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치코프 궁전(Anichkov Palace) 상공에서 넵스키 대로 해군성 방향
엘리세예프 엠포리움(Elisseeff Emporium)
엘리세프 백화점(Elisseeff Emporium)은 1902~1903년에 엘리세프(Elisseeff) 형제들을 위해 지어진
유명한 푸드홀을 포함한 대형 소매 및 엔터테인먼트 복합 단지이다.
이 복합 단지는 3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지만, 코너 하나는 엘리세프의 상점이다.
엘리세프 백화점(Elisseeff Emporium) 정면
건축가 가브리엘 바라노프스키(Gabriel Baranovsky)가 설계한 이 건물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아르누보 건축의 가장 눈에 띄는 사례 중 하나이지만
건축 당시 건물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세프 백화점(Elisseeff Emporium) 건물 표지판
[영상] 엘리세프 백화점(Elisseeff Emporium) 건물 표지판
1904년경 엘리세프 백화점(Elisseeff Emporium) 현대 엽서
백화점 건물 기둥 조각 - 산업을 상징하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토스(Hephaistos)
건축가 가브리엘 바라노프스키(Gabriel Baranovsky)는 오래된 건물의 일부를
이 구조에 통합하여 건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상점 창처럼 보이게 했다.
파사드의 절반 이상이 단일 아치로 구성된다.
아치는 거리로 여러 층을 여는 거대한 스테인드 글라스 창이다.
아르누보 스테인드 글라스는 에스토니아 조각가 아만더스 아담손(Amandus Adamson)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산업, 과학, 상업 및 예술을 우화적으로 조각하여 장식한
건물의 화강암 기둥 면과 대조를 이루면서 잘 어울리고 있다.
왼쪽에 배 모형을 들고 뒤쪽에 톱니바퀴를 묘사한 조각상은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토스(Hephaistos)로 산업을 상징한다.
백화점 건물 기둥 조각 - 상업의 수호신 헤르메스(Hermes)
헤르메스(Hermes)는 카두케우스 또는 케리케이온(Kerykeion)이라 불리는
뱀 두 마리가 엉킨 지팡이를 들고, 챙넓은 모자 혹은 페타소스(Petasus)라는 이름의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탈라리아(Talaria)라는 이름의 날개 달린 샌들을 신고
마법의 망토를 두른 청년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백화점 건물 기둥 조각 - 예술의 신 아폴론(Apollon)
아폴론(Apollo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과 예언 및
광명 · 의술 · 궁술 · 음악 · 시를 주관하는 신이다.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아르테미스와는 남매지간이다.
올림포스의 12신의 두 번째 세대에 속한다.
월계수와 리라, 활과 화살, 백조, 돌고래가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훤칠하고 준수한 미남으로 묘사되며, 그래서 여성 및 남성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많다.
또한 헤르메스가 선물로 준 리라를 잘 연주하고 활도 잘 쏠 줄 알았다.
백화점 건물 기둥 조각 - 과학의 여신 아테나(Athena)
아테나(Athen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혜 · 전쟁 · 직물 · 요리 · 도기 · 문명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의 미네르바와 동일시된다.
제우스와 메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올림포스의 12신의 두 번째 세대에 속한다.
투구, 갑옷, 창, 메두사의 머리가 달린 방패(아이기스), 올빼미, 뱀이 대표적 상징물이다.
언제나 투구와 갑옷을 입고, 손에는 창과 방패를 든 무장한 여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엘리세프 백화점(Elisseeff Emporium) 앞면 진열장
진열장 안에 장남감 병정이 뭔가를 진지하게 바라본다.
중세 귀족 차림 인형이 아이스크림을 치켜들고 있다.
수레에 실린 뚱보 영감은 소시지 하나를 꿰어 들고 흐뭇해 한다.
옛 동화처럼 코와 귀가 긴 인형이 소시지를 빚는다.
요리사는 숟가락과 포크를 챙겨 들고서 뭔가를 조리할 기세다.
마법을 부리는 요술 할머니도 등장한다.
사람보다 훨씬 큰 인형들이 만화처럼 동화처럼 계속 회전하며 움직인다.
100년 넘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물론 러시아에서
최고 먹을거리 가게로 꼽혀 온 식품점 진열장이다.
엘리세프 백화점(Elisseeff Emporium) 내부
엘리세프 백화점(Elisseeff Emporium) 내부
엘리세프 백화점(Elisseeff Emporium) 내부
[영상] 엘리세프 백화점(Elisseeff Emporium)
아니치코프 궁전(Anichkov Palace) 상공에서 본 넵스키 대로
앞에 보이는 엘리세프 백화점(Elisseeff Emporium) 건물 앞 횡단보도를 건너 나무 숲 안에
예카테리닌스키 사드(Yekaterininskiy Sad), 캐서린 공원(Catherine Park)이 있다.
캐서린 대제(Catherine the Great) 기념 동상
187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오스트로브스키 광장(Ostrovskiy Square)에
캐서린 대제(Catherine the Great)를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
예카테리나 대제 (예카체리나 빌리카야 Екатерина Великая)라고도 불리는
캐서린 대제(Catherine the Great)는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8번째 황제이다.
러시아의 마지막 여제(女帝)이기도 하다.
중국의 측천무후와 자주 비교되기도 하는데 둘 다 거대한 제국의 여제였고,
황후의 자리에서 황제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로 즉위한 여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캐서린 대제(Catherine II the Great) 공원에서 인증샷
캐서린 정원(Catherine Garden)은 아니치코프 궁전(Anichkov Palace) 저택 구역에 있는
오스트로브스키 광장(Ostrovskiy Square) 단지의 일부로
알렉산드린스키 극장(Alexandrinsky Theater) 앞에 있는 공원의 비공식적인 이름이다.
오스트로브스키 광장은 알렉산드린스키 극장, 러시아 국립도서관, 아니치코프 궁전,
캐서린 2세 기념비, 공교육부 건물 등 중요성을 지닌 역사적, 문화적 기념물이 많다.
이 지역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역사 중심지의 일부로 세계 유산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캐서린 대제(Catherine II the Great) 기념 동상에서 인증샷
예카테리나는 원래 독일인이었다.
프로이센군 소장인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 폰 안할트-체르프스트 공작과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의 요한나 엘리자베트의 딸로,
본명은 조피 프레데리케 아우구스테 (Sophie Friederike Auguste von Anhalt-Zerbst).
세력이 미약한 귀족의 딸이었다.
다만 시골 생활에 진저리를 내던 어머니의 열성적인 교육열과
본인의 총명함과 부지런함으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외삼촌이 옐리자베타 여제와 약혼했던 인연 덕분에 1744년,
러시아의 제위 계승권자인 홀슈타인 공작 카를 울리히와 결혼했다.
이때 이름도 러시아식으로 개명하여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Екатерина Алексеевна)라고 불리게 된다.
캐서린 대제(Catherine the Great) 기념 동상
예카테리나와 표트르 3세는 신혼 무렵엔 같은 독일인이라는 점 때문에
사이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예카테리나가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옐리자베타 여제의
경계를 완화시키기 위해 점차 친러시아 노선을 걷자 사이가 나빠진다.
게다가 남편인 표트르는 장난감 병정이나 기차만 가지고 노는
머리 나쁜 위인인데다가 심각한 성불구라는 풍문이 있었다.
그래서 장기간 부부 관계가 없었고 부부 모두 18년간 각자 정부를 두고 살았다.
이 때문에 예카테리나의 세 아이 모두 각기 다른 정부의 아이였다는 풍문도 돌았다.
러시아군이 프로이센을 거의 막바지로 몰아붙였으나 승리 직전에
옐리자베타 여제가 사망하고 제위를 물려받은 표트르 3세가
프로이센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추종하여 무조건 평화 협정을 맺어 버리자
러시아 귀족들은 크게 분노하였고, 예카테리나 역시 남편의 처사에 크게 반발한다.
캐서린 대제가 공식 가운을 입고 오른 손에는 홀을, 왼손에는 올리브 화환을 들고 있다.
러시아인들 사이에 평판이 좋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수많은 귀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예카테리나는 결국 1762년 6월 표트르 3세가
덴마크와의 전쟁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운 사이 반란을 일으켜
자신이 러시아 제국의 황제임을 만천하에 알린다.
표트르 3세는 체포되어 8일 후에 감옥에서 죽었다.
이에 대해선 아마도 예카테리나 2세의 지시
혹은 방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예카테리나 통치 기간에 농업과 상공업을 진흥시켜
국력은 크게 향상되었고, 볼테르 등의 문인들을 후원하며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를 초청하는 등 문화적인 면에서 업적을 거뒀다.
예술에도 지대한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아서 유럽 각지에 퍼져 있는
그림, 조각들을 수집, 현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만들었다.
대제 캐서린 II세와 그녀의 동료들 기념물.
받침대는 왕권의 상징으로 장식되어 있다.
동상의 받침대에 형상이 새겨진 고위 인사들 중에는 아마도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군인 알렉산더 수보로프 (Alexander Suvorov),
장군이자 정치인 포티옴킨 왕자,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를 이끄는 최초의 여성인 카테리나 다쉬 코바가 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원래 예카테리나 2세가 휴식을 취하던 일종의 별궁으로
초대를 받은 사람이 아니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으나 현재는
러시아인들은 물론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최고 수준의 미술관이 되었다.
그녀가 사들인 미술품들도 굉장히 많다.
현재에는 한 작품당 1분씩만 감상을 해도 8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를 이끄는 최초의 여성인 카테리나 다쉬코바
이렇게 향상된 국력을 바탕으로 외치에서 대성과를 거두었다.
오스만 제국에 강한 압박을 가하여 러시아-튀르크 전쟁(1770~1774)에서 승리하고,
크리미아와 카프카스를 할양 받아 영토를 넓혔으며,
1783년에는 크림 반도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빼앗았다.
이것으로 오스만 제국의 봉신국이었던 크림 칸국은 멸망했다.
또한 크림 칸국으로부터 해방시킨 우크라이나 동부에 코사크 농부들을 정착시키고,
볼가 강 남부 유역과 키스피해 연안에 칼미크인들의 영토를 축소시키고
그 자리에 대규모의 독일계 이민을 이주시켜 밀농사를 짓게 함으로써,
러시아의 농업 생산량을 크게 끌어올렸다.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인신 매매와 약탈을 일삼던 크림 타타르족이
토벌되면서 농업이 안정화되고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산 밀은 러시아의 주력 수출 품목이 되었다.
캐서린 대제 동상 받침대의 세부 이미지
예카테리나 대제는 남자 애인을 많이 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심지어 이미 60세가 넘어서 죽음을 앞에 두던 순간까지도
수많은 정부들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예카테리나 2세는 몇 년에 한번씩 정부를 갈아치우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헤어진 정부들에게 막대한 재산과 영지, 관직 등을 하사하여 후히 대접하였다.
알렉산드린스키 극장(Alexandrinsky Theater)
모스크바 말리극장 다음가는 옛 극장으로서 1832년에 창립되었으며,
시의 중심인 네프스키 가(街)의 남쪽, 오스트로프스키 광장의 정면에 서 있고,
건축가 로시(Carlo Rossi)의 설계로 이루어진 암필식(式) 건물(좌석 1,365)은
세계 유수의 아름다운 극장 건축으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드린스키 극장(Alexandrinsky Theater) 내부
제정시대에는 주로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등의 서구 고전과
고골리,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 등 러시아 작가의 것을 상연,
그 무대에서 많은 명배우를 낳았고, 사실적인 예풍과 레퍼토리를 갖는 드라마 극장으로서,
19세기 러시아 국민 연극의 발달에 큰 역할을 하였다.
혁명 후에도 그 전통을 이어받아 여전히 러시아를 대표하는 극장의 하나로 되어 있다.
[영상] 캐서린 공원 (Catherine Park)
러시아 국립 도서관(National Library of Russia)
1795년 캐서린 대제(Catherine the Great)에 의해 설립되었다.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도서관 일뿐만 아니라 최초의 국립 도서관이기도 하다 .
소련 붕괴 이전에는 레닌 국립도서관이 이름이었다.
캐서린 공원 (Catherine Park) 바로 옆에 있다.
러시아 국립 도서관(National Library of Russia) 내부
러시아 국립 도서관(National Library of Russia) 내부
러시아 국립 도서관(National Library of Russia) 내부
칼 불라 포토뮤지움(Karl Bulla Photomuseum)
러시아 국립 도서관(National Library of Russia)앞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
넵스키 대로와 말라야 사도바야 스트리트(Malaya Sadovaya St) 가도에
칼 불라 포토뮤지움(Karl Bulla Photomuseum)이 소재한 건물이 있다.
엘리세프 백화점(Elisseeff Emporium) 앞에 붉은 색 건물
아르누보 양식의 고풍스런 건물
사진 작가 기념비(Monument to St. Petersburg Photographer)
엘리세예프 엠포리움 (Eliseyev Emporium) 건물 모퉁이에서 오른쪽 거리
말라야 사도바야 스트리트(Malaya Sadovaya St)로 돌아서면
우산 아래 삼각대에 청동 사진기를 찍고 있는 사진 작가의 2.5m 조각 동상을 발견한다.
잉글랜드 불독이 사진기 아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단정한 정장에 중산모, 깔끔한 콧수염을 한 신사는 칼 불라(Karl Karlovich Bulla)로
"러시아 사진보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계 러시아인 사진 작가다.
그는 초창기 20만 장에 이르는 거대한 사진 자료를 유산으로 남겼다.
태어날 때부터 독일인이었던 칼 불라(Karl Karlovich Bulla)는
거의 모든 생애를 러시아에서 보냈고 그 결과 그는 러시아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시민권 (시민권)을 받았으며
그의 아들은 러시아 이름을 지었고 소련에서 일했다.
칼 불라는 정치가, 군사 지도자, 작가 및 기타 유명인과 같은
당시의 위대한 사람들을 촬영할 수 있도록 허용된 작가였다.
실제로 그는 차르 가족의 삶과 반정부 지식인의 집회, 현장의 스타와 육체 노동자,
노숙자를 위한 궁전과 호스텔, 심지어 동성애자 파티와 같은
이국적인 사람들까지 모든 것을 촬영했다.
칼 불라(Karl Bulla)와 그의 아들들
1916년 칼 불라는 "Bulla and sons" 회사의 경영권을 그의 아들 알렉산드르(Alexander Bulla)와
빅토르(Viktor Bulla)에게 넘겨 주고 Ösel Island (현재 Saaremaa , Estonia )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조용한 삶을 살았고, 지역 민족 지학 자료를 촬영하고
1929년 사망할 때까지 에스토니아 소년들에게 사진의 기초를 가르쳤다.
나중에 아들 빅토르(Viktor Bulla)는 10월 혁명과 러시아 남북전쟁의 사진을 찍었다.
빅토르는 레닌그라드 소비에트의 수석 사진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블라디미르 레닌과 다른 볼셰비키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1935년 빅토르(Viktor Bulla)는 아버지의 사진 132,683 점을
레닌그라드의 국가 아카이브(State Archive)에 기증했다.
아카이브에 있는 모든 사진은 공개되어 있으며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과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하고도 가장 인기있는 출처가 되었다.
하지만 1938년 그레이트 퍼지 (Great Purge) 대숙청 기간 동안
빅토르(Viktor Bulla)는 독일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2003년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300주년과 칼 불라(Karl Bulla)의
15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대형 전시회가 열렸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은 칼 불라(Karl Bulla)의 이전 스튜디오 근처
말라야 사도바야(Malaya Sadovaya) 거리에 칼 불라(Karl Bulla)의 청동 조각상을 설치해 놓았다.
칼 불라(Karl Bulla)의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사진
칼 불라의 작품 덕분에 레오 톨스토이 또는 니콜라스 2 세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고, 당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상상하고,
러일 전쟁의 전선에서 찍은 실제 사진과 1905-1907년 혁명기
"새로운 문제의 시대" 사진 스케치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 덕분에 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진 작가는 사진 보도 장르의 조상으로 추앙되고 있다.
1910년 11월 일리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이 레오 톨스토이 사망 발표 보도를 읽고 있는 사진.
현재 러시아의 시인, 수필가이자 문학평론가 코니 추코프스키(Korney Chukovsky)와
레핀의 아내이자 예술가 나탈리아 노드만(Natalia Borísovna Nordman-Severova)이 있다.
Karl Bulla Photomuseum
Karl Bulla Photomuseum
Karl Bulla Photomuseum
Karl Bulla Photomuseum
Karl Bulla Photomuseum
볼쇼이 고스티니 드보르(Gostiny Dvor)
러시아 국립 도서관(National Library of Russia)에서 사도바야(Sadovaya) 거리
건너편에 200m에 이르는 블록 하나를 기다란 이층 아케이드
'볼쇼이 고스트니 드보르(Gostiny Dvor)'가 차지하고 있다.
고스티니 드보르(Gostiny Dvor)가 '고객의 마당' 또는 '상인의 정원'을 뜻하듯
정해진 시간에 인근 각지에서 모여든 상인들이 작은 가게를 벌이는 장마당으로 출발했다.
그 중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볼쇼이 (큰) 시장이라는 의미다.
뒤쪽으로는 길이가 1km 가까운 역삼각형으로 건물이 뻗어 있어 넓이가 1만5천평에 이른다.
넵스키대로에서 보기보다 훨씬 더 크다.
2008년 Great Gostiny Dvor.
고스티니 드보르(Gostiny Dvor)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 센터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쇼핑 아케이드 중 하나다.
정면 박공에 새겨놓은 것은 아케이드 이름 '바흘쇼니 고스트니 드보르'이다.
양쪽 1761와 1785는 20년 넘게 이 시장 건물을
네오클라식 스타일로 리모델링한 착공-완공 연도이다
고스티니 드보르(Gostiny Dvor)와 근처의 거리, 1799. by 벤자민 패터슨(Benjamin Patersen)
175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최초, 유럽 초기 아케이드(실내 시장)이자
마차를 몰고 온 상인들의 숙소로 출발해 200개 가까운 점포가 들어선 쇼핑몰로 번창했다.
거대한 고스티니 드보르(Great Gostiny Dvor), 1802. by 벤자민 패터슨(Benjamin Patersen).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Nevsky Avenue 에 있는 거대한 백화점.
상공에서 본 고스티니 드보르와 시계탑
시계탑
고스트니 드보르가 차지한 블록 옆 붉은 시계탑이 선 33번 건물은
1750년 길드 건물로 출발해 1786년부터 1804년까지 시청으로 썼던 두마 빌딩이다.
1847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왼쪽에 있는 신전풍 건물은 18세기 말 고스트니 드보르 시장의 귀금속 거래-환전소였다고 한다.
두마 빌딩 모퉁이에 선 진홍빛 시계탑은 넵스키대로에서 손꼽히는 랜드마크다.
원래 화재를 감시하는 소방탑이었는데 오히려 1998년 화재로 불타 새로 지었다고 한다.
시계탑 상공에서 본 넵스키 대로 (Nevsky Prospect) 야경
넵스키라는 이름은 알렉산더 네프스키 라브라 (Alexander Nevsky Lavra) 에서 따온 것이다.
이 수도원은 거리의 동쪽 끝에 있으며 한때 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을 지배한
노브고로드 공국의 공작이자 러시아를 스웨덴과 독일, 몽골로부터 지켜낸
러시아의 영웅, 세인트 알렉산더 네프스키 (1221-1263)를 기념하는 수도원이다.
이 도로의 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1703년 차르 피터 1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건립한 후, 길의 시작으로 거리의 코스를 계획했다.
노브고로드와 모스크바. 애비뉴는 서쪽의 해군성에서 모스크바 기차역까지 이어지며,
보스타니야(Vosstaniya) 광장에서 약간 남쪽으로 향한 후
알렉산더 네프스키 라브라(Alexander Nevsky Lavra)까지 이어진다.
주요 명소는 라스트렐리스끄 스트로가노프(Rastrelliesque Stroganov) 궁전,
거대한 신고전주의 카잔 성당, Bookhouse (원래 가수 하우스),
엘리세프 백화점(Elisseeff Emporium), 대여섯 18 세기 교회, 기념물 예카테리나 2 세 ,
거대한 18 세기 쇼핑몰 , 19 세기 중반 백화점 , 러시아 국립 도서관 ,
말 동상이 있는 아니치코프 다리 등등이 있다.
시계탑 상공에서 본 넵스키 대로 (Nevsky Prospect) 야경
넵스키 대로는 서쪽 네바 강변에서 시작해 동쪽 네바 강변에서 끝나는데,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상징적인 구간은 구 해군성이 있는 서쪽 끝에서부터 모스콥스키 역까지다.
이 대로 근처에 운하들, 에르미타주 박물관, 러시아 박물관, 카잔 대성당, 피의 성당 등
상트의 주요 관광지가 도보 이동권에 모두 모여 있으므로 관광객들도 이 대로를 중심으로 다니게 된다.
현재의 대로의 형태는 이미 러시아 제국 시대에 완성되었다.
도스토옙스키가 즐겨 산책해 그의 저작에도 넵스키 대로가 종종 등장하고
피의 일요일 사건 때도 민중들은 차르를 외치며 이 대로를 행진했다.
도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차들이 다니지만 그 외 길가의 건축물들은
모두 당시부터 보존되는 것이 대부분이며 대단히 고풍스럽다.
[영상] 걸어서 넵스키 대로 / 엘리세예프 상점 - 그리보예도프(Griboyedov) 운하 카잔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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