은 ‘삼순이들’은 또 새로운 삶을 계획할겁니다.

그 삼순이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2005.7.18
김근태





장마철입니다.

크고 작은 비 피해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한발 앞서 대비하고 준비해야겠습니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와 함께한 지난 한 주일엔 정말 뉴스가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소식이 세 가지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소식,

둘째는 영국에서 있었던 폭탄테러 소식이고,

셋째는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했다는 소식입니다.

우선, 기분 좋은 얘기부터 하고 싶습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낭보였습니다.

북한과 미국 양국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며, 지금까지 6자회담을 위해 애쓴 우리 외교팀에도 격려를 보냅니다.

영국에서 발생한 수많은 희생을 보며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착잡함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위로와 격려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 강국인 우리가 따뜻한 인터넷, 따뜻한 지구촌 만들기에 앞장서는 것도 매우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폭탄테러의 원인이 보다 철저히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7일, 안타깝게도 한국노총마저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실은 민주노총이 복귀하기를 바라는 시점이었습니다.

민주노총의 복귀를 통해 노사정위원회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문제를 극복할 사회적 대타협의 시작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아쉬움이 큽니다.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합니다.

복지부 일을 하면서, 난마처럼 얽힌 우리나라의 경제와 사회정책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양극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가물가물해 질 것입니다.

국민적 분열을 감당하지 못하고 좌절할지도 모릅니다.

비정규직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비정규직의 확산은 곧 복지수요의 확대를 의미합니다.

단순히 고용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고용구조가 복지수요를 폭발시키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노동계와 정부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개혁을 위한 큰 길에서 손잡고 함께 가야할 사람들이 현안문제를 슬기롭게 풀지 못하고

너무 쉽게 대립의 길로 돌아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평화개혁세력의 분열은 결국 사회를 뒷걸음질 치게 만들고 말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자꾸 마음이 급해집니다.

물론, 비관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요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합니다.

 

잠시 탈퇴한 기간 동안 양대 노총이 더욱 단결하고,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를 깊이 성찰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조속히 대화의 틀 속으로 다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양대 노총이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 같이 우리 사회의 존망을 판가름할 문제에 대해

함께 팔 걷어붙이고 나서줄 것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진짜’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국민과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기를 요청하고자합니다.

새로운 대안이 필요합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우리 사회의 놀라운 경제도약을 가능케 했던 힘은 ‘성장주의 경제체제’였습니다.

그런데 그 체제가 급격히 효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반면에 새로운 대안은 쉽게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길은 노사정이 함께 하는 사회적 대타협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진정한 발전과 새로운 성장을 지지하는 모든 세력이

우리 사회 전체의 발전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짐을 나눠져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2005.7.11.

김근태






‘여름 복지부, 겨울 교육부’ 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직사회에서 농담처럼 하는 얘기인데, 여름에는 복지부 직원, 겨울에는 교육부 직원들이 바빠진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여름은 국민 건강에 ‘빨간 신호등’이 켜지는 계절이라는 뜻도 되겠지요.

꼭 그런 말을 의식한건 아니지만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서 저 역시 조금씩 긴장이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식중독과 국내외 전염병에 대한 보고서에 먼저 손이 가고, ‘여름 복병’과 맞설 궁리를 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복병이 언제 어디서 불쑥 나타날지 몰라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 들기도 하구요.

이달 중순이 지나면 초등학교가 여름방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학기동안 학교에서 감당해 왔던 결식아동에 대한 점심급식을 지방자치단체가 넘겨받습니다.

급식형태도 공동급식에서 개별급식으로 바뀝니다.

당연히 작년 연말에 있었던 ‘도시락 사건’의 교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담당 직원들에게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번에는 지난 겨울에 비해 훨씬 많은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위생이 중요한데, 여름철에는 하루만 지나도 음식이 상하기 때문에 정말 세심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세배, 네배 철저히 준비해야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사실, 걱정이 참 많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겨울에 드러난 전달체계의 문제점이 아직 말끔히 해결된 상태가 아닙니다.

뜻있는 많은 분들이 열심히 돕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일손이 턱없이 모자랍니다.


지난번에 드러난 것처럼 공조직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언론과 시민사회의 각별한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저도 각계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이번에도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직접 도시락을 배달하는 방법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이 방법이 아이들의 입장에서 가장 좋기 때문에 어려움을 감수하겠다는 각오겠지요.

얼마 전, ‘이번 여름에 국민 다섯명 가운데 한명이 해외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휴가계획을 세우셨습니까?

혹시 여름동안 ‘도시락 배달’을 하고 나서 휴가를 떠나는 계획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요?

2005.7.4
김근태


 



세월이 참 빠릅니다.

며칠 후면 보건복지부에 온지 일 년이 됩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정말 일이 많았습니다.

만두파동, 혈액파동, 도시락사건, 대구 어린이 장롱 아사사건….

국민의 자부심에 상처를 줄만한 일들이 줄줄이 터졌습니다.

마치 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사건을 수습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하다 문득 돌아보니 어느새 훌쩍 일 년이 지났습니다.

 

보람있는 일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처지에 빠진 분들 그리고 그분들을 돕는 ‘천사들’을 만난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 유난히 잘생긴 세브란스 병원의 청년 에이즈 환자, 암센터와 아산병원의 소아암 환자들,

서울역의 노숙자들, 청량리와 종묘공원 앞에서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섰던 어르신들,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님과 종묘공원의 김금복 씨.

그리고 해외 입양을 떠난 입양인들과 국내 입양의 길을 선택한 입양 가족들,

요셉의원 원장님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연탄나눔 운동에 참여한 젊은 아가씨들….

 

이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받은 최고의 보상이었습니다.

작지 않은 축복이었습니다.

이분들을 만나 불끈불끈 희망이 샘솟기도 했습니다.

 

오늘, 지난 일년 동안 만났던 그 많은 분들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소록도병원의 한센병 환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에이즈․암과 싸우던 그분들은 지금 병마를 이겨냈을까요?

서울역 노숙인들의 하루는 좀 나아졌을까요?

청량리역과 종묘공원의 긴 줄은 이제 줄어들었을까요?

국내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만난 그 많은 입양인들은 이제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좋을 만큼 마음의 평화를 찾았을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고,

주변에 수많은 분들이 그분들을 돕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도 상황은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득해집니다.

정부가 더욱 노력해서 복지정책을 개선하고, 복지재정을 늘리고, 전달체계를 개선해야겠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옵니다.

아니, 정부 정책만으로 이 분들이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단지 물질적 지원만은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필요합니다.

친구가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분들은 ‘가족’이라는 버팀목이 무너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언제나 관심과 애정을 보내는 가족이라는 버팀목 그것뿐일지도 모릅니다.

 

요즘 인터넷을 통해 ‘일촌’을 맺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에게도 많은 ‘일촌’이 있습니다.

처음 ‘미니 홈페이지’ 문을 열면서 ‘일촌’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을 때 참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일촌’이라는 각별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서로 ‘그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발상이 참 신선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일촌맺기’를 사회복지에 적용하면 어떨까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이 ‘일촌’을 맺고 마음을 주고받는 그런 ‘복지일촌운동’ 말입니다.

너무 부담스러우면 시작하기 어려우니까 쉽게 ‘일주일에 한번 전화걸기’부터 시작할 수도 있겠지요.

 

이런 일촌 여럿이 모여 ‘전화 걸어 줄 사람’, ‘가끔 찾아와 대화를 나눠줄 사람’, ‘한달에 만원씩 도와줄 사람’….

이렇게 서로 감당할 수 있는 역할을 맡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옛날 우리 가족들은 형편이 되는대로 서로 작은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가족 같은 도움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우선 얘기를 꺼낸 책임이 있으니까 제가 먼저 해보겠습니다.

먼저, 제가 ‘일촌’을 맺고 도울 분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저와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분들과 의논해 보겠습니다.
이 ‘일촌맺기’라는 생각에 의견을 주실 분들 있으면 좋겠구요.

 

어떻게 보면 이런 ‘복지일촌맺기’는 ‘사회적 가족만들기운동’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작은 모둠을 하나하나 만들다보면 우리 사회에 희망의 촛불이 하나씩 켜지고

훨씬 따뜻한 여기 이곳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그런 뿌듯한 생각을 하면서 여러분께 편지를 씁니다.

 

2005.6.27
김근태

 



‘보건복지부가 관행적 부조리를 고해성사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언론 보도는 크게 두 갈래였습니다.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평가한 경우도 있었고, ‘알고 보니 챙기기의 달인’이라는 식의 보도도 있었습니다.

 

복지부 직원들이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일부 언론이 자극적인 사례만 부풀렸다고 짜증내는 소리가 나올 법 합니다.

‘제대로 해 보겠다’고 마음먹고 고백했는데 ‘챙기기의 달인’이라는 불명예스런 얘기를 듣게 됐으니 섭섭한 마음이 왜 안 들겠습니까?

 

그러나 너무 낙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야속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지금 공직사회와 국민 사이에 놓인 불신의 벽은 결코 한꺼번에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읍시다. 옛날 제가 대선후보 경선자금 고백했을 그때가 생각납니다.

사실 혹독한 역풍에 시달렸고, 속 많이 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투명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잣대’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투명하지 않은 집단이 신뢰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콩 심어 놓고 수박이 열리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공직사회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공직사회는 생존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살아있더라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건복지부는 구설이 있었지만 앞으로 더욱 투명성 회복을 강도 높게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번에 ‘관행적 부조리’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 것은 ‘투명성 회복 추진’의 첫단추를 채운 것입니다.


‘투명사회협약실천위원회’와 함께 18개 정부․민간단체가 참여하는 ‘보건의료분야 투명사회협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누가 강요하거나 일방적으로 설득하는 방식으로는 추진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번 선언하고 마는 ‘이벤트’가 돼서도 안되겠지요.

 

기대가 큽니다.

공직사회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만 있다면 우리 사회의 경쟁력은 몇 단계 높아질 수 있습니다.

공직자들이 먼저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지금 당장의 보상은 없습니다.

아마 야유도 있을 것이고, 좌절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동요되겠지만 그래도 어깨동무하고 앞으로 갑시다.

그러면 우리들 가슴속에 어떤 자부심이 자리잡을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2005.6.20
김근태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동티모르의 시나나 구스마오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구스마오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99년 즈음이었습니다.

 

독립의 열망이 고조되고 있던 동티모르의 지도자 구스마오(민족저항평의회 의장)는

자카르타감옥 바로 앞의 조그마한 판잣집에 구금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미국의 지미카터 전 대통령과 함께 그 곳을 방문했습니다.

그 때 봤던 구스마오 대통령의 간절하고 부드러운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우리가 구스마오 대통령에 대한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어떤 순수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맑은 영혼을 무기로 고난의 투쟁에서 승리한 사람 그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모종의 조용함 그리고 그 안의 열정일 것 같습니다.

 

그 구스마오 대통령이 조용하게 고민거리를 털어 놓았습니다.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했습니다.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인데다가 이십대가 절반이 넘는 인구구조이기 때문에

동티모르 고유의 전통과 문화유산이 아차하면 시간과 함께 저 너머로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고 걱정했습니다.

 

저소득층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기회를 확대하는 것도 고민거리라고 했습니다.

독립운동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상이퇴역군인에 대한 의료생활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골칫거리라고 했습니다.

치열했던 동티모르의 무장독립투쟁사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 여성과 어린이의 영양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는 일도 아주 시급하다고 했습니다.

 

구스마오 대통령은 이처럼 여러 문제에 대하여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완곡하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구스마오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해외의 친구들로부터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해외의 민중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우리에 대한 기대와 신뢰도가 올라갔기 때문이겠지요.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합당한 책임을 다해야합니다.

그래야 영향력이 생기고 국익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자부심이 중요합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외국친구들의 손을 결단해서 맞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동아시아 민중들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협력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 내부의 그늘진 곳에 따듯한 온기를 보내는 일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 눈을 돌리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이룬 다음에 이웃을 돕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면 저는 동의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인색한 나라’, ‘책임을 다하지 않는 나라’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과부가 낸 두 랩돈이 얼마나 귀한지 아느냐고 역정을 내시던 예수님이 바로 우리 앞에 서 계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제가 붙잡혀 있는 화두는 ‘새로운 민주주의’입니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따뜻한 시장경제’ ‘인간의 모습을 한 시장경제’를 이뤄내고

국민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따뜻한 시장경제’를 이룩하고 그 경험을 아시아의 민중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아시아의 이웃들이 우리를 보다 신뢰하고 협력하고 싶어 하는 꿈 말입니다.

다음에 구스마오 대통령을 다시 만나면 ‘따뜻한 시장경제’를 이룬 경험을

그처럼 차분하게 안내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2005.6.14
김근태





지난번에 여,야당 지도부를 방문했습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만 빼고 여,야당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모두 만났습니다.

 

박근혜 대표는 지난 4월 국회 대표연설에서 ‘국민연금제도’에 대해 중요한 언급을 한 바가 있어서

나눌 말씀이 있는데 아직 약속이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아쉽습니다.

 

이번에 정당 대표를 만난 이유는 ‘국민연금’ 때문입니다.

국민연금법 개정에 대해 공식적인 토론이 지지부진해 직접 정당 지도부를 만나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국민연금법 개정은 국가적인 현안 가운데 현안입니다.

저출산 고령화의 위험이 시시각각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제도를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은 물론 언론과 국민 상당수가 날카로운 견해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도 연금제도 개혁은 난제 중에 난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연금제도 개혁’을 둘러싼 공방 때문에 사회적 논쟁이 촉발되고, 정권은 물론 나라가 흔들린 사례도 많습니다.

 

우리 사회의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논란은 해묵은 것입니다.

정부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지 벌써 3년째가 됩니다.

그동안 국회는 물론이고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가히 ‘국론분열’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었고 또 그만큼 중요한 논쟁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논쟁이 3년이 다되도록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16대 국회에서는 상정만 해놓은 채 결국 16대 국회가 문을 닫을 때까지 토론다운 토론 한번 못해보고 자동폐기됐습니다.

 

17대 국회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년이 넘도록 본격적인 토론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정치인 출신이기에 ‘정치권’의 어려움을 잘 압니다.

어찌됐건 ‘미래를 대비하자.’는 메시지가 국민연금제도 개혁의 핵심이고,

당장 부담을 늘리는 것 외에 뚜렷한 결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현실정치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미래의 어려움은 막연한 것인 반면에

‘당장 더 부담하자.’는 주장을 수용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당장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분들에게 이런 설득을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 꿀 한 그릇보다 당장 엿 한 가락이 더 달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정치를 하다보면 나중 일을 준비하기보다 당장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에 먼저 눈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국민연금제도 개혁은 마냥 미룰 일이 아닙니다.

외국의 경우에도 심지어 정권이 흔들리는 상황을 각오하고서도 연금개혁을 단행한 사례가 많습니다.

그게 미래를 위한 올바른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사회는 2026년이 되면 바로 초고령사회가 됩니다.

국민연금제도는 이런 위기상황에 대비하는 최소한의 안전판입니다.

이 엄청난 부담을 후세에 떠넘긴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잿빛’일 수밖에 없습니다.

‘희망을 잃은 사회’가 돼버릴지 모릅니다.

 

이미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번에 정당 지도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토론의 장을 만들자.’는 데에는 대략적인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국민들이 함께 참여해 본격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자는데 의견을 모은 셈입니다.

구체적인 방식은 여야 국회의원들과 지도부들께서 의견을 모아 결정해야겠지요.

 

올해는 전국적인 선거가 없는 해입니다.

내년에는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있고, 내후년에는 대통령선거, 2008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연속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게 국민을 향해 부담을 늘려 달라고 설득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표 떨어질 게 뻔한 주장을 할 정치인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미래에 큰 재난적 부담이 예견되는 일을 그저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국민연금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6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범국민 토론기구’를 통해 3년 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끝마쳤으면 좋겠습니다.


2005.6.7
김근태


 

 

오는 7월부터 노인요양보장제도 시범사업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개별 가정이 전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치매․중풍의 고통을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지는 제도가 시행되는 것입니다.

 

의사결정을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참여정부의 핵심공약이고, 머지않아 닥칠 ‘고령화의 재앙’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만 가지고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노인요양보장제도를 비롯해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의 기본 정신은 ‘사회적 연대’입니다.

민간보험이 자신에게 닥칠 미래의 위험을 자기가 대비하는 것이라면 사회보험은 ‘함께’ 준비하는 것입니다.

세대와 계층을 초월해 미래의 어려움을 분담한다는 의미에서 우리 전통의 ‘품앗이’나 ‘울력’과도 흡사합니다.

 

의사결정을 하면서 그런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졌는가? 그렇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결론은 ‘아직 부족하다.’였습니다.

 

노인요양보장제도의 총론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흐름이 형성되어 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논쟁과 분쟁거리가 많았습니다.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의 상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적 삶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 부담’을 어느 정도 나눠져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회적 공감’을 이루지 못한 채 당위론만 갖고 추진하는 정책은 엄청난 대가를 치릅니다.

국민연금 제도의 시행이나 의약분업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제도의 기본정신인 ‘사회적 연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해야 한다.’는 당위만 갖고 정책을 추진할 경우에는 예외 없이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시범사업을 앞두고 이런 고민 때문에 혼란스럽고 힘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미 ‘사회적 연대 방식’이 아니면 풀 수 없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문제가 많습니다.

고령화나 사회적 양극화와 같은 현상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연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수준은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피해갈 수 없는 문제라면 정면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힘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총론 찬성’을 확실한 흐름으로 만들고, ‘각론 반대’에 대해서는 열린 마음을 갖고 토론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정책결정과정을 투명하게 밝히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회적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은 ‘사회적 경험’의 차이 때문입니다.

서구사회는 오랜 시간동안 시민에 의한 민주주의의 훈련 과정을 거쳤습니다.

수많은 이견이 충돌하고 절충하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형성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그런 합의과정이 부족합니다.

 

이제, 제도를 시행하기로 당정 간에 합의를 했습니다.

앞으로 국회 논의가 남아있지만 총론에 대한 합의가 있는 만큼 연내에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훨씬 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빙산 저 아래에 있는 ‘사회적 연대’

‘사회적 합의’라는 훨씬 큰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05.5.30
김근태

 



지난주에 제네바와 스톡홀름을 방문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총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스웨덴을 들렀습니다.

세계화를 앞세우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숨길이 여기저기서 느껴졌습니다.

복지선진국 스웨덴도 예외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대안은 없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세계화를 ‘다자주의’에 입각해서 추진하는 국제적인 힘을 형성하고 그 힘을 축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증오와 공포, 그에 기초한 분열적인 현재의 국제사회-이대로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입양아들을 만났습니다.

지난 4월 OECD 회의 차 방문했던 파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네바와 스톡홀름에서도 공식 일정이 끝난 다음에 입양아들을 만났습니다.

 

아니, 이제 30대~40대가 됐으니까 ‘입양인’들을 만났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습니다.

제가 만나자고 청했습니다.

도리고 책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긴장했습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는 한참이 지나서야 풀렸습니다.

그리고 질문은 날카로웠습니다.


“왜 만나자고 했느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느냐?

경제가 발전하고 민주화도 이루고 저출산으로 야단이면서도 지금도 해외로 아이들을 입양 보내는 이유가 무엇이냐?

자신들을 내보낸 건 전쟁과 가난 때문이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올림픽과 월드컵 이후에 입양 보낸 아이들이 커서 질문을 하면 그땐 도대체 뭐라고 답변할거냐?”

두 손을 다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거운 압박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 상황이 오는 게 너무 무섭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솔직히 그건 답변이 아니었습니다. 일종의 파탄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도 해마다 1만명 정도의 아이들이 부모와 헤어집니다.

그 가운데 1,700명 정도를 국내에서 입양하고,

2,000명 정도를 수양부모가 맡아 가정위탁 형태로 키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2,300명 정도가 해외로 떠납니다.

이렇게 하고 남는 4,000명은 고아원 등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겐 가정이 세상의 절반을 넘습니다.

소년소녀 가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찬사는 사실상 아동학대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보건복지부에 와서야 비로소 그런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즉시 정책적으로 해외입양을 금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가정을 찾아주지 못하고 결국 고아원에서 자라게 하면서

비록 해외지만 가정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막는 결정을 하는 것은 위선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와 비판이 있습니다.

뚜렷한 해법도 없고 해오던 일이니까 당분간 그대로 가자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지혜를 짜내고 결단을 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입양인들과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중에는 분위기가 썩 괜찮아졌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 자리에 나온 사람들이 모두 그 사회에서 성공했거나 성공해가고 있는 분들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정체성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했고, 우리를 이해하고 용서해줄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수줍게 요청했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게 창피하다고 하면서 한국말과 글을 배울 수 있는 ‘한글학교’를 지원해 달라고 했습니다.

한국 방문 기회를 늘려주고, 세계 한국 입양인 모임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계로 진출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 자격이 되는 사람들은 입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남는 문제는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귓전을 맴도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이 나를 편하게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입양부모를 잘 만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입양인의 상당수는 지금도 그늘에서 살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 때가 아닌가?”

2005.5.23
김근태

 


 

오늘은 토요일에 편지를 씁니다.

내일부터 해외출장을 떠날 계획이라 서둘러 편지를 씁니다.

결국, ‘토요일에 쓰는 편지’가 됐네요.

 

지난 목요일에는 나이팅게일 탄신일을 맞아 ‘간호사 한마음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5,200명의 간호사가 ‘장기기증 서약’을 했습니다.

현장에서 서약을 지켜보며 느낌이 참 많았습니다.

 

장기를 기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굳이 유교적 전통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자기 장기를 떼어내도 좋다는 약속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결단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흰옷 입은 5,200명의 여성이 이런 결단을 해내는 광경은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습니다.

가슴이 저릿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는 느낌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낌새를 채지 못할 정도로 소리 없이 다가오는 물결입니다.

저는 이 물결의 일렁임을 느끼며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이 물결이 우리 사회를 새로운 도약대로 이끌 것이라는 예감 때문입니다.

 

어느 자리에선가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했던 기억이 납니다.

과거의 민주화운동이 ‘제도와 세력을 바꾸자.’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민주화운동은 ‘문화와 삶을 바꾸자.’는 것이라는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의 방식과 문화를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게 바꾸는 것이 ‘새로운 민주화운동’이라는 정의가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살만한 세상, 자부심을 느껴도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민주화운동’이니까요.

 

지난 3월, ‘국가적 자부심’에 대한 충격적인 조사결과를 보도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조사에 의하면 세계 32개국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의 국력은 8위인데 비해

국민이 생각하는 ‘국가적 자부심’은 31위였습니다.

꼴찌에서 두 번째입니다.

 

32개국의 평균을 넘는 건 ‘스포츠’가 유일했고,

‘공평성’이나 ‘사회보장제도’는 평균의 70%에 불과했습니다.

한마디로 ‘빈부격차’나 ‘사회보장제도’의 부실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문제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더 모질게 준비하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라는 사실은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후손에게 이런 상황을 그대로 물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여러분에게도 손을 내밀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정부가 감당해야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를 ‘핵심가치’로 믿는 분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자는 소망을 갖고 있는 여러 분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살고 있는 터전에서 시작합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동아리에서, 지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모임을 만듭시다.

이웃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소모임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 작은 눈덩이를 굴려 큰 흐름으로 바꿔냅시다.

‘희망 바이러스’를 만들고 전파합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여러분과 고민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안도 듣고 싶습니다.

작은 물결을 큰 흐름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가 혹은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내일, WHO 총회 참석을 위해 스위스로 떠납니다.

스위스를 거쳐 스웨덴도 방문할 생각입니다.

가능한 범위에서 스웨덴의 복지제도도 살펴보고 돌아오겠습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이라도 인터넷을 통해 여러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제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2005.5.15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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