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동티모르의 시나나 구스마오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구스마오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99년 즈음이었습니다.

 

독립의 열망이 고조되고 있던 동티모르의 지도자 구스마오(민족저항평의회 의장)는

자카르타감옥 바로 앞의 조그마한 판잣집에 구금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미국의 지미카터 전 대통령과 함께 그 곳을 방문했습니다.

그 때 봤던 구스마오 대통령의 간절하고 부드러운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우리가 구스마오 대통령에 대한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어떤 순수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맑은 영혼을 무기로 고난의 투쟁에서 승리한 사람 그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모종의 조용함 그리고 그 안의 열정일 것 같습니다.

 

그 구스마오 대통령이 조용하게 고민거리를 털어 놓았습니다.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했습니다.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인데다가 이십대가 절반이 넘는 인구구조이기 때문에

동티모르 고유의 전통과 문화유산이 아차하면 시간과 함께 저 너머로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고 걱정했습니다.

 

저소득층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기회를 확대하는 것도 고민거리라고 했습니다.

독립운동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상이퇴역군인에 대한 의료생활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골칫거리라고 했습니다.

치열했던 동티모르의 무장독립투쟁사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 여성과 어린이의 영양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는 일도 아주 시급하다고 했습니다.

 

구스마오 대통령은 이처럼 여러 문제에 대하여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완곡하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구스마오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해외의 친구들로부터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해외의 민중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우리에 대한 기대와 신뢰도가 올라갔기 때문이겠지요.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합당한 책임을 다해야합니다.

그래야 영향력이 생기고 국익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자부심이 중요합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외국친구들의 손을 결단해서 맞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동아시아 민중들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협력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 내부의 그늘진 곳에 따듯한 온기를 보내는 일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 눈을 돌리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이룬 다음에 이웃을 돕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면 저는 동의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인색한 나라’, ‘책임을 다하지 않는 나라’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과부가 낸 두 랩돈이 얼마나 귀한지 아느냐고 역정을 내시던 예수님이 바로 우리 앞에 서 계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제가 붙잡혀 있는 화두는 ‘새로운 민주주의’입니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따뜻한 시장경제’ ‘인간의 모습을 한 시장경제’를 이뤄내고

국민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따뜻한 시장경제’를 이룩하고 그 경험을 아시아의 민중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아시아의 이웃들이 우리를 보다 신뢰하고 협력하고 싶어 하는 꿈 말입니다.

다음에 구스마오 대통령을 다시 만나면 ‘따뜻한 시장경제’를 이룬 경험을

그처럼 차분하게 안내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2005.6.14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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