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m of Edgar Degas.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02

 

4층의 첫 번째 402번 홀에는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에드가 드가는 프랑스 파리, 부유한 은행가 집안의 장남으로 
처음에는 가업을 계승하기 위하여 법률을 배웠으나, 화가를 지망하여 1855년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앵그르의 제자로 1856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르네상스 작품에 심취하였다. 
이 무렵부터 거의 10년간은 화가로서의 본격적인 수업기로 오로지 고전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1865년 살롱에 <오를레앙시(市)의 불행>을 출품하였다. 
그 후 자연주의 문학이나 E.마네의 작품에 이끌려, 근대생활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을 제작했는데,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인상파전에 7회나 출품 · 협력하였으나 그 후로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After the Bath, 1895. by Edgar Degas. pastel, gouache, tempera and charcoal on brown paper. 
81.9 x 71.6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02.

 

드가는 풍경화에는 거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사진이나 우아한 일본 판화 등 당시 파리에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새로운 표현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드가는 파리의 근대적인 생활에서 주제를 찾게 되자 더욱 재능을 발휘하여 
정확한 소묘 능력 위에 신선하고 화려한 색채감이 넘치는 근대적 감각을 표현하였다.
인물 동작을 잡아 순간적인 포즈를 교묘하게 묘사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부분적으로 부각시키는 수법을 강조해 왔다. 

드가는 경마나 무희, 욕탕에 들어가거나 나오려는 여성의 한 순간의 동작을 즐겨 그렸다. 
이러한 그의 눈과 기량은 파스텔이나 판화에도 많은 수작을 남겼을 뿐 아니라, 
만년에 시력이 극도로 떨어진 뒤에 손댄 조각에까지 더없는 걸작을 만들어냈다. 
선천적으로 자의식(自意識)이 강한 성격 때문에 독신으로 보냈고, 
그의 인간 혐오증은 늙어갈수록 더하여 고독한 가운데 파리에서 생애를 마쳤다.

 

Woman combing her hair, 1885. by Edgar Degas. pastel on paper. 
54 x 52.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02.

 

1880년대에 에드가 드가는 목욕하는 여자 연작에 몰두했다. 
특이한 시각을 채택하는 드가의 능력은 기수나 

발레리나를 다룰 때보다 목욕하는 여인 연작에서 한층 향상되었다. 
그는 마치 열쇠구멍을 통해 몰래 바라보는 듯한 각도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의 일상적인 동작을 캔버스에 담았다. 
드가는 이상화되거나 규범에 의해 강요된 전통적인 누드 자세를 거부했다.

 

Toilet (Woman drying herself after bath), 1884. by Edgar Degas. pastel on brown paper. 
50 x 50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02.

 

드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당시 사람들이 선호하는 신화적인 주제에 
등장하는 누드와는 매우 다른, 평범하게 남을 의식하지 않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1886년 목욕하는 여인 연작이 공개되었을 때는 당시 유명한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였던 조지 무어 같은 친구들조차 드가가 관음증이 있다고 비난했다.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고 신체만 보이는 낮은 각도에서 그려진 
드가의 누드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음란하고 노골적으로 비추어졌던 것이다.

 

Behind the toilet, 1899. by Edgar Degas. pastel, charcoal on tinted paper.
54.5 x 58.4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02.

 

드가에게 여성의 인체는 평생에 걸친 관심의 대상이었다. 
특히 그는 긴 머리카락에 페티시적인 집착을 보여서 

많은 작품에 긴 머리를 빗는 여성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마티스가 오랜 기간 소장하고 있었던 <붉은 방>과 같은 작품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 <머리빗기>는 이 머리카락이 

추상적인 느낌까지 주는 감각적인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드가가 비범한 시점과 구도로 화면에 구축한 아름다움은 
산문적인 리얼리티에서 드가가 끌어낼 수 있는 시적인 요소였다. 
이 작품과 같은 그의 1890년대 이후의 회화는, 
그 선과 색채가 사실주의적이라기보다는 표현주의적인 특징을 보인다. 
이런 회화는 특히 고갱이나 르동 등 후배 세대 화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Seated dancer straightening shoe ribbons, 1875~1876. by Edgar Degas. charcoal and chalk on paper. 
47.3 x 30.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Room 402.

 

1871년 즈음부터 드가는 오페라 극장을 자주 찾아다니면서 

무용 연습에 열중하고 있거나 휴식을 취하는, 또는 무대공연에 열중인 

발레리나들의 다양한 포즈를 그리기 시작한다. 
대개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색채에 관한 연구를 거듭함에 비해, 
드가는 현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활동에 관심을 두었다.

드가는 제 1회 인상파 전시회를 제외한 모든 전시회에 참여하였지만, 
인상주의 작가들과 몇 가지 차이점을 갖는다. 
광선에 대한 관심과 우연한 순간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제외하면, 
드가는 인상주의보다는 사실주의에 더 가까운 화가였다.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면서 그가 가진 주제는 당시 사회의 여러 가지 모습에 대한 것이었고, 
그런 점에서 마네의 뒤를 잇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다시 투루즈 로트렉에 의해 계승된다

 

Dancers heads, second half of the 1890s. by Edgar Degas. pastel, charcoal on light gray paper. 
30.6 x 5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Room 402.

 

Two Dancers, 0898~1899. by Edgar Degas. pastel on paper. 47.8 x 36.2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02.

1890년대 후반에 드가는 무대에 올라 가기 바로 전에 무용수의 이미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보통 이 순간에 그들은 뭔가 치장을 하고 있다. 
스트랩, 귀걸이, 헤어 스타일 – 아티스트가 “개막 전” 흥분을 정확하게 기록한 제스처. 
무대 뒤에서의 삶은 날개 속의 가벼운 에피소드가 이미 드가를 현장의 광채보다 더 끌어들였다.
이 그림은 머리카락을 교정하는 발레리나인 “Two Dancers”와 정확히 같은 각도이다. 

 

Seated Dancer (Danseuse assise), 1879~1880. by Edgar Degas. 
Charcoal and pastel on paper mounted on pasteboard. 63.5 x 48.7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02.

 

Girls (women), 1907. by Georges Rouault. tempera, sometimes pastel on paper. 
Charcoal and pastel on paper mounted on pasteboard. 97 x 6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02.

조르주 루오(Georges-Henri Rouault, 1871∼1958)는 프랑스의 화가, 판화가이다.
루오는 14세 때에 글라스 그림을 그리는 공방(工房)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중세 스테인드글라스의 복원 수법을 배웠으나 화가를 지망하여 
4년 후에 미술학교에 입학, 포브의 스승인 모로의 지원을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로의 화풍을 따랐으나, 스스로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해 나갔다.

그는 검고 굵은 선을 즐겨 썼는데, 그것이 색채와 어울려서 종교적인 깊이를 느끼게 한다. 
그의 그림 소재는 거의 모두가 법관 · 창녀 · 어릿광대 · 기독교인 등의 
인물과 도시의 뒷골목 풍경으로 한정되어 있다. 

 

Spring. Turnover: Sketch of a vase, 1911. by Georges Rouault. oil on canvas. 
72 x 57.4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02.

 

봄 풍경은 조르주 루오의 작품에서 극히 드믄 주제이다. 
고딕 성당의 장미를 연상시키는 구성의 모양, 테두리를 장식하는 무늬가 있는 테두리, 
풍경 형태를 나타내는 강렬한 선과 줄무늬, 사람의 모습, 공간 계획 등은 
모두 루오의 작업 결과로 장식적인 취미를 증명한다. 


스테인드 글라스와 도자기 분야, 풍경 형태의 어두운 혼합 사이에  

밝은 수채화 레이어는 어느 정도 조명을 통해서 기능을 한다. 
그러나 루오는 스테인드 글라스 페인팅을 모방하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생생한 인식은 일종의 회화적 측면인 

장식적인 원리에 기반한 것으로 보이는 작품을 제공한다.

 

Hall of French painting of the second half of the 19th century. (Daumier, Manet, Degas)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04.

바로 옆 404 홀에도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작품 콩코드 광장(Concorde Squar)이 전시되어 있다.

 

Hall of French painting of the second half of the 19th century. (Daumier, Manet, Degas)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04.

 

Concorde Square, 1875. by Edgar Degas. oil on canvas. 78.4 x 117.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04.

콩코드 광장 (레픽 자작과 그의 딸들)
에드가 드가는 고전 대가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르네상스 걸작의 프레임 안에는 

'세계와 영원'이 들어있는 것 같은데, 근대의 작품은 

'작은 구석, 한 순간, 파편'을 그릴 수 있을 뿐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근대 도시에서 이와 같은 상황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고, 

드가는 근대의 속도를 따르는 도시인의 눈이 훑고 지나가는 순간 

그 눈에 들어오는 대상의 파편을 적극적으로 그림에 담았다. 
조금만 있으면 그림의 프레임 밖으로 나가버릴 것 같은 레픽은 

그런 행인의 눈에 들어온 대상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런 눈으로 다른 대상을 보는 산책자(Flaneur)이기도 하다. 
책임감이나 소속감은 없으나 열정적인 구경꾼인 산책자는 드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Nosha (Laundress), 1850~1853. by Honore Daumier. oil on canvas. 
131 x 98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04.

 

오노레 도미에 (Honoré-Victorin Daumier 1808~1879)는 프랑스의 화가, 조각가 및 판화가였다.
1830년부터 1870년 제 2 나폴레옹 제국의 멸망까지 그는 

평생 동안 생계를 유지하며 정치인의 캐리커처와 만화를 제작하고 

신문과 정기 간행물에서 동포의 행동을 풍자하며 평생동안 유명해졌다.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알려져 있다. 
그는 부르주아지, 교회, 변호사, 사법부, 정치인, 군주제를 공격한 공화당 민주당원이었다. 
그는 가잔추어(Gargantua)가 출판된 후 1832년에 몇 달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도미에는 때때로 파리 살롱에서 그림을 전시했지만 그의 작품은 
프랑스 대중과 대부분의 비평가들에 의해 대부분 간과되고 무시되었다. 
그러나 시인이자 예술 평론가인 찰스 버들레어(Charles Baudelaire)와

도미에의 동료 화가는 젊은 세대의 인상파 및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칠 그의 그림을 주목하고 크게 존경했다. 
이후 세대는 도미에를 19 세기의 위대한 프랑스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도미에는 지칠 줄 모르는 다작의 예술가였으며 100개 이상의 조각, 500개의 그림, 
1000개의 그림, 1000개의 나무 조각, 4000개의 석판화를 제작했다. 

 

[영상] Edgar Degas in The State Hermitage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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