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 (Archaeological Museum of Corinth)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은 그리스 코린토스(Corinth)에 있다.
건축가 스튜어트 톰슨(W. Stuart Thompson)이 1932년 완공한 것으로 세 개의 전시실과 대형 뜰로 구성돼 있다.


코린토스에서 발굴된 조각, 도자기, 선사시대의 유물들은 두 개의 주 전시관에 진열되어 있다.
제3전시실에 소장된 아스클레피온(Asklepieion)에서 출토된 테라코타는 예약에 의해서만 볼 수 있다.


박물관은 선사시대로부터 헬레니즘을 거쳐 비잔틴시대까지 다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소장품으로는 기원전 6세기경의 <대리석 스핑크스>,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의 아들로 추정되는 <젊은이의 대리석 초상>,
<디오니소스의 머리가 장식된 모자이크>, <비잔틴 꽃병> 등이 있다.


출입구 옆에 도리아식(doric style), 이오니아 양식(Ionic Order), 코린토식 기둥을 전시해 놓았다.


그리스의 건축 양식


도리아식(doric style)
그리스 미술양식의 하나로 주로 건축양식에 쓰이며 간소한 장중미가 특징이다.
기둥은 기반부가 없는 형상이며, 수직방향의 흠은 매우 얕고 모서리는 각을 이루고 있다.


원래는 목조건축양식을 석조건축에 응용한 것이라고 하는데,
아폴로(Apollo), 파르테논(Parthenon), 헤라(Hera) 신전 등이 대표적인 도리아식 건축물이다.


이오니아 양식(Ionic Order),
그리스 고전 건축양식의 한 가지로, 이오니아로부터 일어나 아테네 전성시대 이래 한 세기동안을 지배하였다.
기둥에 주춧돌이 있고 곡선상의 소용돌이 모양을 한 기둥머리에 그 특색이 있는데 우미(優美)·경쾌한 느낌을 준다.


코린트 양식 (Corinthian order)
알렉산더에 의해 거대한 제국이 건설되자 그리스 미술에도 상당한 변화가 찾아오게 되는데
이는 작은 도시국가의 한계에서 벗어나 아시아까지 뻗어나간 거대한 제국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그리스 미술과 구분되는 이 시대의 미술을 동방에 건설한 제국의 이름을 쫓아 헬레니즘 미술이라고 부른다.


이런 헬레니즘 미술에서 나타난 화려한 장식적 특징을 코린트양식이라고 하는데
코린트라는 이름은 당시 지중해 연안의 교역으로 부유한 상업 도시명이다.


아칸서스 잎을 묶은 듯한 모양의 주두(柱頭)가 특징적인 모습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반적으로 건축물에 화려한 장식이 많이 가미되었다.


특히 동방에 새롭게 건설되는 도시에서 많이 나타났으며 건물은 호화롭게 장식되었다.
아테네의 올림피에이온, 에피다우로스의 원당(圓堂) 등의 열주(列柱)는 그 좋은 예이다.


이 양식은 화려한 장식효과를 즐기던 로마인에 계승되어 곧 복잡하게 구성된 콤포지트양식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건축과는 별도로 BC 7세기경 코린토스 지역에서 만들어진 동방화 양식의 도기(陶器)도 코린트양식이라고 불린다.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 앞 석상들


박물관 앞뜰에 머리가 없는 석상들이 서 있다. 로마시대 복제품들이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조각 작품과 벽화들을 동경하고 부러워했다.


그리스가 로마에 예속되자마자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수많은 미술 작품들을 반출하였다.
그리스의 조각 작품을 많은 로마인들이 소유하게 되면서

그리스에서 들여온 조각 작품들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결과이지만 이 작품을 복사한 사람들 덕분에 그리스 원작이 보전될 수 있었다.
로마시대에는 미리 조각상을 만들어 두었다가

주문자에 맞추어 두상만 따로 만들어 조립해서 납품했다고 한다.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 앞 석상들


로마인들은 그리스 조각뿐 아니라 자신의 초상 조각을 개별 주문해서 자신의 집을 장식했다.
주문자들이 전신을 제작해 달라고 하면 이상적인 신체의 모습을 고를 수 있도록 몸체 조각을 미리 만들어 놓고
주문하는 사람의 취향에 맞추어 몸체에 머리를 얹어 전신 조각으로 조립했다.


이렇게 해서 자기 집 대문 앞에 집 주인을 알리는 문패 삼아 세워 두기도 했다.
박물관 앞에 머리 없는 석상들은 아마도 이런 용도로 사용할려고 미리 만들어 놓은 몸체 조각들인 듯하다.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 출입구


리아체 청동상.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의 마냐 그레치아(Magna Graecia) 국립박물관


로마인들이 그리스 조각 작품들을 반출하기 위해 배에 싣고 가다가

폭풍우나 파도로 바다 속에 잠긴 귀중한 작품들도 많았다.


로마인들이 다른 작품들과 함께 배에 싣고 가다가 바다 속에 있던 리아체 청동상(The Riace Bronzes)이다.

기원전 5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청동 전사상 2점은

1972년 이탈리아 리아체 해변에서 발굴될 때까지 2천 여 년 동안 바다 속에 잠겨 있었다.


위 왼쪽의 머리에 띠를 맨 전사상은 피디아스의 작품(BC460~450)으로,
오른쪽 투구를 쓰고 있는 전사상은 폴리클리투스의 작품(BC430)으로 추정하고 있다.


리아체 청동상은 1972년 8월 16일, 모나스테라체에서 휴가를 즐기던

이탈리아의 젊은 화학자 스테파노 마리오티니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는 칼라브리아 근처의 리아체 해변에서 다이빙을 즐기고 있었고,
해저에서 사람의 다리로 보이는 물체를 발견한 곳은 해변에서 300미터 떨어진 거리에 수심은 8피트였다.

리아체 청동상


리아체 청동상(이탈리아어: Bronzi di Riace)은 나체의 전사를 조각한 두 점의 유명한 그리스 전신 청동상으로,
약 기원전 460년~430년 사이에 주조된 것이다.
현재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의 마그나 그라이키아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두 청동상은 각각 "A"와 "B"로 구분한다.

원래는 방패와 검을 쥐고 있었으며, 지금은 눈동자도 사라졌고 머리숱도 한 움큼 빠졌다.
주로 사용된 것은 청동이지만 이빨은 은이고 눈의 각막은 상아와 대리석, 입술, 젖꼭지, 눈썹은 구리로 되어 있다.

젊은이의 대리석 초상


기원전 550년 제물용 대리석 스핑크스


이집트의 스핑크스가 그리스로 와서 그리스 스핑크스가 되었다.
스핑크스 옆에 날개 달린 대리석 석상이 있는데 코린토스 공예 조각가의 솜씨라고 씌여 있다.


훼손되었지만 아주 아름다운 작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코린토스의 뛰어난 조각 작품이다.


로마시대의 동상들과 모자이크 등이 전시되어 있는 제3 전시관


아프로디테(Aphrodite) 대리석 초상. 고대극장에 있었던 기원전 2세기 원작의 복제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미와 사랑의 여신이다.
여성의 성적 아름다움과 사랑의 욕망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제우스의 딸이라고도 하고 우라노스의 잘린 성기에서 흐른 정액이

바닷물과 섞여 생겨난 거품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주로 탐스러운 가슴을 드러낸 벌거벗은 몸으로 표현된다.

로마 신화의 베누스와 동일시된다.


아프로디테(Aphrodite) 대리석 초상. 옥타비아 신전 페디먼트 장식의 일부.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 대리석 초상.


로마 제정의 초대 황제이자 로마 제국의 첫 번째 왕조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The Julius Claudius Family)"의 시조다.


본명은 옥타비아누스이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이자 후계자였다.
카이사르 사후 경쟁자였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해

권력을 쥐었고, 공화정 로마는 제정으로 변하게 된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 27년부터 서기 14년까지이며,

죽은 뒤, 원로원과 민회에 의해 신격화되었다.


이후 모든 로마 황제들이 그의 황제명인 ‘아우구스투스’와 ‘카이사르’를 이름으로 썼다.
또한 그를 기념하기 위해 기존의 "여섯 번째 달(Sextilis)"을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바꾸어 불렀다.


그의 뒤는 아내 리비아 드루실라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큰 아들이자 아우구스투스의 양자인 티베리우스가 물려받았다.
옥타비아누스의 친구이자 유능한 군사적 조력자였던 장군 아그리파도 유명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Gaius Julius Caesar) 대리석 초상. 1세기 경 제작.


영어 단어 시저(Caesar)는 독일에서는 카이저(kaiser),

러시아에서는 차르(czar) 라고 하지만 모두 황제를 뜻하는 말이다.


황제 중에서도 실권을 장악하고 마음껏 휘두르는 전제군주나 독재자에게 이러한 호칭을 붙인다.
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황제를 뜻하는 시저라는 단어는 실은 로마의 정치가였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로부터 비롯되었다.

 
카이사르라는 이름이 각국에서 다르게 발음되며 모두 황제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황제가 아니었다.


네로(Nero) 흉상


네로 황제가 고린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기원후 60년 경에 제작되었다.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이어지던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기도 하다.


방탕한 생활로 인한 막장성과 정신병자 수준의 광기를 동시에 갖춘 인물로

오늘날까지도 폭군의 대표주자로 꼽히고 있다.


네로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제정신 아닌 짓들을 많이 저지르기는 했으나 네로 본인은 크게 잔인하지도, 정국에 아예 관심이 없지도 않았다.


단지 정치적으로 무능하고 예술가적 기질이 너무 강한데다 몇가지 심각한 실책을 저지르면서
반란으로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스스로 자살하는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후대에는 악명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며 동정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로마 대화재의 배후에 네로가 있었다는 루머는 거의 중상모략에 가깝다.


물론 그렇게 보더라도 네로는 분명 폭군이자 암군이었으며,
여러모로 거대한 제국 로마의 통치자 노릇을 하기에는 부적격한 인물이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스클레피에이온에서 출토된 제우스(Zeus) 두상의 모습. 고대 로마시대 제작.


주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us) 두상. 기원후 2세기.


로마 황제 카라칼라(Caracalla)의 두상.


옷 조각상


조각상


머리와 아래 치마 부분이 잘려나간 여인 조각상.


대리석으로 마치 얇고 부드러운 천을 짜듯 섬세하기 그지없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조각상. 기원전 1세기 후반~ 기원후 1세기 초반.


오른쪽 디오니소스(Dionysus) 흉상


디오니소스는 포도나무와 포도주의 신이며 풍요의 신이자 황홀경의 신이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 여신의 딸 세멜레와 제우스의 아들이다.

로마 신화의 바쿠스(Bacchus)에 해당한다.


고대 코린토스 투구


고대 코린토스 투구


로마시대 조각 작품들


물, 분수가 나오는 입구


로마시대 부조작품. 원형극장 벽면에 있던 것이라고.


조각 양을 메고 있는 헤르메스


올림포스 12주신에 속하는 헤르메스는 제우스와

티탄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혹은 산의 님페라고도 한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령의 신이자 여행의 신, 상업의 신, 도둑의 신이다.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신을 신고 두 마리 뱀이 감겨 있는 독수리 날개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다.


헤르메스는 지상에서부터 지하까지 가지 못할 곳이 없다.
그는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지하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드리옵스의 딸 페넬로페 혹은 드리옵스와 사이에서 판을 낳았고, 아프로디테와 사이에서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낳았다


로마시대 부조작품. 원형극장 벽면에 있던 것이라고.


Crafted corinthian stonecarvers 코린트식 조각가 공예


그리스인과 아마존의 전투.
코린토스 고대극장 무대에는 3가지의 주제를 묘사하는 부조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


아마존(Amazons)은 복수형으로 아마조네스라고도 한다.
전투의 신 아레스와 님프인 하르모니아의 자손으로서, 캅카스 또는 소(小)아시아 지방에 살았다.


여자만의 부족이어서 남자가 태어나면 모두 이웃나라로 보내거나 죽여 버렸고,

씨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계절에 다른 나라의 남자와 만났다고 한다.
여자는 활을 쏘기에 편하도록 하기 위해서 어렸을 때 오른쪽 유방을 도려내 버리고 키웠다고 전한다.


싸움의 신 아레스를 숭배하며 사냥과 전투를 즐겨, 트로이 전쟁에도 참가,
아마존족(族)의 여왕 펜테실레이아는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었는데도

아킬레우스는 아름다운 여왕의 죽은 얼굴을 사랑하였다고 한다.


영웅 헤라클레스는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가 가지고 있던 허리띠를 빼앗고자 원정을 하였고,
테세우스도 공격해 왔으므로, 그녀들이 나서서 반격하였으나 패하였다고 한다.


그리스인과 아마존의 전투


그리스인과 아마존의 전투


헤라틀레스의 12가지 과업 중 아리만토스의 멧돼지 생포


에리만토스(Erymanthus)는 그리스 아르카디아 북부 아카이아에 있는 산이다.
에리만토스의 멧돼지(Erymanthian Boar)는 사방으로 날뛰면서

주변 논밭을 파헤치거나 곡식을 시들게 하는 등의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네 번째 노역으로 이 메돼지를 생포하기 위해 메갈리아로 가던 중

켄타우로스들이 모여 사는 폴로에 숲으로 들어가 족장인 폴로스를 방문하였다.


폴로스는 그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포도주 항아리를 보여주는데,

오래전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켄타우로스들에게 준 선물이었다.


헤라클레스가 그에게 포도주 항아리를 열도록 하자,

물로 희석시키지 않으면 취하게 만드는 포도주 냄새를 맡고 켄타우로스들이 몰려왔다.


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한 헤라클레스는 히드라의 독이 묻은 화살로 그들을 쏘았고,

화살에 맞은 많은 켄타우로스가 죽게 된다.


켄타우로스 중 우두머리인 알레토스는 케이론의 동굴로 도망친다.
헤라클레스가 알레토스에게 쏜 화살은 그의 팔을 꿰뚫고 형제 케이론의 무릎에 꽂히게 된다.


케이론은 영생불사의 능력이 있었기에 죽지는 않았지만, 대신 불치의 상처로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되자
후에 자신의 불멸을 프로메테우스에게 양도하고 죽게된다.


한편 켄타우로스 폴로스는 강력한 헤라클레스의 화살의 위력을 궁금해하며

만져보다 떨어뜨려 자신의 발굽에 찔리게 되어 죽게 된다.


메갈리아에 도달한 헤라클레스는 큰 소리를 질러 멧돼지를 수풀에서 몰아내고

골짜기에 두껍게 쌓인 눈 더미로 몰아서 지치게 하였다.


멧돼지를 생포하는데 성공한 헤라클레스는 멧돼지를 어깨에 매고 에우리스테우스에게로 갔다.
멧돼지를 보고 겁이 난 에우리스테우스는 항아리에 숨어서 멧돼지를 없애라 요청하는데,
이 장면은 고대의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소재가 되었다.
멧돼지는 헤라클레스가 아르고스의 왕 앞에서 때려죽인 것으로 전해진다.

신들과 기간테스(Gigantes, 거인족)의 전쟁


올륌포스 신들과 기간테스(Gigantes, 거인족)의 전쟁은 마지막 신들 간의 전쟁이었다.
올륌포스 신들은 먼저 티탄족(Titanes)과 전쟁을 치른 후에 튀폰 (또는 튀포이오스)과의 대결을 치르고

마지막으로 기간테스와 전쟁을 한다.


기간테스는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할 때 떨어진 핏방울을 가이아가 받아서 처녀생식으로 낳은 자식들로

바로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자식들이다.
그들은 티탄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올륌포스의 젊은 신들과 전쟁을 벌였다.


올륌포스 신들은 기간테스를 이기기 위해 인간 어머니들에게서 태어난 두 명의 신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바로 디오니소스와 헤라클레스였다. 이들 외에도 제우스의 자식들도 맹활약을 벌였다.


특히 아테나 여신은 자신의 유명한 별칭들 중 하나인 팔라스(Pallas)라는 이름과 동일한 거인을 만나

그의 살갗을 벗겨내 방패가죽으로 사용했으며, 또

한 엥켈라도스(Enkelados)라는 거인을 시실리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영웅을 숭배함

고대 그리스 신앙생활의 독특한 영웅숭배를 묘사한 작품.


영웅숭배는 고대 그리스 종교생활의 독특한 양상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영웅들이 죽은 후에 무덤이나 야외 신전에서 의식을 행하여 그들을 추앙하였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기리는 무덤이나 신전에는 마치 연회인 듯한 곳에서 영웅들이
카우치 (소파와 침대의 중간 기능을 하는 의자)에 누어 숭배자의 제물들을 받는 것처럼 표현된 조각물을 봉헌했다.


레카이온 대로 서쪽에 있던 바실리카 파사드를 장식했던 프리기야 노예조각.


테베를 공격하는 일곱 장군(Seven Against Thebes)의 출발을 묘사한 석관.


테베(Thebes) 왕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친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친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한 뒤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나라 밖으로 쫓겨났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1년씩 번갈아 테베를 다스리기로 하고

먼저 에테오클레스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에테오클레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폴리네이케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를 거부하였다.
아르고스로 간 폴리네이케스는 왕의 궁전 입구에서 칼리돈 왕 오이네우스의 아들로서

살인죄를 짓고 쫓겨난 티데우스와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한편 두 딸을 각각 사자와 멧돼지에게 시집보내라는 신탁(神託)을 받은 아르고스 왕 아드라스토스는

두 사람의 행색을 보고 신탁의 의미를 깨달았다.


폴리네이케스와 티데우스는 각각 사자 가죽과 멧돼지 가죽을 몸에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드라스토스는 두 딸 데이필레와 아르게이아를 폴리네이케스와 티데우스의 아내가 되게 하였다.

아드라스토스는 두 사위가 차지하여야 할 테베와 칼리돈의 왕권을 되찾기로 하고,

먼저 테베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모았다.


아드라스토스가 총사령관이 되고 폴리네이케스와 티데우스를 비롯하여
파르테노파이오스·카파네우스·히포메돈·암피아라오스 등 7명의 장수가 군사들을 지휘하였다.


7장군에는 총사령관 아드라스토스를 빼고 이피스의 아들 에테오클로스를 넣기도 하고,
폴리네이케스 대신 아드라스토스의 형제인 메키스테우스를 넣기도 한다.


예언자 암피아라오스는 이 전쟁에서 질 것이고 전쟁에 참가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가담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내 에리필레가 폴리네이케스로부터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결혼 예복을 뇌물로 받고 부추기는 탓에 참전하게 되었다.


아드라스토스는 군사들을 이끌고 테베를 포위한 뒤 공격에 앞서 티데우스를 협상 사절로 보냈으나,
에테오클레스가 왕위를 양보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하여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편 티데우스는 테베에 머무는 동안 테베인들과 운동시합을 하여 모두 이겼다.
화가 난 에테오클레스는 티데우스가 돌아가는 길에 50명을 매복시켜 죽이려 하였다.
티데우스는 이들과 싸워 49명을 죽이고 하이몬의 아들 마이온만 살려 주었다.


폴리네이케스는 아테네 부근 코로노스에 살고 있던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찾아가

 테베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축복을 내려달라고 간청하였는데,

이는 오이디푸스의 지지를 받는 쪽이 승리할 것이라는 신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아들에게 모욕을 당한 바 있는 오이디푸스는 축복 대신 저주를 내렸다.
이에 반하여 테베 측은 승리를 보장하는 예언을 들었다.


7장군의 공격이 한창 치열할 때,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스파르토이의 자손으로서

동정을 지키고 있는 남자가 희생해야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에 크레온의 아들 메노이케우스가 성벽에서 용의 동굴로 몸을 던져 희생하였다.
이는 테베를 건설한 카드모스가 군신(軍神) 아레스의 아들인 용을 죽여 신의 저주를 산 데 대한 속죄의 의미였다.


테베의 성에는 7개의 문이 있었다.
폴리네이케스는 에테오클레스가 지키는 힙시스타이 문, 티데우스는 멜라니포스가 지키는 프로이티다이 문,

파르테노파이오스는 악토르가 지키는 보라이아이 문, 카파네우스는 폴리폰테스가 지키는 에렉트라이 문,

히포메돈은 히페르비오스가 지키는 온카이다이 문, 암피아라오스는 라스테네스가 지키는 호모로이다이 문,
에테오클로스는 메가레우스가 지키는 네이스타이 문을 각각 공격하였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격투를 벌이다 모두 죽어 오이디푸스의 저주가 이루어졌다.
티데우스는 멜라니포스와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그를 죽였으나, 자신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티데우스는 여신 아테나의 뜻으로 불사신이 될 수도 있었으나, 암피아라오스의 방해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자신을 끌어들인 폴리네이케스와 티데우스를 증오한 암피아라오스가
여신의 의도를 눈치채고 멜라니포스의 목을 잘라 티데우스에게 던져 주었던 것이다.
티데우스는 잘린 목의 골을 파먹었고 이 광경에 아테나도 그가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밖에 파르테노파이오스는 페리클리메노스가 던진 돌을 맞고 죽었으며,
카파네우스는 제우스도 자신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오만한 말을 한 벌로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죽었다.
암피아라오스는 페리클리메노스의 창에 찔리려는 순간, 제우스가 벼락으로 갈라 놓은 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결국 7장군의 테베 공략은 실패로 끝났으며 아드라스토스만이 살아서 아르고스로 돌아갔다.
10년이 지난 뒤, 암피아라오스의 아들 알크마이온 등 7장군의 후예들인

에피고노이(단수형은 에피고넨)가 다시 테베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테베공략 7장군에 관한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인기있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다.
이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으로는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테베공략 7장군 Hepta epi Thēbās》,

안티마코스의 서사시 《테바이스 Thebais》 등이 있다.


디오니소스 얼굴이 있는 모자이크 바닥. 2세기 중반에서 3세기 초반 작품으로 추정.


코린토스에 있던 로마시대의 한 빌라에서 발굴된 디오니소스 모자이크.
원의 중심에 머리를 상아와 과일로 장식한 디오니소스 얼굴이 그려져 있고

그 둘레를 삼각형이 연이어진 기하학적 문양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목가적 풍경의 목동 모자이크


출입구 위 천장 아래를 장식했던 모자이크


벽을 장식했던 프레스코화


각종 신체부위 조각 작품


고대 코린토스에서는 사람이 병에 치유된 신체 부분을 점토로 만들어

치유의 신 아스클레오피스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각종 신체부위 조각 작품


남성 성기 조각.
매음업이 번성했던 환락과 타락의 도시 코린토스에 성병이 만연했던 까닭인듯.


석관. 코린토스 돌 조각가의 작품.


코린토스 인들은 석회석을 능숙하게 깎아 신전과 공공건물과 심지어 석관까지도 조각하였다.
코린토스인 돌 조각가들은 인기가 많아 에피다우로스와 델피의 중요한 신전을 건설하는데 초빙되었다.


유골과 부장품 (부장품 제작 기원전 590년~570년)


석관


석관 뚜껑



참조 ; https://blog.naver.com/felwithe/221346632800
https://blog.naver.com/springborn/221296566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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