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데비치 수도원 (Novodevichy Convent)

노보데비치 수도원(Новодевичий монастырь)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구촌의 문화 유산이자 러시아의 보물이다.
모스크바 남서쪽에 있는 노보데비치 수도원(Novodevichy Convent)은 
16, 17세기에 이른바 ‘모스크바 바로크 양식(Moscow Baroque style)’으로 건축되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모스크바의 방어 체계에 통합된 수도원 중에 하나로 
러시아 정치사 · 문화사 · 종교사와 직접적이고 깊은 연관이 있다. 

차르 일가와 귀족 여성들이 이 수도원을 이용하였고, 사망한 후에는 이 수도원 묘지에 묻혔다. 
러시아 건축의 뛰어난 성과를 보여 주는 수도원은 아름답게 장식된 내부 시설 안에 
중요한 회화와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Ensemble of the Novodevichy Convent)

원래는 크렘린의 출성이었느데 지금은 여자 수도원이다. 
16세기 말 모스크바 강을 넘어 쳐들어온 타타르군을 12개의 망루에서 발견하여 

포격을 가하기도 했고, 17세기 폴란드와 동맹 관계에 있던 리투아니아가 

진격해 오는 것을 포자르스키가 이곳에서 출격하여 섬멸하기도 했다. 
수도원에 있는 건물 모두가 16세기 러시아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이다. 
수도원은 녹음이 무성해서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Ensemble of the Novodevichy Convent)

'노보데비치' 란 뜻은 러시아어로 '새로운 혹은 거듭난 처녀의' 란 뜻으로
이 수도원이 여자 수도원 즉 수녀원이란 사실을 암시한다. 
노보데비치 수녀원은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차르 일가와 귀족 여성들이 이 수도원을 이용하였고, 사망한 후에는 이 수도원 묘지에 묻혔다. 
러시아 건축의 뛰어난 성과를 보여 주는 수도원은 아름답게 장식된 내부 시설 안에 
중요한 회화와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수도원 내부에는 스몰렌스크 대성당, 표트르 성당, 대종루 등이 있으며 
수도원을 둘러싼 성벽의 길이가 1㎞에 달한다. 
또한 러시아의 유명 인사들의 묘가 묻혀 있는 묘지도 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크렘린에서 모스크바 강(Moskva R.) 서쪽 가까이 있으며, 
석조 성벽으로 둘러쌓인 고풍스러운 건물이다. 
1524년 모스크바 대공(大公) 바실리 3세 (Vasilii III)가  폴란드령이었던 
스몰렌스크(Smolensk)를 탈환하자 이를 기념하여 건립한 것으로 전쟁 중에는 요새의 역할을 겸했다.  

차이코프스키가 영감을 얻어 '백조의 호수'를 작곡했다는 호숫가에 위치한 노보데비치 수도원

모스크바 강변에 위치한 노보제비치 수도원은 고풍스런 건물과 황금색 지붕의 첨탑, 
인근 호수 및 공원 등과 어우러져 러시아에서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수도원은 아름다운 호반 주변에 건축되었는데 바로 그 호수에서 차이코프스키가
명상을 하다 영감을 얻어 그 유명한 '백조의 호수'를 작곡 했다 한다. 
하지만 호수에서 백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100여 마리의 청둥오리들이 한가로이 노닌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수도원은 12개의 탑이 있는 높은 축벽(築壁, masonry wall)으로 둘러싸여 있다. 
입구는 북쪽(시내)과 남쪽 두 군데에 있다. 

 

[영상] Novodevichy Convent

 

노보데비치 수도원

동서 방향인 스몰렌스키 성당(Smolensky Cat)은 두 출입문을 잇는 축의 가운데에 있다. 
수도원 영지는 반듯하지 않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뻗어 있다.
16세기에 설립된 수도원의 전체 모습이 압도적인 까닭은 17세기 건축양식인 
‘모스크바 바로크양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수도원은 2개의 축을 중심으로 배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서축은 성모 승천 교회(Church of the Assumption)와 종탑(Bell Tower)이다. 
남북 축은 2개의 출입문이 있다. 
북쪽 출입문은 그리스도 변용 교회(Church of Transfiguration)와 연결되어 있고,
남쪽 출입문은 성모 마리아 교회(Church of he Holy Virgin)와 연결되어 있다. 
성 암브로시 교회(Church of St. Amvrosi)와 식당은 남쪽 출입문에 가깝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종탑(1683~1690)은 총 5단이며 전체 높이가 72m이다. 
모스크바 바로크 양식의 종루는 붉은색 벽돌로 쌓았으며 흰색 돌로 장식되어 있다. 
수많은 주거 및 서비스 건물이 수도원 담장을 따라 늘어서 있다. 
동서 축에서 멀리 떨어진 종탑을 동쪽 경계와 가까운 곳에 배치한 비범함은 수도원을 둘러싼 길, 
특히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과의 유기적 결합을 강조한다. 

이러한 경관은 도시 배치의 시각적 연결과 건축 공간 배치를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스몰렌스크의 성모 마리아 성화(1524~1525, 16세기 그림과 17세기 성화벽)를 위해 
수도원의 두 축이 교차하는 곳에 세운 스몰렌스키 성당은 수도원의 주요 초점이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야경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모스크바 강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부근에는 여러 개의 수도원들이 연쇄적으로 늘어서 모스크바의 

방어 체계를 이루고 있었는데, 노보데비치 수녀원은 중요한 그 일부였다. 
바실리 3세는 이 수녀원에 3천 루블을 기부하고 영지도 내려 주었다. 
'잔혹한 황제' 차르 이반 4세 역시 수녀원을 후원해 주었다. 

표트르 대제의 첫 아내인 에우도키아 로푸히나 황후가 1680년대에 
모스크바 바로크양식으로 많은 부분을 증축했다. 
이 때 새로운 교회들과 종탑이 세워졌다. 
노보데비치 수녀원은 러시아 왕실의 많은 여성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었는데, 
에오도키아 로푸히나 황후도 표트르 대제와 이혼한 후 이 수녀원에 머물렀고, 
표트르 대제의 누이 소피아 알렉세예브나는 이곳에 유폐되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북쪽 출입문 근처 전경

 

노보데비치 수도원 북쪽 출입문 
북쪽 출입문은 그리스도 변용교회(Church of Transfiguration)와 연결되어 있다.

 

북쪽 출입문 망루와 그리스도 변용교회(Church of Transfiguration)

 

수도원 남쪽 벽과 중간문

 

수도원 남쪽 벽과 중간문
남쪽 출입문은 성모 마리아 교회(Church of the Holy Virgin)와 연결되어 있다.

 

소피아 공주와 함께 표토르 1세 부인까지 유폐된 망루가 있는 건물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정쟁의 소용돌이와도 연관되어 있다. 
차르(Tsar) 일족이나 명문 귀족의 자녀가 은둔하거나 유폐당하기도 했는데 
1682년 표트르 1세 (Pyotr I)의 이복형인 이반 5세(Ivan V)와 
이복누나인 소피아 공주(Alekseevna Sophia)가 표트르 1세에 대한 음모를 꾸미다가 
실패하자 소피아 공주가 이 수도원에 유폐당했다.
또한 첫번째 부인이었던 에브도키아가 유폐된 장소이기도 하다. 

 

감금된 표토르 1세의 이복누나 소피아공주 초상화
러시아 국민화가 일리야 레핀(lya Repin)의 유명한 작품이다.

소피아는 동복동생 이반 5세와 이복동생 표트르 1세(대제)가 공동 차르가 된 1682년, 
아직 어린 그들을 대신해 섭정이 되었다. 
7년간 러시아를 통치한 그녀는 스스로 차르가 되려고 세를 일으켰다. 
그러나 표트르 1세를 지지하는 세력에게 껶여 노보데비치 수녀원에 유폐되고 만다. 

소피아는 1704년 47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15년 동안 
이 수녀원 밖으로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그녀는 
그녀의 측근과 친위대원, 1700여 명이 처행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가운데 세 명은 그녀의 처소 바로 밖에서 처형되었는데, 
그림을 보면 창 밖에 주검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소피아가 왜 이리 험암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일리야 레핀(lya Repin)의 작품 <소피아 알렉세예브나 황녀>는 
권력 무상의 허망한 정서가 철철 넘쳐 흐르는 그림이다. 
그림 한 가운데에는 분노와 복수심과 한으로 눈에 불을 켜고 있는 황녀가 있다. 
바로 표트르 대제의 누나 소피아 황녀다.
위 그림은 노보데비치 수녀원에 감금된 지 1년 뒤의 모습이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입구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모스크바로 가는 길목, 
강이 교차하는 곳에 있기 때문에 중요한 방어 거점의 역할도 겸하였다. 
이 역사적인 도로는 더욱이 도시계획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크렘린 궁전과의 상징적 · 물리적 관계는 종탑의 위치를 비롯한 
노보데비치 수도원 내의 공간 배치에 영향을 주었다.

 

스몰렌스키 (성모마리아 Our Lady of Smolensk) 대성당

수도원은 러시아정 교회의 가장 고귀한 성소인 스몰렌스크의 
‘호디기트리아 (길의 인도자 성모)’ 성모 마리아 성화를 위해 헌정되었다. 
수도원의 성당 스몰렌스키 대성당은 이 성화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스몰렌스키 대성당 Detail (부분)

스몰렌스크의 성모 마리아 성화 (1524~1525, 16세기 그림과 17세기 성화벽)를 위해 
수도원의 두 축이 교차하는 곳에 세운 스몰렌스키 성당은 수도원의 주요 초점이다.

수도원은 차르와 귀족 여성들이 드나드는 가장 존경받는 수녀원 중에 하나가 되었으며,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에 있는 그리스도 승천 수도원(Ascension Convent)인 
보즈네센스키 스타로데비치(Voznesensky Starodevichy, 노처녀)와 구별하기 위해 
노보데비치(Novodevichy, 새 아가씨 성모 호디기트리아)라고 불렀다. 

이 두 수도원은 또 다른 연관이 있다. 
노보데비치의 성당과 크렘린 궁전의 성당들은 

16, 17세기에 지배자였던 왕족을 위한 묘지로 이용되었다.

 

스몰렌스키 (성모마리아 Our Lady of Smolensk ) 대성당

이탈리아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짐작되며, 석재 파편을 가미해서 

벽돌로 지은 스몰렌스키 성당은 수도원 전체를 통틀어 최초의 석조 건물이었다. 
3개의 애프스(apse)에서 끝나는 3개의 복도가 있는 건물은 
두 층의 갤러리에 둘러싸여 있으며 5개의 둥근 지붕이 있다. 
흰색 회반죽을 칠한 외벽은 지붕선 위에서 

반원형으로 마무리되는 각각의 구역과 수직으로 연결된다.

 

스몰렌스키 (성모마리아 Our Lady of Smolensk ) 대성당

실내 윗부분에는 가벼운 원통형 구조물 위에 십자형 반원천장과 돔이 있고, 
벽과 기둥 및 둥근 천장은 안료에 달걀노른자와 물을 섞은 
템페라(tempera) 화법으로 그린 벽화로 덮여  있다.

고풍스런 고대 러시아 양식을 지향하여 제작된 그림의 주요 주제는 
‘성모를 찬양하는 찬송가 말씀(Akaphist’s text praising the Virgin)’이다. 
모스크바 바로크 양식의 전형인 금박을 입힌 장식의 
나무틀로 된 성화벽(iconostasis)에는 16, 17세기 성화들이 걸려 있다.

 

Dormition Cathedral 수도원 내부는 프레스코화로 가득하다. 

실내 윗부분에는 가벼운 원통형 구조물 위에 십자형 반원천장과 돔이 있고,  
벽과 기둥 및 둥근 천장은 안료에 달걀노른자와 물을 섞은  
템페라(tempera) 화법으로 그린 벽화로 덮여 있다.  

고풍스런 고대 러시아 양식을 지향하여 제작된 그림의 주요 주제는  
‘성모를 찬양하는 찬송가 말씀(Akaphist’s text praising the Virgin)’이다. 

 

금박에 이콘화로 장식된 주교만 출입하는 문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러시아 역사와 왕족의 삶에 관한 중요한 서적들뿐 아니라  
수많은 보물과 그림을 보관하고 있으며, 크렘린의 역사적 기념물들을 보관하고 있다.  
1980년부터 노보데비치 수도원에는 주교가 거주하였고, 1994년에 수녀원이 다시 도입되었다. 

금박을 입힌 양각 장식(모스크바 바로크 양식의 전형)의 나무틀로 된  
성화벽(iconostasis)에는 16, 17세기 성화들이 걸려 있다.

 

성 모자와 성 루카 
수도원 내부에는 이른바 모스크바 파와 노브고로트파 화가들이 그린 이콘(성화상)이 많다.

 

이콘화 (icon) 

10월 혁명 이후인 1922년 수도원은 문을 닫고  
‘여성해방박물관(Museum of emancipation of woman)’으로 바뀌었다가,  
나중에 다시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역사예술박물관으로 정비되었다.  
오늘날 이곳은 크렘린의 러시아 국립역사박물관(State Historical Museum)의 분관이다. 

 

러시아에서 최초로 성인이 된 보리스와 글롑 성 삼위일체 이콘화 

 

성자들의 프레스코

 

수많은 이콘성화로 장식되어 있는 스몰렌스크 성당의 이콘제단(Iconostasis)

 

이콘화 (icon) 

이콘화 (icon)는 종교적인 미술과 관계하여 회화 · 조각 · 공예품 등에 나타난 형상으로  
특정한 뜻을 지니고 있으며 그 구도가 일정한 양식에 의해 유형화(類型化)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 불교에도 각각 특유한 유형의 도상이 있는데 특히 8세기 경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도로 하는 라틴계 지방의 동로마 교회 미술의 강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콘화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미술이 아니라 오래된 전통으로 신성시되어 받아들여졌고  
이집트 미술처럼 이콘화의 전통은 엄격하게 지켜졌다.  
하지만 이들 이콘화의 표현 기법은 사실적인 묘사와 그리스 미술과 표현력이 뛰어난  
헬레니즘 미술의 전통이 스며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스몰렌스크 성당의 기둥은 성자들의 프레스코로 가득하다.

 

돔 천장의 예수 프레스코

 

성당 복도

 

수도원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이 대주교를 만나고 있다.

 

Smolensk icon of the Mother of God "Hodegetria", 16 century

 

박물관의 러시아 정교회 전통의상

 

러시아 정교회 주교 모자(主敎冠)

 

러시아 정교회 십자가

 

러시아 정교회 성서

종탑.

1689~1690년에 지어진 종탑은 총 5단이며 전체 높이가 72m이다. 
모스크바 바로크 양식의 종루는 붉은색 벽돌로 쌓았으며 흰색 돌로 장식되어 있다. 
수많은 주거 및 서비스 건물이 수도원담장을 따라 늘어서 있다. 
동서 축에서 멀리 떨어진 종탑을 동쪽 경계와 가까운 곳에 배치한 비범함은 
수도원을 둘러싼 길, 특히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과의 유기적 결합을 강조한다. 
이러한 경관은 도시 배치의 시각적 연결과 건축 공간 배치를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이 방문했을 때에는 공사 중이라 완전히 가린 모습이었다.

 

수도원 병원

수녀원은 자선 단체의 역할도 했다. 
1724년부터 이곳에는 군사 병원과 고아원, 극빈자 수용소가 생겨났다. 
1812년 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 군인들이 수녀원을 폭파시켜 버리려고 했으나, 
이곳에 거주하던 수녀들에게 저지당했다.  

볼셰비키 파가 정권을 잡게 되자, 수녀원은 1922년 폐쇄되었으며 박물관으로 변했다.
그러나 1944년부터는 수녀들이 다시 노보데비치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북쪽 출입문과 연결된 그리스도 변용교회(Church of Transfiguration)

러시아혁명 후인 1922년 이 수도원은 박물관으로 지정되고, 
1934년 이래 국립역사박물관의 분관으로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표트르 성당 (Prokhorov Chapel)

Novodevichy 수녀원의 작은 예배당과 종탑
우리 일행이 방문했을 때 아름다운 종탑이 공사 중으로 저 모양으로 가려져 있었다.

 

표트르 성당 (Prokhorov Chapel)
깜찍하게 생긴 표트르 성당과 스몰렌스키 (성모마리아 Our Lady of Smolensk ) 대성당

 

성 암브로시 메디올란스키 교회(Church of St. Amvrosiy Mediolanskiy) 

16세기~17세기 말엽 옛 식당과 이리닌스키예의 방(Irininskiye chambers)들이 딸린  
성 암브로시 메디올란스키 교회(Church of St. Amvrosiy Mediolanskiy)는  
3채의 주요 벽돌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 1층 및 2층 건물들은 일반적인 건축 표현법으로 말하면 대단히 단순하게 지어졌다.  

교회의 파사드(facade)에는 17세기의 전형인 세부 장식이 되어 있다.  
성모 승천교회와 식당(1685~1687)은 모스크바 바로크 양식으로 된 벽돌 건물이다.  
이 건물은 양파 모양의 돔으로 된 작고 둥근 지붕을 얹은 두 부분을 제외하고는  
주로 낮은 지붕에 1층으로 되어 있다.  
3개의 현관이 건물에서 돌출되어 있고, 

내부는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17~20세기의 성화벽이 있다. 

 

성 암브로시 메디올란스키 교회 (Church of St. Amvrosiy Mediolanskiy)

옛 식당과 이리닌스키예의 방(Irininskiye chambers, 16세기~17세기 말엽)들이 딸린 
성 암브로시 메디올란스키 교회는 3채의 주요 벽돌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 1층 및 2층 건물들은 일반적인 건축 표현법으로 말하면 대단히 단순하게 지어졌다. 
교회의 파사드(facade)에는 17세기의 전형인 세부 장식이 되어 있다. 

 

성 암브로시 메디올란스키 교회를 배경으로 인증샷 

 

수녀원 기숙사

수녀원은 자선 단체의 역할도 했다. 
1724년부터 이곳에는 군사 병원과 고아원, 극빈자 수용소가 생겨났다. 
1812년 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 군인들이 수녀원을 폭파시켜 버리려고 했으나, 
이곳에 거주하던 수녀들에게 저지당했다.

 

수녀원 기숙사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세상사와 인연을 끊고 살아야 하는 귀족자제들의 은둔 장소이기도 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성모 승천교회(Church of the Assumption)

성모 승천 교회와 식당 (1685~1687)은 모스크바 바로크 양식으로 된 벽돌 건물이다. 
이 건물은 양파 모양의 돔으로 된 작고 둥근 지붕을 얹은 두 부분을 제외하고는 
주로 낮은 지붕에 1층으로 되어 있다. 
3개의 현관이 건물에서 돌출되어 있고, 

내부는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17~20세기의 성화벽이 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성모 승천교회(Church of the Assumption)

Novodevichy 수도원의 성모 승천교회는 바로크 사원 식당으로 지어졌다. 
성직자와 왕, 고위 인사들이 이곳에서 자주 식사했다. 
단일 돔 교회와 식당은 높은 지하에 있는 단일 건물이다. 
건물은 흰색 치장 벽토로 무성하게 장식되어 있다. 
창문에는 기둥과 건축가가 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성모 승천교회 인증샷

 

노보데비치 수도원 성모 승천교회 인증샷

 

 

17세기 수도원 모습

 

티모페예프 (Vasily Timofeyev) 장군의 화려한 무덤 (1783 ~ 1850)

노보데비치 수도원 내 묘역에는 아무나 묻힐 수 없다. 
이곳에 묻히기 위해서는 러시아 정부 허가가 필요하다.

 

티모페예프 (Vasily Timofeyev) 장군의 화려한 무덤 (1783 ~ 1850) 측면

노보데비치 수녀원 경내 무덤

노보데비치의 성당과 크렘린 궁전의 성당들은 16, 17세기에 
지배자였던 왕족을 위한 묘지로 이용되었다. 

 

노보데비치 수녀원 경내 무덤

 

노보데비치 수녀원 경내 무덤

 

노보데비치 수녀원 경내 무덤

 

노보데비치 수녀원 경내 무덤

 

노보데비치 수녀원 경내 무덤

 

노보데비치 호수

 

노보데비치 화려한 야경

 

노보데비치 화려한 야경

 

노보데비치 수도원 가정교회 (Church of the Assum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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