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 대성당과 마주보고 있는 싱거(Singer) 빌딩

1902년 미국 재봉틀 회사인 싱거(Singer)는 넵스키 대로와 
그리보예도프 운하가 만나는 모서리에 부동산을 매입했다. 
싱거 러시아 지사 사옥 겸 러시아 쇼룸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건물 디자인은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분위기로는 혁신적이며 대담한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금속 골조를 사용함으로써 고층 건물을 짓는 것이 가능했다. 

 

싱거(Singer) 빌딩 - 돔 크니기 (Book House) 

싱거 재봉틀 회사는 당시 미국 내외에서 급속한 확장을 하고 있었고 

러시아 제국은 거대한 시장 중 하나였다. 
싱거 회사는 화려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사 건축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 건물은 넵스키 대로에서 적어도 11층 이상의 

가장 높은 건물이 될 것으로 당초 설계시 계획되었다. 


하지만 당시에 상업용 건물은 황제의 거처인 높이 23.5 미터 동궁보다 
높이 지어서는 안 된다는 ‘토지이용제한법’이 있었다. 
전통 건축물 보호론자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이 2세는 싱거(Singer)측에 
높이를 7층으로 제한하고 아르누보 스타일의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설계를 맡은 파벨 슈조르는 빌딩의 외면을 유리로 두르고 
금속제 탑은 거대한 지구본과 미국의 문장(紋章)으로 장식했다.

지금까지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싱거(Singer) 사옥 건물은 
넵스키 대로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소련 시절 싱거(Singer) 사옥은 서점인 ‘돔 크니기’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시내에서 가장 큰 서점과 문학카페가 들어서 있다. 
서점 위 두 층에는 21세기 들어 러시아의 대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프콘탁테 사무실이 자리잡았다.

 

카잔스키 다리(Kazansky Bridge)와 싱거 하우스

넵스키 대로에서 그리보예도프 운하를 가로지르는 카잔스키 다리(Kazansky Bridge)는 
길이가 18.8 미터이지만 넓이가 95.5미터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두 번째로 넓은 다리이다.
카잔스키 다리(Kazansky Bridge) 양편으로 카잔 성당과 돔 끄니그 서점이 있다.

 

카잔스키 다리에서 본 그리보예도프 운하

카잔스키 다리(Kazansky Bridge)에서 그리보예도프(Griboyedova) 운하 상류를 바라보면
이탈리안 다리 (Italiansky Bridge)를 지나 멀리 성혈성당이 보인다.

 

그리보예도프(Griboyedov) 운하 위에 이탈리안 다리 (Italiansky Bridge)

원래의 보행자 다리는 1896년 이탈리안스카야 울리차 정상의 
그리보예도프(Griboyedov) 운하 건너편에 있는 이 부지에 건설되었다. 
몇 번의 소규모 재건축 후 이 다리는 1955년에 완전히 복구되었다. 

 

이탈리아 다리의 단철 난간

베네치아 식 등불과 장식용 주철 난간으로 장식된 이 다리는 버스커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카잔 대성당, 북쪽으로는 피의 구세주 교회를 촬영할 수 있는 훌륭한 장소다.

 

이탈리아 다리 랜턴 - 베네치아 식 등불

 

이탈리안 다리에서 싱거빌딩을 본 풍경

 

싱거(Singer) 빌딩 - 돔 크니기 (Book House) 

'싱거(Singer)'는 가수라는 싱어가 아니라 19세기 중반 획기적인 

가정용 재봉틀을 만들어 세계 시장을 휩쓴 미국 재봉틀 상표 싱어(Singer)이다.
우리는 흔히 '싱거'라고 불렀던 유서 깊은 브랜드이다.

싱거빌딩은 제정 러시아 말기 1904년, 미국 싱어사가 러시아 판매 본부로 지은 미국 건물이다.
그것만으로도 ​넵스키 대로에서  아주 독특한 존재이다.

 

싱거(Singer) 빌딩 - 돔 크니기 (Book House) 파사드 야경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크고 가장 유명한 서점인 돔 크니기(Dom Knigi, 책의 집)는 
넵스키 대로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이자
혁신적이고 풍부하게 장식된 아르누보의 걸작품 중 하나다.

넵스키 대로와 그리보예도프 운하가 만나는 

교차로에 있으며 카잔 대성당 바로 맞은 편에 있다. 
러시아 문화 유산의 대상으로 공식 지위를 가지고 있다.

 

넵스킨 대로에서 정면 보기

 

아르누보의 걸작품 싱거(Singer) 빌딩

싱거(Singer)는 뉴욕에 있는 본사 건물처럼 높다란 마천루로 짓고 싶어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시 조례는 예카테리나 겨울 궁전, 
지금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높이 23.5m보다 높게 짓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싱거(Singer)사에게 설계를 의뢰받은 러시아 건축가 파벨 수조르(Pavel Suzor 1844~1919)는​
고도 제한을 지켜 6층으로 지었지만 건물을 돋보이게 하는 꾀를 냈다.

 

싱거(Singer) 빌딩 유리 돔

대로 맞은 편 카잔 성당이나 뒤쪽 피의 사원에 눌리지 않으려고
옥상에 지름 2.8m짜리 유리 돔을 한껏 높이 세우는 편법을 썼다.
그리고 유리 돔에는 불을 밝혀 밤에도 눈길을 사로잡는 명물 야경을 만들었다.

유리 돔 위에는 항해를 상징하는 두 여인상이 받쳐든 유리 지구를 올렸다.​​
나중에 돔 앞 건물 정면에는 두 날개를 편 독수리상도 만들어 올렸는데,
미국을 상징하는 대머리 독수리이다.

여기엔 조금 엉뚱한 사연이 있다.​
싱거(Singer) 빌딩은 당시로는 획기적인 엘리베이터, 중앙난방, 에어컨부터
지붕에 쌓인 눈을 자동으로 녹이는 제설 시스템까지 첨단 시스템을 자랑했다.  
러시아 혁명 후에는 국유화된 뒤 정부의 출판사가 되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최대 서점 '돔 크니기 (책의 집)'로 오늘에 이르렀다.​

 

싱거(Singer) 빌딩 외벽을 장식한 청동 장식들

싱거(Singer) 빌딩은 외벽을 장식한 청동 장식들도 아름답다.
특히 양쪽 측면과 모퉁이 현관 위 정면에 붙은 세 쌍의 청동상이 백미이다.
​이 청동상은 에스토니아 조각가이자 화가인 
아만두스 아담손(Amandus Adamson 1855~1929) 작품이다.
그는 싱어(Singer) 빌딩과 함께 넵스키 대로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르누보 건물로 꼽히는
고급 식품점 엘리세예프스키 상점의 외벽 청동상도 만들었다.

 

싱거(Singer) 빌딩 청동상 - 날개 달린 두 여인이 뱃머리에 올라 서 있는 모습

싱거(Singer) 빌딩의 이 청동상은 날개 달린 두 여인이 뱃머리에 올라서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왼쪽 모자 쓴 여인은 가슴을 보면 여인인데 얼굴은 각지고 퉁명스러운 남자 같다.

 

싱거(Singer) 빌딩 여인 청동상

오른쪽 여인은 실을 감는 원추형 실패를 치켜들고 있다.
재봉틀 회사 싱거(Singer)를 상징하겠다.
왼쪽 여인은 배를 저어 나아가는 노를 들고 있어서 항해와 교역을 뜻한다.
미국 땅에서 러시아로 기술을 갖고 왔다는 의미겠다. ​
조각상을 비롯한 여러 청동 장식들이 비바람에 씻겨 녹청이 낀 것이
하얗고 붉은 외벽 화강암 석재와 잘 어우러져 있다.

 

측면 창틀 위마다 인물상 '마스카론'이 붙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잘리는 마녀 메두사.

장식을 겸해 건물에 악령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고 붙이는 
마스카론의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아르누보(Art Nouveau) 장식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프랑스 단어 아르누보(Art Nouveau)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미국, 남미까지 유행한 건축-미술-장식 양식이다.
덩굴과 꽃무늬 장식, 이집트나 신화 속 조각상, 중세의 기괴한 마스카론 같은
이국적 요소들을 자유분방하게 동원했다.

스페인의 가우디 역시 아르누보 건축가에 꼽힌다.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아르누보 도시가 라트비아 리가와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이다.
싱거빌딩 외벽에 걸린 외등에도 아르누보 장식 요소가 뚜렷하다.

 

건물 모퉁이 출입문은 백년 전 작품인데도 현대​ 감각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현관 위 메두사 마스카론​으로 장식한 서점 간판, '돔 끄니기(Дом книги)'

 

돔 끄니기(Dom Knigi) 내부

 

돔 끄니기(Dom Knigi) 내부

 

돔 끄니기(Dom Knigi) 내부

 

돔 끄니기(Dom Knigi) 내부

 

돔 끄니기(Dom Knigi) 내부

 

돔 끄니기(Dom Knigi) 내부

 

[영상] Dom Knigi (House of Books)

 

그리보예도프 운하 위의 반콥스키 다리(Bank Bridge) 

카잔 대성당 옆 그리보예도프 운하에서 하류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황금 날개 그리핀의 반콥스키 다리(Bank Bridge)가 있다.

 

반콥스키 다리(Bank Bridge) 위에서 그리보예도프 운하 상류 방향으로 본 모습

 

반콥스키 다리(Bank Bridge) 

반콥스키 다리(Bank Bridge)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그리보예도프 운하를 가로 지르는 아늑한 횡단 보도이다.
운하를 통과하는 통로는 금으로 장식된 우아한 날개 달린 사자 동상으로 차려 입고 있다.

 

19세기 반콥스키 다리(Bank Bridge) 

고대부터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사자인 그리핀은 금을 침범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고, 
구원의 방법을 알고, 비밀 지식을 보존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왔다. 

 

그리핀

4 마리의 날개 달린 사자 조각이 다리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신비롭고 환상적이며 주변 지역에 특별한 매력을 부여한다.

 

그리핀 마스킹 체인

체인은 주철 프레임에 부착되어 동물의 받침대 아래 기초에 내장되어 조각으로 장식된다. 
그리핀이 이빨로 다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슬이 사자의 입에서 나온다.

웅장한 사자 외에도 다리는 열린 부채와 환상적으로 구부러진 
종려 나무 잎을 묘사한 우아한 격자로 장식되어 있다. 
구조는 트레이 서리 무게가 없는 것처럼 보이며 운하의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다.

 

Openwork 펜스

1826년 8월 5일, 그랜드 오픈 당일, 도시의 주민 9,000여 명이 그리핀 주위에 모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민들은 날개가 구리로 만들어지고 금판으로 덮여 있는 
"작은 동물"을 열광적으로 좋아했다 .
주철 구형 랜턴이 사자의 머리 위에 고정되어 있고 그 프레임은 섬세한 격자 무늬의 
섬세한 패턴을 배경으로 순금으로 빛났다.

반콥스키 다리에서는 넵스키 대로와 싱거(Singer) 빌딩, 카잔 대성당 및 
피의 구세주 교회의 측면 외관을 아름답고 희귀한 풍경으로 볼 수 있다. 

 

구형 랜턴

금박으로 덮인 주철 창살은 금을 긁어 내고 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었다.
1952년에 건축가 로태취(A. L. Rotach)는 오래된 도면에 따라 
반콥스키 다리(Bank Bridge)의 격자를 복원하고 원래 위치로 되돌렸다.

 

반콥스키 다리(Bank Bridge) 

다리의 나무 데크, 십자가 및 크로스바는 1949년에  재정비되었다. 
1952년에 주철로 만든 예술적 울타리가 복원되어 금박으로 덮여 있다. 
잃어버린 랜턴은 그리핀의 머리 위에 다시 설치되었다.
2008년 그리핀 피규어는 그 자리에서 수리되고 금도금 날개가 복원되었다. 

 

파손으로부터 보호되는 금도금 펜더

2017년 1월, 그리핀은 반콥스키 다리(Bank Bridge) 를 떠났다. 
이음새가 나뉘어진 조각품은 복원을 위해 제거되었고 파손 방지 코팅으로 덮여 있었다.

2019년 6월 19일, 그리보예도프 운하에서 교차로가 재개방되었다. 
그리핀의 복원된 모습이 시민들 앞에 다시 나타났다.

 

니콜라이 고골(Nikolai Vasilievich Gogol) 기념비

싱어(Singer) 빌딩 돔 끄니기(Dom Knigi) 서점에서 오른쪽 
말라야 코뉴센나야 울리차(Malaya Konyushennaya Ulitsa) 거리로 조금 걸어가면 
니콜라이 고골(Nikolai Vasilievich Gogol) 기념비가 있다.

 

니콜라이 고골(Nikolai Vasilievich Gogol) 기념비

니콜라이 고골(Nikolai Vasilievich Gogol 1809~1852)은 우크라이나의 작가이며 극작가이다.
1809년 우크라이나에서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818년 풀타바 군립학교를 거쳐 
1829년 네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젊었을 때 배우를 지망했으나 성공하지 못해 문학으로 전환한 고골은 
철학, 문학, 역사에 관심을 두었고 이후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을 쓰게 된다. 

1827년에 페테르스부르크로 이주하여 우크라이나 인민의 생활을 취재한 소설 
<디카니카 근교 농촌 야화>를 출판하여 크게 명성을 얻었으며, 이때부터 푸시킨을 사귀고 
이후 그가 남긴 대작의 소재는 거의 대부분 푸시킨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1834년 페테르스부르크 대학의 조교로서 세계사를 강의했으나 실패하여 곧 퇴직하였다. 
1836년 희극 <감찰관>을 알렉산더 극장과 모스크바에서 상연하였다. 
이는 진보 세력의 절찬을 받았지만, 지배 세력으로부터는 공격을 받게 되어 그는 로마로 갔다. 

그 후 계속하여 스위스 · 파리 · 로마 등지에 거주하였다. 
1847년에 또 하나의 대표작 <결혼>을 쓰고, 같은 시기에 로마에서 
명작 <죽은 혼>의 제1부를 완성했고 제2부의 집필을 시작하며 
1848년에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건강을 해친 뒤였다. 
결국 <죽은 혼>을 모스크바에서 완성했으나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정신적 고뇌와 사상적 동요로 인해 정신 착란에 빠져 
원고를 불 속에 던지고 10일간의 단식으로 자살하였다.

 

니콜라이 고골(Nikolai Vasilievich Gogol) 기념비
기념비 뒤에서 넵스키 대로를 향해 보면 카잔 대성당이 바로 보인다.

그는 작품 속에 당시의 러시아의 현실, 특히 지주 사회의 도덕적 퇴폐와 
관료 세계의 결함과 부정 등을 예리한 풍자의 필치로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고골의 사실주의 정신이 훗날의 러시아 문학과 연극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러시안 레스토랑 카츄사(Rusian Restaurant Katyusha)

 

싱거(Singer) 빌딩 돔 끄니기(Dom Knigi) 서점에서 오른쪽 
말라야 코뉴센나야 울리차(Malaya Konyushennaya Ulitsa) 거리 건너편 건물 1층과 지하에 
러시안 레스토랑 카츄샤(Rusian Restaurant Katyusha)가 있다.

 

레스토랑 카츄사(Katyusha)에서 넵스킨 대로 맞은 편은 카잔 대성당이다.

 

카츄사(Katyusha) 여름 파빌리언(Pavilion) 

여름 성수기에는 건물 옆 울리차(Malaya Konyushennaya Ulitsa) 거리에 
러시안 레스토랑 카츄샤(Rusian Restaurant Katyusha) 가설 건축물이 세워지고
영업하면서 성수기를 누리고 있다.

 

카츄샤(Katyusha)

카츄샤(Katyusha)는 러시아의 대중가요이자 군가다.
1938년에 작곡된 노래로, 전쟁터에 나가 있는 연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처녀 카츄샤에 대한 노래다. 

카츄사(Katyusha)는 가파른 강둑에 서서 

먼 곳에서 복무하는 사랑하는 군인에게 노래를 보낸다. 
노래의 주제는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인은 조국과 국민을 지키고, 
소녀 카츄사(Katyusha)는 희생에 대한 감사함으로 그들의 사랑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많은 소련의 남성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여자 친구를 떠나 위대한 애국 전쟁에 복무하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소련군에서 8,668,400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작곡가인 마트베이 블란테르가 국립 빅밴드였던 소련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의 
첫 공연을 위해 해당 악단 지휘자였던 빅토르 크누셰비츠키에게 위촉받았고, 
돔 소유조프의 콜론늬 홀에서 초연되자 무려 세 번이나 앙코르를 받은 바 있다. 
작곡자가 명백하기 때문에 민요는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소련 국립 재즈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초연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콘서트의 최종 리허설에 참석했던 리디야 루슬라노바라는 사람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자신의 무대에서 먼저 불러버린 것. 
여담으로 누가 라디야 루슬라노바에게 '악보도 없이 어떻게 곡을 불렀죠?'라고 물어보자 
'난 듣자마자 너무 황홀해서 그 곡을 그냥 외워버렸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노래는 대 조국전쟁을 통해 크게 유행했다. 
러시아 내에서만 300가지의 버전이 수집되었다고 한다. 
그 뒤 한국의 아리랑과 같은 러시아의 국민 가요가 되었고, 
현재도 전승기념일과 같은 때 많이 불리고 있다. 

노래 카츄사(Katyusha)는 러시아 국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이스라엘, 중화인민공화국, 인도, 몽골, 인도네시아 등 

많은 나라에서 각각의 버전으로 불리면서 인기를 끌었다.

 

카츄사(Katyusha) 노래를 부르며 손님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영상] 러시안 레스토랑 카츄샤(Rusian Restaurant Katyusha)

배경 음악 - Song of Katyusha

 

레스토랑 안에서 밖을 보면 카잔 대성당이 살짝 보인다.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내부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내부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내부

 

[영상] 웨이트레스들이 카츄사(Katyusha) 노래를 합창한다.

 

카츄샤 원본 가사와 한글 발음과 번역

Катюша 캬츄샤 / Katyusha

 

1

Расцветали яблони и груши, 라스쯔비딸리 야블라니 이 그루쉬,

Поплыли туманы над рекой. 빠쁠릘리 뚜마늬 나드 리꼬이

Выходила на берег Катюша, 븨하질라 나 볘롁 까쮸샤,

На высокий берег на крутой. 나 븨쏘끼이 볘롁 나 끄루또이

 

사과꽃 배꽃이 피었지.

구름은 강 위를 흘러가네.

카츄샤는 강 기슭으로 나와

높고 가파른 강둑을 걸어가네.

 

2

Выходила, песню заводила 븨하질라, 뼤쓰뉴 자바질라 

Про степного, сизого орла 쁘라 쓰찝노바, 씨자바 아를라 

Про того, которого любила 쁘라따보 까또라바 류빌라 

Про того, чьи письма берегла. 쁘라따보, 치 삐쓰마 볘례글라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네,

초원의 잿빛 독수리에 대해서

사랑하는 이에 대해,

소중한 편지를 보내오는 이에 대해서.

 

3

Ой ты, песня, песенка девичья, 오이 띄, 뼤쓰냐, 뼤쏀까 졔비치야,

Ты лети за ясным солнцем вслед. 띄 리찌 자 야쓰늼 쏜쩸 프쓸롓.

И бойцу на дальнем пограничье 이 바이쭈 나 달님 빠그라니치이

От Катюши передай привет. 아뜨 까쮸쉬 뼤례다이 쁘리볫

 

오! 노래야 처녀의 노래야,

저 빛나는 해를 따라 날아가,

머나먼 국경의 병사 하나에게

카츄샤의 인사를 전해다오.

 

4

Пусть он вспомнит девушку простую, 뿌스찌 온 프스뽐닛 제부쉬꾸 쁘라스뚜유,

Пусть услышит, как она поёт, 뿌쓰찌 우쓸릐쉿, 깍 아나 빠욧,

Пусть он землю бережёт родную, 뿌쓰찌 온 졤류 볘례죳 라드누유,

А любовь Катюша сбережёт. 아 류봅 까쮸샤 즈볘례죳

 

그로 하여 순박한 처녀를 생각케 하고,

그녀의 노래를 듣게 하렴.

그로 하여 조국을 수호하게 하고,

카츄샤가 사랑을 간직할 수 있도록.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메뉴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메뉴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내부 공연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내부 공연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내부 공연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내부 공연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내부 공연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내부 인증샷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내부 공연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내부 공연

 

[영상] 카츄사(Katyusha) 레스토랑 전속 가수 공연

신청곡을 받아 주고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도 불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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