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e Esteban Murillo 1618~1682)


안달루시아 세비야 출생. 17세기 에스파냐 회화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고아가 되어 불운한 소년기를 보냈지만, 1639년까지 J.카스틸료 밑에서 그림공부를 하여 화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이어 세비야화단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주로 이탈리아의 S.라파엘로(1483∼1520), I.코레조(1494∼1534) 등과

북유럽회화의 거장 P.P.루벤스(1577∼1640), A.반다이크(1599∼1641) 등의 명작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그 때까지 색조에 약간 차가운 느낌을 주던 세비야파적(派的) 그림에서
점차 안정감과 미감(美感)을 띤 훈훈한 느낌을 주는 화풍으로 바뀌었다.


그가 즐겨 그린 성모화는 미묘한 명암과 우아한 형태, 따사로운 색조 속에 자애와 경건함이 가득한 감미로운 작풍그림으로

그를 ‘에스파냐의 라파엘로’라고까지 불렀다.


거리의 거지를 소재로 한 작품도 많으며,

그들 작품에서는 어떤 감미로움이 감돌면서도 날카로운 사실력에 의해 독특한 매력이 풍긴다.


한편 1660년에 신설한 세비야 아카데미의 회장이 되어서는 많은 조수와 제자를 길러냈다.

벨라스케스(1599∼1660)와 함께 에스파냐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로,

풍속화가 ·초상화가로서도 재능을 발휘하였으며, 다작의 화가였다.


작품으로 1645∼1646년 세비야프란시스코수도원의 복도에 그린 11장의 그림은 풍속화와 종교화, 사실과 종교적 정감의 결합이고,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원죄 없는 마리아의 발현>(1678)은 그의 예술을 대표하는 작품이며,

<로마 지방관의 꿈>(1664)에는 깊은 종교적 정열이 담겨져 빛과 색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무리요의 작품은 프라도 미술관 이외에도 런던 내셔널 갤러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

독일 러시아 미국 등 전세계 중요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무염시태〉 캔버스에 유채 / 274×190cm / 1678년경 제작 / 프라도 미술관


‘무염시태’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마리아 역시 원죄없이 태어났다고 믿는 가톨릭 교회의 교리이다.
마리아는 흔히 그 순결함을 강조하는 백합과 더불어 장미, 초승달 등과 함께 그려지곤 했다.


백합이나 장미가 주로 ‘수태고지’ 장면에 그려진다면, 초승달은 특히 ‘무염시태’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이는 《요한의 계시록》 12장에 기록된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아래에는 달이 있고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처녀의 신으로 초승달이 상징인데,
마리아의 순결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를 차용한 것으로도 본다.


엄격한 가톨릭 국가였던 17세기의 스페인에서는 반종교개혁의 정신을 드높이는 종교화 제작이 활발하였고,

특히 무염시태와 관련한 그림이 프란시스코 파체코(Francisco Pacheco, 1564~1654)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그려지곤 했다.

파체코는 벨라스케스의 장인이자 당대 최고의 화가이며 미술 이론가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회화의 기술(arte de la pintura)》(1649)에서 마리아는

“햇살 가득한 천국에서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순백의 옷과 푸른 외투를 입고

머리에는 열두 개의 별이 빛나는 후광과 왕관을 쓰고 발밑에는 초승달을 딛고 서서 두 손은 가슴에 기도하듯 포갠”

모습으로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마리아의 무염시태> 캔버스에 유채. 144×206cm. 1660~1665년경 제작. 프라도 미술관


17세기 세비야의 대표적 화가로, 한때 수르바란이 차지하고 있던 모든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돌려버린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e Esteban Murillo, 1617~1682)는 성모상을 무려 50여 점이나 그렸는데

그중 무염시태와 관련한 그림이 절반에 가깝다.


성모는 파체코의 말대로 햇살 가득한 천국 어딘가에서 하얀 옷을 입고,

푸른 외투를 걸친 채 발치 아래 초승달을 두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모 주변에 가득한 앙증맞은 천사들은 라파엘로의 귀엽고 통통한, 그리고 장난기 가득한 천사들과 많이 닮아 있다.
수르바란의 그림들이 신비롭고 명상적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근엄한 반면,

무리요의 그림은 따뜻하고 다정한 색감과 좀 더 인간적인, 따라서 친밀한 느낌을 준다.

<조개껍질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 캔버스에 유채. 124 x 104 cm. 프라도 미술관


〈성가족〉 캔버스에 유채 / 144×188cm / 1650년경 제작 / 프라도 미술관


무리요는 세비야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삼촌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이내 벨라스케스의 눈에 띄어 그로부터 본격적인 수업을 받게 되었다.

무리요가 태어날 무렵인 17세기 초반의 세비야는 파리, 나폴리 등과 함께 당시 유럽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도시였다.
인구 15만에 육박했던 세비야는 수도인 마드리드보다 규모가 훨씬 큰 도시로,

과달키비르(Guadalquivir) 강의 항구를 통해 신대륙과의 무역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경제 발전은 예술 작품에 대한 수요로 이어져 벨라스케스, 수르바란, 무리요와 같은

스페인 최고봉의 화가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무리요는 세비야의 귀족과 고위 성직자들의 수집품에 섞인 라파엘로, 루벤스,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 등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다.


‘스페인의 라파엘로’라 불릴 만큼 세련되고, 또 다정하며 감미로운 화풍의 무리요는 종교화뿐 아니라

당대 소시민들의 삶을 담은 장르화나 초상화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성가족〉은 제목을 모르고 본다면, 고아로 자란 무리요가 꿈꾼 따사로운 가정을 담은 장르화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이 예수의 가족(성가족)을 그린 종교화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그림 속 인물들이 가진 지물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왼쪽의 마리아는 물레를 놓고 실을 풀고 있다.

성서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 책에 따르면 마리아는 성전의 휘장을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을 만큼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다.


서양으로 전해진 서아시아 지방의 전설에 따르면 운명을 지배하는 달의 여신은

‘숙명의 실을 감는 자’라 하여 거미줄 한가운데 있는 거미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 달의 여신은 ‘처녀의 신’ 아르테미스이다.
동정녀로 인류 전체의 숙명을 책임질 마리아가 가끔 실을 잣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런 전례를 따르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림 중앙에는 아기 예수가 새를 잡은 채 강아지와 장난치는 모습이 보인다.

손에 잡힌 새는 곧 예수 자신의 희생을 의미한다.
더없이 따사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 요셉 옆의 탁자에는 그가 목수임을 가리키는 이런저런 공구가 그려져 있다.

<주화를 든 소녀 (갈리시아인)> 캔버스에 유채. 43 x 63 cm. 1650년작. 프라도 미술관


<로사리오를 든 성모> 캔버스에 유채. 110 x 164 cm. 프라도 미술관


<레베타와 엘리에셀> 캔버스에 유채. 171 x 107 cm. 프라도 미술관


<적선하는 성 토마스 드 빌라뉘에바> 캔버스에 유채. 283 x 188 cm. 세비아 미술관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22cm x 107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참조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32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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