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예프스키(Vasilevsky) 섬과 비르제바야 광장(Birzhevaya Platz) 구글 지도

네바 강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북동쪽에 있는 러시아 두 번째 호수 라도가 호에서 
서쪽으로 740km를 흘러와 핀란드만으로 들어간다.

 

바실리예프스키(Vasilyevsky) 섬과 궁전다리(Dvortsovyy Most) 상공에서 보기

 

네바 강은 오랜 세월동안 ​오랜 세월 만 연안에 섬 100여 개와 늪지로 이뤄진 
삼각주를 만들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 기반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이 도시가 건설되기 전 이곳에 처음 러시아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습지대였기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은 곳이었다고 한다. 


옛 노브고르드공국을 거쳐 15세기 모스코바공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정작 18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표트르대제가 스웨덴의 북방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교통 및 군사적 요충지라고 판단, 이곳에 새로운 도시건설의 계획을 세우게 된다. 
1703년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건설을 시작으로 상트페트르부르크가 탄생되었다. 


하지만 잦은 홍수로 인한 범람과 습지대인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돌이 필요했으며 이를 충당하기 위해 
돌로 세금을 부과하는 법령을 만들어 도시의 초석을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고된 노역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결과 10년 만에 습지였던 이곳에 가적같이 수많은 건물들이 들어서게 됐으며 
급기야 표트르 대제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기게 된다.

 

바실리예프스키(Vasilyevsky) 섬과 로스트랄(Lighthouse) 등대 상공에서 보기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수많은 섬과 운하들이 300여 개의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북쪽의 베네치아’로 불리기도 하며 러시아에서 가장 유럽다운 도시로 
러시아와 유럽의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표트르 대제가 이 도시를 건설할 당시 이 바실리 섬을 
암스테르담과 같은 도시 중심지로 건설할 계획을 가졌으나 
강의 범람과 늪지대라는 지리적 취약점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동서남북으로 잘 구획된 도로망이 인상적이며 

아직도 18세기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이 많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을 비롯해 
과학 아카데미산하 박물관, 상품거래소 등이 자리하면서 

학술 및 예술의 중심지로 변화되었다. 
현재는 2개의 메트로역이 있으며 핀란드만을 통해 

헬싱키를 비롯 발틱 3국 등으로 출발하는 항구가 있다.

 

네바 강변 예르미타주 박물관과 궁전다리

제정 러시아 당시의 오랜 수도이기도 한 이곳은 러시아 역사의 중심지이자 짜르의 도시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과 도스토예프스키, 푸시킨, 차이코프스키 등 
세계 문학예술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문화예술의 상징적 도시이기도 하다.

 

네바 강 궁전다리(Dvortsovyy Most)와 로스트랄(Rostral Colums) 등대

 

궁전다리를 지나면 바실리 섬으로 오른쪽에 로스트랄 등대가 보이고

왼쪽의 건물은 동물학 박물관이 보인다.
등대 있는 곳이 비르제바야 광장(Birzhevaya Platz)으로 시민들의 휴식처이고 
강 건너편으로 에르미타주박물관과 페트로피블롭스크 요새가 보이는 삼각점에 있어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관광객들이 한번 거쳐가는 곳이다.

 

겨울궁전 상공에서 본 네바 강과 열려 있는 궁전다리

네바강변 겨울궁전 옆에 위치한 궁전다리(Dvortsovyy Most)는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장 큰 섬인 바실리섬과 연결된다. 
이 섬은 동서 6.6km, 남북 4.2km에 달하며 4개의 크고 작은 다리를 통해 
넵스키대로가 있는 중심지역과 뻬뜨로그라드 지역으로 연결되어 있다. 

 

겨울궁전 가든 옆 도로에서 본 열려 있는 궁전다리

 

차르 목수 (Tsar Carpenter) 동상

현재 해군성 제방에 세워진 표트르 대제 "Tsar Carpenter"에 대한 인상적인 기념비는 
특히 매혹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매우 세밀하게 제작된 기념비는 한 손에 말아 올린 소매와 도끼로 
배를 만드는 힘든 작업을 겪고 있는 젊고 단호한 표트르 대왕을 묘사한다. 
300년 전 젊은 표트르 대왕이 러시아 해군 건설을 돕기 위해 
네덜란드 잔담시에서 러시아로 가져갈 선박 건조 기술을 배웠다.

 

차르 목수 (Tsar Carpenter) 동상

1909년, 마지막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는 폴타바에서

러시아 해군의 대승리 200주년을 기념하여 
조각가 레오폴드 번시탐이 완성한 기념비를 상트 페테르부르크시에 선물했다. 
이 기념비의 제목은 "잔담시에서 선박 건조 기술을 배우는 표트르 대제"였다. 
그리고 이듬 해에는 표트르 대제를 기념하는 청동 기념비 사본이 잔담시에도 선물되었다. 

그러나 운명처럼 "차르 카펜터"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표트르 대제의 기념비는 
표트르 대제도 장인으로 일했던 해군성 제방의 네바 강 유역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1918년 볼셰비키는 집권 직후 기념물을 비극적으로 파괴했다.

 

차르 목수 (Tsar Carpenter) 동상

하지만 원래 "차르 카펜터" 기념비의 청동 사본은 네덜란드 잔담시에 남아 있었다. 
1996년 9월 7일, 네덜란드 정부는 러시아 해군 창설 300 주년과 네덜란드에 있는 
표트르 대제 체류 기념 3세기를 기념하여 이 청동 사본을 상트페테르부르크시에 전달했다. 
이 기념비는 왕실 프리깃에 의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 왔고 
헬리콥터를 통해 프리깃에서 해군성 제방의 받침대에 있는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네바 강과 궁전다리(Dvortsovyy Most)

 

라이온스(Lions of the Palace Pier)

 

라이온스(Lions of the Palace Pier)

 

로스트랄(Rostral Colums) 등대 방향으로 궁전다리(Dvortsovyy Most)

 

구 해군성 방향으로 궁전다리(Dvortsovyy Most)

 

열리고 닫히는 궁전다리(Dvortsovyy Most)

 

겨울궁전 방향으로 궁전다리(Dvortsovyy Most)

 

바실리예프스키 섬 로스트랄(Lighthouse) 등대 조감도

겨울궁전에서 궁전다리를 건너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제일 큰 바실리예프스키 섬(Vasilevsky Island)이 나온다. 
섬 입구 네바 강이 두 갈래로 나뉘어져 핀란드 만으로 흐르는 곳에 
붉은 기둥의 등대 2개가 나란히 서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동물학 박물관과 해군중앙박물관이 마주보고 서 있다. 
수많은 다리와 운하로 연결된 페테르부르크여서 

이곳이 섬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표트르 대제는 암스테르담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면서 바실리예프스키 섬이 

페테르부르크의 중심이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늪지대인 바실리예프스키 섬에 운하망과 

도로망을 만들 때 현재와 같은 직각 구조로 계획하였다. 
즉 동서로 세 개의 대로를 만들고 남북으로 길을 만들어 

서로가 교체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러나 네바강의 범람으로 인하여 표트르의 계획은 부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실리예프스키 섬에는 공공 건물들과 많은 주택들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는 18세기 당시 분위기를 나타내주는 곳도 많이 있다.

이 등대는 19세기초 건축가 프랑스 건축가 토만(Thomas de Thomon)이 세웠으며, 
당시는 이곳이 상업의 중심지였고, 해군 박물관은 당시 

상공회의소로 쓰여진 건물이기도 하다. 
또한 한 겨울엔 이곳이 말썰매 경주장이기도 하였다.

 

바실리예프스키 섬 로스트랄(Lighthouse) 등대

로스트랄 등대 (Rostral Colums)는 양쪽으로 2개인데 
1810년에 세워졌으며, 빨간색으로 칠해진 기둥에는 여러 개의 뱃머리 장식이 붙어 있다. 
이러한 모양의 건축물은 해전의 승리와 자국 해군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로스트랄 기둥은 독립형 구조로 실제로 기둥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옅은 부조와 그림으로 장식되지 않고 배의 뱃머리를 묘사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각 기둥의 높이는 32m이고 가스 버너의 화염 높이는 7m다.
남쪽 및 북쪽 열, 총 두 개의 열이 있는데 남쪽 방향은 큰 네바(Bolshaya Neva) 방향이고 
북쪽 방향은 작은 네바(Malaya Neva) 방향이다.

 

8 개의 선로 장식된 등대 기둥

각 기둥의 몸통에는 8개의 뱃부리(rostras)로 장식되어 있다. 
뱃부리는 4줄 대칭으로 배열되고 가장 큰 뱃부리(rostras)는 기둥의 하단에 있다. 
배의 활은 위치에 따라 네바 강이나 증권거래소 건물을 향한다.

 

로스트랄(Lighthouse) 등대 여성 조각

각 기둥의 하단은 남자와 여자의 두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각각 상업과 바다의 신을 의인화 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바실리예프스키 섬의 

역사를 상징하는 남편과 아내라고 믿는다. 

 

로스트랄(Lighthouse) 등대 남성 조각

또다른 사람들은 볼가(Volga) 강, 네바(Neva) 강, 드네프르(Dnieper) 강 및 
볼 호프(Volkhv) 강과 같은 러시아 강을 상징한다고 이 인물을 의인화한다.
조각품의 재료로는 야외에서 빠르게 굳어지는 석회암을 사용했다. 

 

로스트랄(Lighthouse) 등대 날개 달린 인어상

뱃머리를 장식한 조각상이 특이하다.
상반신은 벗은 상태고 하반신은 용의 모습이다.
이런 형태의 기둥은 고대의 관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해전에서 승리하면 원주를 세우고 포획한 배의 뱃머리를 잘라 기둥을 장식하였는데 
러시아도 이를 본따서 해전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유럽을 오가는 선박들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 사이렌의 꾐을 피하려고 
비슷한 인어 모양 사이렌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등대 꼭대기에는 기름 접시가 있어 축제나 기념일에 불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이것은 등대라기보다는 기념비라고 보아야 될 듯하다.

 

로스트랄 등대

등대에 달려 있는 장식물은 뱃머리로 로스트랄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 역시 뱃머리이다. 
기둥의 대에는 러시아의 4대 강인 볼호프, 네바, 드네프르, 볼가 강을 상징하는 조각품들이 있다. 
이 아름다운 등대는 프랑스의 건축가 장 프랑소와 데도몬에 의해 설계되었다.

 

광장 반대편에도 같은 모양의 등대가 하나 더 있다.

 

등대는 지금도 국경일이나 도시의 경축일 전야와 축제 때 불을 밝힌다. 

일부 학자들은 로스트랄 기둥이 바다가 아닌 강둑에 서 있기 때문에 
등대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
바실리예프스키 섬)의 로스트랄 기둥은 
1995년 50,000 루블, 1997년 50 루블 지폐에 묘사되어 있다.

 

구 상트페테르부르크 증권거래소 항공 사진

구 상트페테르부르크 증권거래소와 로스트랄 등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해 있는 그리스 부흥 건축의 중요한 예시이다. 
프랑스의 건축가 돔 두 토몬(Thomas de Thomon)에 의해 설계된 증권거래소는 
1805년부터 1810년 사이 건조되었다. 
로스트랄 등대는 바실리에프스키 섬의 구 증권거래소 광장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 32m의 원기둥이다. 
로스트랄은 뱃머리를 의미하며, 기둥의 대에는 소련의 4대강인 
볼호프, 네바, 드네프로, 볼가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있다. 
1810년에 돔 두 토몬의 설계로 당시의 상품거래소와 함께 만들어졌다.

두 등대 사이 중앙으로 보이는 건물은 예전에 상품거래소 건물로 
도리스식 건축양식으로 그리스 신전을 많이 닮았다. 
이 건물도 이 건물 또하 프랑스의 건축가 장 프랑수아 또마드 또몽의 작품으로 
현재의 50루불 지폐에도 나와 있는 역사적 건물이다. 현재는 인류학박물관이다.

구 상품거래소 (해군 박물관)

바실리예프스키 섬은 페테르부르크의 대표적인 항구가 위치하고 있었던 지역이므로 
19세기 초에는 화려한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구 상품거래소는 도리스식 주랑(柱廊)을 가진 건물로 ‘러시아의 파르테논‘이라 불리기도 한다.
현재는 해군박물관으로 사용되며 내부에는 해군 관련 전시품들이 있다.

 

광장 중앙 쯤에 동판으로 부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 보인다.
이곳의 등대와 건물들 그리고 강가의 선착장까지 자세히 표시해 놓았다.

 

동판 부조

 

로스트랄 등대가 네바 강을 끼고 있는 탓에 네바 강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잔디와 모래가 없어서인지 해수욕과 태양욕을 즐기는 분들은 없다. ㅎ

 

결혼식을 올린 신랑신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곳은 겨울궁전, 성 이삭성당, 페트로파블로프스키 요새 등을 네바 강과 함께 
사진 배경으로 하기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워 관광객들 뿐 아니라 결혼식을 마친 
신랑 신부가 친구들과 함께 와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행복한 앞날을 기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미 100년이 넘은 예수의 다리 등 네바 강의 12개 다리들은 
조각품들이 각기 다르고, 얼음이 녹는 초여름부터 새벽에 양쪽으로 들리며 
배들이 발달된 운하를 통해 모스크바까지 다다른다. 
새벽에 부지런하면 교량 관리자와 이야기를 하고, 직접 가운데까지 내려가서 
이 광경을 만끽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오른쪽으로 네바 강 건너 일렬로 늘어선 에르미타주 박물관 풍경이 환상적이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보이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이다.​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 해군의 침공을 막기 위해 네바 강변의 하중도에 처음 건설했다. 
강국 러시아가 왜 스웨덴 해군을 경계했는지 의문일 수도 있는데 

당시 스웨덴은 유럽이 종교개혁과 30년 전쟁으로 내흥을 겪는 동안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이룩해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해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원래 중심지였던 키에프 지방이 몽골에 의해 쑥대밭이 된 이후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국가를 개편한지 오래되지 않은 시절이었고 
인접국 스웨덴으로부터 큰 위협을 받고 있었다. 
표트르 대제가 오기 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늪지대였는데, 
이 도시가 거의 처음 기반을 닦은 곳이 이 요새 근처다.

지금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관광지 중 하나. 
가운데의 뾰족한 건물은 성당으로, 러시아 제국이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천도한 이후의 차르와 황후들의 관이 있다. 
표트르 대제부터 알렉산드르 3세까지는 사후 안장되었고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 혁명 이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처형된 후 
암매장되었다가 소련 붕괴 이후 시신을 수습해 1998년 여기에 가족과 함께 안장되었다. 
그 외에도 제정 시대 여러 위인들이 한때 수감되었던 옛 감옥 등 
여러 구역이 다른 테마로 관리되고 있다. 
성벽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위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를 내려다 볼 수도 있다.

성당은 표트르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할 때 가장 먼저 착공된 곳으로, 
1712년부터 1733년까지 약 21년에 걸쳐 세워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주교좌가 있었으나 1859년 성 이사악 대성당으로 

이전되었으며 현재는 카잔 대성당에 있다.

국립 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상공에서 본 풍경

국립 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St. Petersburg State University)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1724년 1월 28일에 표트르대제가 세운 대학이었다. 
이 대학은 페테르부르크 대학교, 페트로그라드 대학교, 

레닌그라드 대학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국립 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상공에서 본 풍경

러시아에서 국립모스크바 대학교와 함께 일류학교로 쌍벽을 이룬다.

 

네바 강에서 본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캠퍼스 전경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교정에 세워진 박경리 선생 조각상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 2018년 6월 20일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동상이 세워졌다. 
대학 본관 뒤 동양학부 건물 옆 현대 조각공원에 세워진 
전신 높이 135cm의 작은 동상 앞면에는 선생의 시 ‘삶’의 마지막 구절인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가 새겨졌다. 


2013년 11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앞 ‘푸슈킨 플라자’에 

러시아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쉬킨(1799~837)의 동상이 세워진 것에 대한 

답례이자 한러 우호를 높이는 문화 교류의 하나로 추진됐다.

국내 작가의 동상이 해외에 세워지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더욱이 지난해 상반기 상트페테르부르크대 한국학과에 

선생의 이름이 들어간 강좌가 개설되었다.

박경리 선생의 동상은 2015년 고향 통영과 
‘토지’의 최참판댁이 복원된 경남 하동에 세워진데 이어 
원주 단구동 박경리 문학공원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대를 합쳐 모두 4개다. 
모두 서울대 조소과 권대훈 교수가 제작했다.

 

푸시킨의 집 박물관


바실리예프스키(Vasilevsky) 섬에 있는 푸시킨의 집 박물관 
(Literary Museum of the Institute of Russian Literature) 외관 보기

 

[영상] 바실리예프스키 섬 비르제바야 광장(Birzhevaya Platz)

 

표트르 1세의 오두막집 구글 지도

트리니티 브리지(Troitskiy Bridge)를 건너서 오른 쪽 네바 강변에 표트르 대제의 오두막 집이 있다. 

 

표트르 대제의 여름 궁전과 표트르 대제 오두막 집

여름 정원(Summer Garden) 내 표트르 대제 여름궁전에서 볼 때
네바 강 바로 건너 편 마주보는 곳에 표트르 대제의 오두막 집이 위치해 있다.

 

표트르 대제 오두막집 앞 표트르 대제 기념비

 

표트르 대제 기념비

 

표트르 대제 오두막집 박물관

 

표트르 대제 오두막집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그 최초의 건축물인 표트르 대제의 오두막집

 

표트르 대제가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건축을 감독하기 위해 1703년 5월 말경 
며칠 동안에 만들게 했다는 송판로 지은 오두막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표트르 대제가 만들었다는 보트도 전시되어 있다.

 

표트르 대제의 오두막집

표트르 대제의 통나무 오두막 집이다.
벽돌 건물은 이 오두막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용 건물이다.

표트르 대제가 요새 건설과 궁전 건설이 끝날 때까지 무려 8년 동안 살았던 오두막집이다.


1918년부터 국가 관리에 들어갔다. 
박물관에는 북방 전쟁(1700-1721) 승리에 관련된 자료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18세기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고 있으며 당시에 황제가 쓰던 생활용품과 침실 등을 볼 수 있다.

 

표트르 대제의 오두막집 내부

 

표트르 대제의 오두막집 내부

 

표트르 대제의 오두막집 내부

 

표토르 대제가 만들었다는 배
아마도 요새가 섬에 있다보니 섬에 드나들기 위해서 사용했던 배였던거 같다.

 

표트르 대제의 조각상과 배

 

러시아 순양함 오로라(Aurora)

​표트르 대제의 오두막 부근에 러시아 순양함 한 척이 영구 정박해 있다. 
순양함 오로라는 극동에서 러시아 해상 전력의 확장 프로그램 하에 
1897년에 시작하여 1903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새 해군본부에서 건조되었다.

1903년 11월 8일, 오로라 함은 파견함대와 함께 크론슈타트, 포클랜드, 알제리, 
스페시아, 비제르타, 페라에우스, 수에즈, 지부티 등을 거쳐 극동으로 배치되었다. 
하지만 그 파견함대는 1904년 2월 8일에 러일전쟁이 시작된 덕에 발트 함대에 배치되었다.

오로라 함은 러일전쟁 기간 동안 참전하였다. 
1905년 5월 27일에서 28일까지 벌어진 쓰시마 해전에서 완패하고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으로 퇴각하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1906년 2월 오로라는 리바우 항으로 돌아갔다.

 

볼세비키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순양함 오로라(Aurora)

7000톤급 일반 순양함에 불과했었던 이 함정은 1917년 10월 1일 오전 9시 40분에 
함포 한방을 쏘아 올림으로써 오늘날까지도 많은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는데 
바로 그 신호탄 한발로 인해 러시아에서는 레닌을 선두로 한 볼세비키 혁명이 시작된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육상 전투를 위해 양함의 대포만 떼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현재 이곳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배경에 삼성 광고판이 보인다.

 

[영상] Cabin of Peter the Great in St. Petersburg,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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