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 무기고 박물관 [ Kremlin Armoury, Oruzheinaya palata moskovskogo Kremlya]


16세기 모스크바의 크렘린 내에 창설된 무기의 제조장 겸 수장고(收藏庫)를 모체로 한다. 

17세기 이콘[聖畵像]의 아틀리에로도 사용되었다. 

18세기 초 러시아의 수도가 페테르부르크로 옮겨 간 후에는 황실(皇室) 소유의 

귀중품을 수장하는 보물관이 되었고, 1813년 박물관으로서 발족하였다.


오늘날 이곳에는 무기 · 호구류(護具類) 그 밖에 키예프 러시아 시대의 왕관을 비롯하여 

역대 황제의 어좌(御座) · 옷 · 마차, 금은제(金銀製) 식기, 금실과 진주를 아로새긴 고위 성직자를 위한 의복 등이 수장되어 있다. 

2층으로 된 건물은 1844∼51년 건축가 Konstantin Ton의 설계로 세워졌으며, 

건물 안에는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각종 보석의 대규모 컬렉션이 있어 찾는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크렘린 무기고 박물관 측면


크렘린 무기고 박물관 앞면


1806년 크렘린 무기고 전경 (View of the old Armoury building in the Moscow Kremlin)




나폴레옹 군대가 두고 간 포신


크레믈린 궁 안에는 나폴레옹이 1812년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퇴각할 때 버리고 간 

600여 대의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나폴레옹이 후퇴하면서 버리고 간 대포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다.


Произведения Византии, Сербии, Грузии.


Витрина 1. Произведения Византии, Сербии, Грузии.


Ковчег-реликварий святого Дмитрия Солунского


Ставротека


Икона наперсная


Панагия с камеей «Распятие с предстоящими»


Икона наперсная «Спас Вседержитель»


Икона


Витрина 2. Произведения русского золотого и серебряного дела XII-XV веков.


Колт


Браслет


Подвеска (сионец)


Бармы


Ожереье


Височные кольца


Витрина 6. Произведения московских златокузнецов XVI века


Евангелие


Икона мерная «Иоанн Лествичник» в окладе


Оклад на икону «Богоматерь «Одигитрия» или «Иосафская»


Крест напрестольный


Икона «Богоматерь Владимирская» в окладе


Крест напрестольный


Камея Богоматерь с Младенцем


Панагия


Крест наперсный с резным изображением распятия


Зал 1. Русские золотые и серебряные изделия XII - начала XVII веков


Витрина 3. Ювелирное искусство Москвы XV века


Корона с оклада иконы «Богоматерь Боголюбская»


Икона «Богоматерь Млекопитательница» в окладе


Венец с оклада иконы


Оклад иконы «Богоматерь Владимирская»


Икона-складень «Спас на престоле»


Кадило


Икона-складень «Похвала Богоматери»


Евангелие


Икона наперсная «Сошествие во ад»




그라노비타야 궁전 (Granovitaya Palata, Грановитая Палата)


이반 대제 시절인 1491년에 지어진 다면체 궁전 그라노비타야는 독특한 벽면의 석축공법에서 유래되었는데 

르네상스 시대를 대변하는 건축물이다.

크레믈린 대궁전과 테렘 궁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다면체 궁전은 15세기 무렵에 

마르코 루포와 피에트로 솔라리오라는 이태리 건축가에 의해 지어졌다.  


이반대제 종루에서 정면 서쪽으로 바라보면 오른쪽 끝에서부터 왼쪽까지 성모승천성당​, 성모성의안치성당, 

테렘궁 예배당 열 한 개 돔을 지나 가운데 흰 대리석 건물 그라노비타야 궁전이 서 있고

왼쪽 뒤로는 크렘린 대궁전의 동쪽 날개가 보인다.


러시아 통일의 기반을 다진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대제)는 이탈리아 건축가를 초빙해 

1472년 성모승천성당을 성공적으로 완공하자 이탈리아에서 마르코 루포와 피레트로 솔라리오를 더 불러와

1492년 그라노비타야 궁전을 왕실 연회장과 리셉션장으로 지었다.


크렘린에 남아 있는 옛 건물 가운데 종교 건축을 빼고는 가장 오래되었다.

겉보기엔 삼층 같지만 천장과 벽 모두를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해 툭 트인 공간이다.


'그라노비타야'는 보석을 가공하면서 절삭한 면(面)을 가리킨다. 영어로는 'Facet'로 번역할 수 있겠다.

창문마다 양쪽에 세운 장식 기둥이 보석을 깎아내듯 섬세하고 아름다워서 붙인 이름이다.​

넓이는 160평밖에 안 되지만 차르(황제)들의 취임 축하연, 외교사절 환영연을 열었고

이반4세(뇌제)는 카잔한국 정복을 자축하며 사흘 동안 연회를 벌였다고 한다.


표트르대제는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기고도 스웨덴전쟁 승전 축하연을 여기까지 와서 치렀다고 한다.

현대에도 신임 대사들이 부임해 오면 여기서 신임장을 제정한다.


1994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방문했을 때도 리셉션이 열렸다.

2012년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쳐 일반에 개방됐지만 인원을 제한해 미리 예약한 관광객만 들어갈 수 있다.


그라노비타야 궁전  (Granovitaya Palata, Грановитая Палата)


삼각 대리석의 장식주가 전면을 둘러싸고 있는 이 건물의 높이는 29m이며 장방형 건물이다. 

현관은 모자이크로 장식 아름답지만 고풍스러운 주위의 경관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라노비타궁과 수태고지성당 사이로 크렘린 대궁전의 동쪽 날개 일부가 보인다.


14세기 목조 궁전이 있던 자리에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지었던 차르의 바로크 궁전을 허물고

로마노프 왕조의 위세를 뽐내기 위해 1849년에 지었다.

광장에서 보이는 부분은 너비 125m, 높이 47m에 이르는 궁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층 건물이지만 이층 창을 2단으로 만들어 삼층처럼 보인다.


그라노비타야 궁전  (Granovitaya Palata, Грановитая Палата )


그라노비타야 홀 (Granovitaya Hall)


1491년 마르코 라포와 피에트로 솔라리가 완성한 건축물로 외국 대사의 접견, 귀족 의식 등에 사용되었다. 

크렘린에서 가장 큰 공식 알현실로 둥근 천장, 웅장한 샹들리에, 

성서와 역사의 장면을 묘사한 벽화들이 그라노비타야 궁전의 접견실을 아름답게 빛내고 있다.


화려한 그라노비타야 궁전 내부


이반대제 종루의 맞은편에  '그라노비타의 궁전'이 만들어져 이 건물 4층에 짜르가 군림했다. 

그라노비타야 Granovitaya라는 뜻은 '다면(多面)의'라는 뜻인데 

궁전에 붙여진 이유는 주 현관을 장식하는 돌이 다면형이기 때문이다.


그라노비타야 궁전 내부


이반대제, 표트로 대제 등이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으며 왕비나 왕녀 등 연인들은 

참가할 수 없었고 궁전을 장식하고 있는 태피스트리로 밖을 엿보았다고 한다.


그라노비타야 궁전 내부


크렘린 궁전의 꽃은 역사의 흔적과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는 그라노비타야 궁전이다.

우스펜스키 대성당과 마주 보고 있는 그라노비타야 궁전은 이반 대제에 의하여 1491년에 건설된 궁전으로 

이반 대제는 이탈리아 건축가 마르코 루포와 안토니오 솔라리를 불러 이 궁전을 짓도록 했다. 

그라노비타야 궁전이 완성되자 이반 대제는 매우 만족하여 궁전을 만든 이탈리아 건축가들을 몹시 칭찬했다고 한다.


보야르 방(Boyar's Room)


그라노비타야 궁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장소로는 보야르 방이 있다. 

보야르(Boyar)는 봉건 영주를 뜻하는 러시아어인데 러시아의 각 지역을 다스리던 영주와 제후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고, 또 황제에 대항하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던 곳이다. 























[영상] 그라노비타야 궁전  (Granovitaya Palata, Грановитая Палата )


[영상] 그라노비타야 궁전  (Granovitaya Palata, Грановитая Палата )





























































































































하늘에서 본 크렘린궁전


1875년 크렘린 대궁전


모스크바 강과 크렘린 궁전


'크렘린'이니 '크레믈린 궁전'과 같은 영어식 표현으로 신문과 방송에서 소개되곤 하는 끄레믈(Кремль)은

사실 특정한 건물이나 성벽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끄레믈의 원래 사전적인 의미는 ‘성벽’, ‘요새’라는 뜻의 보통명사다. 

러시아 지역 상당수에 ‘끄레믈’이라고 불리우는 성벽이 하나씩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지역의 끄레믈이라는 수식어가 붙여 불리운다. 

그러나 단순히 끄레믈이라 불리우는 곳은 단 하나 모스크바에 있는 것을 지칭한다. 

더불어 끄레믈은 수도 모스크바의 정치적 심장부를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약 26만 제곱미터의 넓은 구내에 들어선 끄레믈 내의 건물들은 

과거 ‘짜르’와 정교 대주교의 거처였다. 

끄레믈은 세상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러시아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는 옛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사실 끄레믈은 아주 강렬하게 옛 러시아를 상징하는 것이어서 러시아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뾰뜨르 대제(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근대 - 근세화 시키려고 결심했을 때 끄레믈이 있는 모스크바를 뒤로한 채 

북서쪽 650km 지점에 새 수도인 쌍뜨 뻬쩨르부르그를 세워 새 출발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 남아 있는 ‘끄레믈’은 1812년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에 의해 소실된 이후 재건축한 것이다. 

여러 궁전과 사원, 최고회의 건물, 병기고, 무기고, 대포의 황제, 종의 황제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다.


크렘린 대궁전 ( Большой Кремлёвский дворец, Great Kremlin Palaces )


발쇼이 끄레믈룝스키 드바례쯔(Большой кремлевский дворец - 1838-50 - Тон К.А.)’라고 부르는 건물이며, 

크렘린 대궁전이라고 불리운다. 

모스크바 강에 면하고 있는 이곳은 과거 제국시절인 15∼17세기 역대 황제의 처소였던 곳이다. 

전장 125m, 방의 수는 700개, 총 2만㎡의 넓이를 자랑한다. 


건물의 1층에는 집무실 외에 역대 황제의 대리석, 호화로운 방들이 있고 

2층에는 저 유명한 예식용 ‘게오르기 홀’이 있다. 

이곳에는 19세기의 가구, 샹들리에, 양탄자, 악기, 그림, 조각 등이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어 

파리의 루브르 궁전 못지 않게 화려함을 갖고 있다. 


그 후 1934년 개축 때에는 3,000명 수용의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의장이 만들어졌었다. 

주요한 몇 개의 홀에는 러시아 훈장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에카테리나 훈장의 홀, 블라디미르 훈장의 홀 등이 그것이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홀이 ‘게오르기 홀’이다. 

이 곳은 러시아 대통령 취임식을 벌이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게오르기 홀은 연간 공개되는 날이 극히 한정되어 있을 정도로 외부 공개를 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1년 내내 외부 공개를 하지 않을 때도 있다. 

게오르기 홀을 비롯해 대 끄레믈 궁전 안을 이미지로 만나본다. 


크렘린 대궁전 ( Большой Кремлёвский дворец, Great Kremlin Palaces )


중세 러시아의 성새(城塞) · 성벽(城壁)으로, 오랫동안 러시아 황제의 거성(居城)이었으나 

18세기 초 페테르스부르크(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겨울궁전 [동궁 冬宮]'이 세워지면서 

황거(皇居)로서의 기능을 잃었으며, 1918년 이후 소련 정부의 본거가 되었다. 


러시아어(語)로는 크레믈리(kreml")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모스크바의 크렘린이며, 러시아어 대문자로 시작할 때는 모스크바의 것을 가리킨다. 

전설에 의하면, 모스크바의 창건자 유리 돌고루키공(公)이 1156년 무렵 

작은 언덕 위에 숲과 목책으로 요새를 구축하였다 한다. 


14세기 타타르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떡갈나무로 두껍게 성벽을 건설하였고, 1367년 이것을 하얀 돌로 대체하였다. 

이것이 벽돌의 총안(銃眼)이 있는 성벽이 되었으며, 15∼16세기에 다시 축조되어 현재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으로 모스크바는 다시 수도가 되어, 1918년 이후 크렘린은 소련 정부의 본거가 되었다. 


따라서 "크렘린"이란 말은 소비에트연방 시대에 소련 정부와 당(黨) 또는 당국자(當局者)의 대명사로서도 사용되었다. 

현재의 크렘린 궁전은 모스크바 강(江)을 따라 1변이 약 700m의 삼각형을 이루고, 

높이 9∼20m, 두께 4∼6m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장식적인 성벽의 첨탑, 피라미드형 탑, 북동의 주문(主門) 레데멜문의 시계탑 등은 17세기에 증축되었다. 

성내에는 3대 성당인 성모승천교회(건축 기간 1475~1479), 성수태고지교회(1484~1489), 

대천사교회(대천사미가엘교회:1505~1508)를 비롯하여 많은 교회당과 수도원 · 궁전 · 관청 · 탑 등이 있다. 


중앙에는 높이 100m의 대종탑(이반대제 종탑)이 서 있는데, 이 종탑이 서 있는 자리는 

모스크바의 정중앙에 해당한다고 하며 적이 칩입하면 종탑에 있는 21개의 종이 일제히 울렸다고 한다. 

대부분의 건물은 15~16세기에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설계하여 지은 것이다.


크렘린 대궁전 ( Большой Кремлёвский дворец, Great Kremlin Palaces )


1층의 창문에 있는 2개의 줄은 17세기 러시아 건물의 특징인 백석장식으로 기둥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궁전 중앙부 위에는 금으로 도금된 난간과 깃대가 장식되어 있다.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같이 공존하고 있으며 지금은 외국 정부 요인들과의 접견이나 회견에 자주 상용되고 있다.


크렘린대 궁전의 외관은 중세 러시아의 건축과 비잔틴양식의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 크레믈린 궁전의 4층에는 황제가 거주했다고 한다. 

옥좌가 있는 방의 가운데 창은 '탄원의 창'이라고 하는데 창 밖으로 늘어뜨린 긴 천 끝에는 상자가 매달려 있었는데 

이곳은 누구라도 탄원할 일이 있으면 서면으로 그 원하는 바를 직접 황제에게 건의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크렘린궁전 안뜰


게오르그홀 (Georgievsky Hall)


궁전의 1층에는 집무실외에 역대 황제의 대리석, 호화로운 방들이 있고 

2층에는 저 유명한 예식용 ‘게오르기 홀’이 있다. 

이곳에는 19세기의 가구, 샹들리에, 양탄자, 악기, 그림, 조각 등이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어 

파리의 루브르 궁전 못지 않게 화려함을 갖고 있다. 

그 후 193년 개축 때에는 3,000명 수용의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의장이 만들어졌었다.


크렘린궁의 대통령궁                   

             

대통령궁은 1776년부터 1787년까지 마트베이 카자코프에 설립. 

역대 당서기장들의 집무실이기도 했으며 3층은 1918년부터 1922년까지 레닌이 거주했었다.


첼무노이 궁전


1636년에 건설된 첼무노이 궁전은 황제와 여제가 머물던 궁전이다. 

돌로 지은 석조 건물이지만 전통적인 러시아 목조 양식으로 지어졌다. 

황금으로 도금한 방을 비롯하여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천장 등 궁전 전체가 호화롭게 꾸며져 있다. 


황제의 방 (Throne Room)


주요한 몇 개의 홀에는 러시아 훈장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에카테리나 훈장의 홀, 블라디미르 훈장의 홀 등이 그것이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홀이 ‘게오르기 홀’이다. 현재 일반인에게는 관람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황제의 방 (Throne Room)


1934년 개축 때에는 3만 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의장이 만들어졌으며 

현재는 러시아 최고 회의의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 외에 몇 개의 주요한 홀이 만들어졌는데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게오르기 훈장의 홀이다.

현재 대 크레믈린 궁전은 국가 원수와의 회견장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내부는 관람할 수 없다고 한다.


황제의 옥좌


화려한 성 안드레프스키 홀 (Andreevsky hall)


성 알렉산드로스 홀 (St. Alexander Hall)

1812년 소실된 후 1838-1849년 사이에 치챠코프, 게라모프, 리히텔, 돈 등의 러시아인 건축가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영상] 크렘린 대궁전 (Great Kremlin Palaces)





삼위일체탑 입구


크렘린(Кремль)은 성체, 성벽이란 뜻으로 모스크바 외에도 크렘린이란 이름은 여러 곳이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크렘린 하면 우리는 바로 모스크바 성채를 떠올린다

러시아 내의 오래된 도시들은 다 크렘린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모스크바의 크렘린이 가장 유명하며, 러시아어 대문자로 시작할 경우 보통 모스크바의 크렘린을 말한다.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쌓아 놓은 성벽이었지만 러시아 공산주의 시절 그들은 높은 담 안에서 회의를 하며 

회의 내용이 노출되지 않게 그들의 비밀을  알지 못하게 하는 의미로 

크레믈린이란 사람들에게 음흉하다,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함 등 다른 의미의 단어로 새겨지게 되었다.


삼위일체탑을 지나면 우측에 크레믈린 대회당, 왼쪽에 대통령궁이 있다.


1961년에 완공한 유일한 현대식 건물로 구 소련 때 공산당 전당대회,  중앙위원회 총회장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국제 회의장,  볼쇼이 제2극장으로 문화예술 공연을 하고 있다.

유일한 현대식 건물로 크레믈린 대회당은 크렘린 안에서 유일한 현대식 건물인데

이 건물 때문에 크레믈린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크렘린 대회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Кремлёвский Дворец 국가 크렘린 궁전)


후루쇼프 시절인 1961년에 지어진 건물로, 크렘린 경내의 가장 큰 현대식 건축물이다. 

소련공산당 전당대회 등 주요 국가행사에 사용되었다가, 요즘은 주로 콘서트홀로 활용된다. 

다소 비싼 볼쇼이 극장 대신, 가성비 좋은 발레 공연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여행가이드북에는 종종 '크렘린 극장'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공산당 시절 당 간부들이 모여서 회의를 주로 하던 장소인데 그들이 어디서 회의를 하는지,  

어떤 내용을 하는지 항상 비밀이었고 그들의 소재 파악에 대해서도 비밀 사항이었다 한다.

흔히 사람들이 말을 잘 안하고 비밀이 많으면 우리들은 크렘린 같다고 하는 것이 여기서 나온 말이 아닌가 한다.

삼각형 모양의 대리석 기둥이 전면을 장식하고 있는 크레믈린 궁전 내의 유일한 현대식 건물로서, 

1961년에 완공된 높이 29m의 장방형 건물이다.


크레믈린 대회당 정면에 러시아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 문장이 있다.


콘서트, 발레 등의 공연장으로 사용되며 최근에 머라이어 캐리 등도 공연했다.   

또한 KBS 열린 음악회도 여기서 한번 열린 적이 있다.


쌍두독수리 문장


제정 러시아에서 사용되던 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말탄 게오르기 승리자가 창을 들고 사악한 용을 찌르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쌍두독수리 모습이다. 

전자는 모스크바의 문장이며 후자는 이반 3세 시절 즉 15세기 말에 비잔틴으로부터 계승받은 문장이다. 

이렇게 두 가지 모습을 한 문장이 17세기부터 러시아를 상징하는 공식문장이 되었는데, 

이때에는 왕관과 홀(笏), 황금구가 추가되었다. 


쌍두독수리 문장


쌍두독수리의 머리 위에 각각 작은 왕관이 있고, 그 두 왕관 위에 하나의 큰 왕관이 설정되었다. 

독수리의 오른쪽 발에는 홀이 쥐어져 있고, 왼쪽 발에는 황금구가 쥐어져 있다. 

홀은 세속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하고, 황금구는 전 세계를 그리스도교화 하겠다는 상징으로 

지구 위에 십자가가 놓여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세 개의 왕관은 통합된 러시아의 국가를 상징한다. 

18세기에는 문장에 색깔이 추가되었는데, 쌍두독수리는 검은색으로, 바탕은 노란색으로 처리되었고, 

게오르기는 빨간색 바탕에 청색으로 칠해 졌다.


소비에트 문장


1917년 공산주의 혁명 이후 쌍두독수리 문장은 사라지고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소련)이

공식적으로 출범하면서 1922년 붉은 바탕 위에 낫과 망치가 놓여 있는 소비에트 문장이 등장하게 되었다. 


쌍두독수리 문장 다시 부활

1991년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제정러시아 시대에 사용되던 쌍두독수리 문장이 다시 부활하게 되


무기박물관


무기박물관


노란색의 병기고 건물 주위에는 나폴레옹과의 전쟁 때 노획했다는

대포들이 건물 주위에 전시되어 있었고 출입문 좌우에는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데 관광객은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관람로를 벗어나면 어디선가 스나이퍼가 쳐다보고 있으니 안내에 따라 달라는 가이드의 농담반 진담반 부탁이 있었습니다.


무기박물관에는 다이아몬드 박물관도 함께 있다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도 있다고 한다.


차르 캐논 (Царь-пушка 황제의 대포)


1586년에 제작된 황제의 대포는 유명한 대포 전문가, 안드레이 초크노프의 작품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대포는 당시 황제였던 페오도르 이바노비치(Feodor Iannovich)의 명으로 제작되었다. 


차르 캐논 (Царь-пушка 황제의 대포)


이 거대한 대포는 길이 5.34m, 구경 890mm, 무게 40톤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대포 중 하나로 꼽힌다. 

1586년 안드레이 초호프(Andrey Chokhov)가 만든, 당시 세계 최대의 대포였지만 아직까지 발사된 적은 없다.   

이 대포 앞에 놓여 있는 3개의 대포 알은 지름이 105cm, 무게가 1톤이나 되는 장식용이다.

1960대 이후로 이바노프스카야 광장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대포를 감싸고 있는 정교한 프리즈와 화려한 장식을 살펴보고 말 위에 올라탄 페오도르 황제도 찾아본다. 

대포 옆에는 가짜 포탄과 화려하게 디자인된 운반대도 놓여 있다.


황제의 종 (Царь–колокол)


황제의 대포에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놓여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으로 

높이 6.14m, 지름 6.6m, 무게 200톤의 이 종에는 금 72kg, 은 525kg이 들어가 있다.


황제의 종 (Царь–колокол)


1733년~1735년에 이반 모토린과 미하일 모토린 부자가 안나 이바노브나 여제를 위해 만든 황제의 종이다.  

대형 종으로서 화재가 있고 난 후 균열이 가서 조각이 떨어져 나가 있다. 

1735년 2년 간의 작업 끝에  본체의 작업이 완료됐는데  1737년 크렘린 궁 화재 당시,  

누군가 급하게 진화하면서 종 위에 찬물을 붓는 바람에 종의 일부가 균열이 생기면서 깨졌는데,   

떨어져 나간 부분만도 무려 11.5톤 이나 된다고 하니 전체 무게는 상상하기 어렵다.   

이 종은 1836년에 깨진 조각과 함께 미완성인 채로 전시되어 아무도 이 종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황제의 종 (Царь–колокол)


바로크 양식의 종 부조 장식을 살펴보면 안나 여제와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황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외관에 종의 역사가 설명된 문구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외 예수, 마리아, 천사와 다양한 종교적 인물 등의 유명인도 묘사되어 있다. 

깨진 부분이 있음에도 이 종은 러시아 궁중 역사의 흔적을 사진에 담고자 하는 방문객들을 계속해서 불러 모으고 있다. 

어쩌면 깨진 조각이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광장 주변에는 1812년 나폴레옹 군대가 퇴각할 때 버리고 간 프랑스식 대포가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소보르나야 광장 (Соборная плошадь)


크렘린 내에서 가장 넓은 광장. 

러시아 제정시대 공식 행사와 매우 화려한 제전이 열렸던 광장이다.

러시아의 가장 화려했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우스펜스키 대성당을 비롯해 12사도 교회, 이반 대제의 종루, 아르항겔리스키 성당, 블라고베시첸스키 성당 등을 볼 수 있다.


모스크바 강과 소보르나야 광장 (Соборная плошадь) 겨울 풍경


소보르나야 광장 (Соборная плошадь)



소보르나야 광장 (Соборная плошадь)


소보르나야 광장 (Соборная плошадь)


크렘린 궁


2층 전면에 보이는 방이 푸틴의 집무실이다.

역대 공산당 서기장들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3층에는 1918~1921년 레닌부부가 거처하던 곳이다.


크렘린 궁의 역사는 1156년 이 언덕 위에 목조로 된 작은 요새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1840년 모스크바가 수도로 정해지면서 1485년 부터 10년간의 공사끝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궁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길이가 2,235m, 높이 5~9m, 두께 3.5~5m이며, 

성벽 위에는 20개의 크고 작은 망루가 설치되어 있으며, 이 중 가장 높은 트로이츠카야 탑은 높이가 80m나 된다.


크렘린 궁


크렘린 궁은 러시아어로 성채를 뜻하며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의 중심을 흐르는 모스크바 강가에 있는 옛 러시아 제국시절의 궁전이다

2.25km의 성벽과 스무개의 성문을 갖추고 있으며  크레믈린 궁 안에는 많은 역사적인 건축물들과 전시물 들이 있다.

역대 황제가 거주했으며, 현재는 외국 귀빈의 회견장으로 사용하는 ‘크레믈린 궁전’과 레닌이 거주했던 원로원, 대통령집무실, 

성모승천 사원이라 불리는 ‘우스펜스키 사원’, 12사도 사원,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탑인 ‘이반대제의 종루’, 

높이 6m에 무게 200톤으로 세계 최대의 종인 ‘황제의 종’과 세계에서 가장 큰 ‘황제의 대포’, 궁전 무기고 등이 있다.


크렘린 궁


차르 대포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로 러시아 제국시절에는 상원이었다. 

이름에서 '국회의사당' 즈음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재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제국 시절의 상원은 오늘날의 국회 상원의 기능을 뛰어넘었던 기관으로, 

입법 · 사법 · 행정을 아우르던 황제 직속의 회의체였다. 현재 대중에게 개방되어있지 않다.


크렘린 궁


12세기 초 처음 토성으로 건립된 것이 시초가 되어 오랫동안 황제의 성이었던 곳이다. 

그 안의 면적은 84,000평으로 우리나라 경복궁 보다 작은 규모이다.   

800년의 역사를 가진 크렘린 궁은 이제 모스크바의 최고 관광명소가 되었는데,  

과거  역대 황제들의 거처로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대통령이 근무하는 곳이다.


크렘린 궁


사원의 광장에 있는데 이 건물을 언뜻 보면 3층 같아 보이나 실제는 2층 건물이다. 

공산당 시절 당 간부들이 모여서 회의를 주로 하던 장소. 

그들이 어디서 회의를 하는지  어떤 내용을 하는지 항상 비밀이었고 그들의 소재 파악에 대해서도 비밀 사항이었다 한다.


크렘린 상원 뒷편으로 보이는 성벽과 차르 탑.


[영상] 소보르나야 광장


[영상] 소보르나야 광장


[영상] 크렘린/Kremlin/Alexander Garden/Troitskaya/Bell Tower




크렘린 조감도 (Bird's Eye View from the southwest)


모스크바의 크렘린은 남쪽의 모스크바 강, 북동쪽의 붉은 광장, 북서쪽의 알렉산드로프스키공원에 둘러싸여 있으며 

전체적으로 거의 삼각형 형태를 띠고 있다. 

길이 125m, 높이는 47m, 전체 면적은 약 26헥타르(25,000 평방미터) 정도 되며, 붉은 성벽에 둘러싸인 건물 안에는 

각 시대 별로 크고 작은 아홉 개의 궁전과 성당, 탑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700개 이상의 방을 갖추고 있다.


크렘린 안에는 14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건축의 발전 단계를 반영하는 건축물들이 가득하다. 

긴 역사를 통해 황제의 성으로 번영해 온 크렘린에는 러시아의 보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다양한 건축물과 수없이 많은 역사의 유적들이 남아 있다.


크레믈린(Kremlin)은 원래 러시아어로 성채 또는 성벽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다.

하지만 대문자로 시작할 때는 모스크바의 크레믈린 궁전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러시아 황제의 거처이자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지였다.


 크렘린은 모스크바의 창건자 유리 돌고루키공(公)이 1156년 무렵 작은 언덕 위에 숲과 목책으로 요새를 구축하였다 한다. 

그러나 1382년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 버렸고, 15세기에 이반 3세가 이탈리아의 건축가들을 불러 

러시아 전국을 둘러보고 러시아의 건축 양식으로 짓게 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크렘린이다.


성곽과 내부 주요 건물들은 백여 년에 걸쳐 복원되었으며, 스무 개의 크고 작은 고딕 양식 탑,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을 대표하는 네 개의 대성당과 성벽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속을 알 수 없거나 비밀이 많은 사람을 크레믈린 같다고 하는데, 정말 요새와도 같은 Secret 궁이다.


1601년 최초의 크렘린 세부 지도


16세기 이반3세 통치 하에 크렘린 (by Apollinary Vasnetsov)


1797년 크렘린에서 Terem 궁전 (by 자코모 콰렝기 Giacomo Quarenghi)


1908년 크렘린궁전 풍경


1917년 크렘린의 도면



크렘린 외벽의 탑들


1. 바라비쯔까야 탑(Боровицкая башня)   

2. 블라고베쉰스까야 탑(Благовещенская башня)

3. 아루줴이나야 탑(Оружейная башня, 무기의 탑)  

4. 까멘단트스까야 탑(Комендантская башня, 감독의 탑)

5. 뜨로이쯔까야 탑(Троицкая башня)   


6. 아르세날이나야 탑(Арсенальная башня, 무기고의 탑)

7. 시나뜨스까야 탑(Сенатская башня, 의회의 탑)  

8. 니꼴스까야 탑(Никольская башня)

9. 우글로바야 아르세날이나야 탑(Угловая Арсенальная башня) 

10. 스빠스까야 탑(Спасская башня, 구원의 탑)


11. 짜르스까야 탑(Царская башня, 황제의 탑)  

12. 나바뜨나야 탑(Набатная башня, 경계탑) 

13. 꼰스딴찌노-엘레닌스까야 탑(Константино-Еленинская башня)

14. 베끌리미쉡스까야 탑(Беклемишевская башня)  

15. 삐뜨롭스까야 탑(Петровская башня)


16. 2번째 무명탑(Вторая Безымянная башня)  

17. 첫번째 무명탑(Первая Безымянная башня, 1670~80년)

18. 따이나야 탑(Тайницкая башня, 비밀의 탑) 

19. 바다브즈보드나야 탑(Водовзводная башня, 1488년)



끄레믈(Кремль, 크레믈린, 크렘린)은 '성벽'이라는 의미의 러시아어이자 러시아의 심장부를 뜻하는 고유명사화 된 명칭이다. 

러시아인에게 있어서 끄레믈은 러시아의 심장부이자 역사를 대표하는 곳이나 다름 없다. 

지금 남아 있는 ‘끄레믈’은 1812년 나폴레옹 점거 때 소실된 이후 재건축 한 것이다.

여러 궁전, 사원, 최고회의 건물, 병기고, 무기고, 대포의 황제, 종의 황제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다. 









크렘린과 알렉산드롭스키 정원의 꽃들을 본다.  

오른쪽에 솟은 크렘린 성벽 탑은 트로이츠카야 타워



계속 이어져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야 크렘린 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첨탑 꼭대기 커다란 루비색 붉은 별이 올려져 있는 트로이츠카야(삼위일체)탑 아래에 입구가 있다.


5~19m 높이로 모두 2235m에 걸쳐 뻗어 있고 폭도 3.5~6.5m에 이른다.  

성채 또는 성벽을 가리키는 러시아어 '크렘린'이 모스크바 왕궁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된 것도 무리가 아닐 만큼 

위세당당 하고 아름다운 성이다.


트로이츠카야탑  (삼위일체탑, Troitskaya Троицкая башня)


트로이츠카야탑 - 삼위일체탑은  공중에서 보면 삼각형의 모양으로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1495-1499년 사이 만들어진 탑문이다.

이 문은 나폴레옹 황제와 러시아 군이 전투를 했을때 나폴레옹이 패전을 하고 나간 곳으로 

16-17세기에는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

지름 3.75m와 1500kg의 금도금으로 만들어진 별은 겨울 눈보라에도 이겨낼 수있도록 단단하게 만들어졌다.


크레믈린 궁 출입구 광장에서 본 쿠타피아탑과 트로이츠카야 (삼위일체)탑


크렘린은 보통 북쪽에 있는 쿠타피아(Kutafya) 문을 통해 들어간다.

크렘린은 모스크바의 구도심이다. 

11세기 이곳 모스크바 강 유역에 슬라빈스키라는 이름의 마을이 형성되었고, 

1147년 사서에 현재의 크렘린 지역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온다. 

1156년에는 모스크바 강물을 끌어 들여 해자를 만들고 그 주변에 토성을 쌓는 등 도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크래물린 궁으로 들어가려면 통과해야 할 쿠타피아 문으로  요새형 탑문이다.

쿠타파탑 아래 둥근 대문 밑의 검색대를 통과해서 크렘린궁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이 길게 서 있다.

1516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안리오시오 카르카노라는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건물이다.


검색대가 있는 쿠타파탑의 측면 모습


검색대 통과 절차를 거쳐 이곳에서 가장 높은 탑 트로이츠카야탑을 통과해야 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입구를 통과하면 러시아에서 가장 높은 망루인 삼위일체 망루를 지나 크레믈린 궁으로 들어갈 수 있다.


크렘린 입구 쿠타피아 타워 (Kutafya Tower)


크레물린 궁으로 들어가려면 통과해야 할 쿠타피아 문으로 크렘린의 다리를 방어하기 위해 지어진 탑문이다.

1516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안리오시오 카르카노(Aliosio de Carcano)에 의해 지어진 건물이다

높이 13.5m 약간 웅크린듯한 모습으로 현재 남아 있는 크렘린 다리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유일한 탑이다. 

적의 침입이 있을 때 탑문은 굳게 닫히며 막강한 공격을 보인다.


크렘린 쿠타피아타워 입구



성벽의 북쪽문인 트로이츠카야탑  [삼위일체탑, Troitskaya Троицкая башня]


1495~1499년에 건립된 트로이츠카야탑은 황제와 군대가 싸움을 끝내고 귀환하던 입구로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공격해 크렘린에 입성하여 대화재로 퇴각할 때 나가던 문이다.  

‘뜨로이쯔끼 모스트’ 라고 불리는 다리는 크렘린으로 입장할 때와 나갈 때 건너게 되는 출입구라고 할 수 있다.


크레믈린으로 입장하는 아치문으로 삼위일체탑이라고도 불리는데

크레믈린 궁전에서 내려다 볼 때 삼각형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이곳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통로로 사용되고 있지만, 짜르시대에는 전쟁에서 돌아온 군대가 입성하였고,

또한 이 문으로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의 군대도 입성하였다.


트로이츠카야탑과 쿠타피아 타워 모형


표를 내고 출입구를 들어가면 크레믈린 성벽에 만들어진 20개의 문 중 북쪽문인 

트로이츠카야(삼위일체,Trinity)탑을 만나게 된다. 

이 탑 앞으로 큰 길이 나 있으며, 길 오른쪽이 크레믈린 궁과 성당, 사원 지역이고 

왼쪽이 무기고 (현재: 무기 박물관)와 대통령궁 지역이다. 


왼쪽 대통령 궁에는 푸틴 대통령이 집무하고 있어 접근할 수 없으며, 

오른쪽 성당과 사원 지역만 둘러볼 수 있다.


크렘린 서쪽 성벽 중앙에 선 트로이츠카야 타워는 스무 개 성벽 탑 가운데 가장 높아 80m에 이른다.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초빙해 온 건축가 알로이시오 다 밀라노가 설계했다.   

여러 차례 이름을 바꿔 오다가 1658년 크렘린 안에 있는 성삼위 수도원 이름을 따 트로이츠키야(트리니티)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첨탑 위에 소비에트의 상징인 왕별 '루비 스타'가 올라서 있다. 

17세기에는 이 탑의 지하실이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탑 아래 난 문은 방문자, 관광객들이 입장권을 사고 해자 다리를 건너 

크렘린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구실을 하고 있다.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검색대를 통과해서 크렘린으로 드는 육교에 이르면

아치로 되어 문의 양쪽으로는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는 병사가 서 있다.


트로이츠카야(삼위일체)탑 출입구


탑의 높이는 80m로 크레믈린을 둘러싸고 있는 2235m의 성벽 사이사이에 있는 20여 개의 탑 중에서 가장 높다.

삼위일체탑은 공중에서 보면  삼각형의 모양으로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1495-1499년 사이 만들어진 탑문이다. 

이 문은 나폴레옹 황제와 러시아 군이 전투를 했을 때 나폴레옹이 패전을 하고 나간 문으로

 6-17세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지름 3.75미터와 1500kg의 금도금으로 만들어진 별은 겨울 눈보라에도 이겨낼 수 있도록 단단하게 만들어졌다.

현재 이곳은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모스크바의 대형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는 별로 장식되어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붉은 에메랄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별의 크기는 지름 3.75m, 무게가 1톤으로 루비색에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금 도금을 해 놓았다.


공산주의의 또 다른 상징처럼 떠오르는 별,  민중을 이끄는 빛나는 별이  되고 싶다는 뜻인지 붉은 에메랄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1495년부터 만들기 시작해 1499년에 완공했다니 제법 오래된 유적과도 같은 타워이다.

이 타워는 반대편이 동쪽의 붉은 광장으로 드나드는 스파카냐 바쉬냐(Spasskaya Bashnya)와 쌍벽을 이룬다.


[영상] 크렘린궁전 입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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