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캔버스에 유채. 179×94cm. 1639~1641년 제작. 프라도 미술관 1층 15실
〈이솝〉은 왕실 사냥터에 세워진 별장 토레다데라파라다(Torreda de la Parada)의 벽면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작품이다.
우리에게 <이솝 우화>로 유명한 이솝은 기원전 6세기 인물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
따라서 이 그림은 실제 모델을 두고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벨라스케스가
그에 대한 지식과 관념으로 만들어낸 상상적 인물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벨라스케스의 이솝은 이탈리아의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델라 포르타(Giovanni Battista della Porta, 1542?~1597)가 쓴
인상학 서적의 ‘황소머리 유형’을 참고했다.
이솝은 학식과 재능에서는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였지만,
노예로 태어나 델포이 신전에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다는 누명을 쓰고 절벽에 떠밀려 죽은 비운의 인물이다.
소크라테스도 추남 중의 추남이었다고 하나 이솝은 그보다 더 흉했고,
심지어 곱사등이에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 이솝은 허름한 옷차림과 주름 가득한 큰 얼굴의 볼품없는 중년 남성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무심한 듯 던지는 시선 속에서 알 건 다 아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현자의 총기가 서려 있다.
짙은 어둠의 왼쪽 벽 배경은 오른쪽으로 갈수록 점차 옅어져 바닥의 물건들과 함께 공간의 실제감을 높이고 있다.
<광대 파블로 데 바야돌리드>. 캔버스에 유채 / 214×125cm / 1636~1637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15실
〈광대 파블로 데 바야돌리드〉의 경우는 벽과 바닥을 가르는 경계도 없으며,
그곳을 실제 공간처럼 느끼게 하는 어떤 것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경의 색조와 빛의 양을 미묘하게 조절한 뒤 마지막 방점처럼 찍은 그림자 때문에
인물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바닥에 발을 붙이고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기막힌 배경 처리는 고야나 벨라스케스 등 스페인 회화에 깊은 감동을 받은
프랑스의 19세기 화가 마네가 〈피리 부는 소년〉을 그리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바닥에 앉아 있는 난쟁이>. 캔버스에 유채. 106.5×81.5cm. 1645년경 제작. 프라도 미술관 1층 15실
〈바닥에 앉아 있는 난쟁이〉는 돈 세바스티안 데 모라(Don Sebastian de Morra)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거의 움직이는 장난감 수준의 취급을 받던 이들 난쟁이는 꽤 높은 보수를 받긴 했지만
때로는 심지어 어린 왕자나 공주가 받아야 할 체벌을 대신 받기도 했다.
두 발을 나란히 한 채 앉아 있는 난쟁이는 아마도 화가의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뭉툭한 손과 짧은 다리는 그의 신체적 결함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지만, 날카롭고 강직한 눈매에는 위엄이 살아 있다.
이처럼 벨라스케스는 비단 합스부르크 왕족이나 고관대작뿐 아니라 왕실을 지키는 시종, 시녀, 그리고 광대나 난쟁이 등도 자주 화폭에 담았다.
아무래도 왕가의 초상화보다는 이런 인물들을 그릴 때 좀 더 자유롭고 과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란시스코 레스코노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07×83cm. 1643~1645년 제작. 프라도 미술관
<광대 돈 크리스토발>. 캔버스에 유채 / 200×121cm / 1637~1640년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7. 디에고 벨라스케스 〈바쿠스〉 캔버스에 유채. 165×225cm. 1629년경 제작. 프라도 미술관
19세기의 위대한 프랑스 화가 마네로부터 ‘화가 중의 화가’로 격찬받은 벨라스케스는
16세기 마지막 해에 당대 스페인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세비야의 이달고(Hidalgo)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달고’는 주로 돈을 주고 산 귀족 혹은 몰락하여 별 볼 일 없는 귀족을 의미한다.
벨라스케스가 그토록 자신의 ‘계급’에 집착한 것은 바로 이 출신 성분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훗날 자신의 장인이 된 프란시스코 파체코에게서 그림을 배웠는데, 파체코는 화가이기도 했지만 뛰어난 인문학자로
당대 지식인들과 교류가 왕성해서 벨라스케스에게 그림 이상의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세비야는 당시 ‘보데곤’이라고 부르는 장르의 미술이 발달했다.
원래 ‘선술집’을 의미하는 보데곤은 현재 스페인에서는 정물화를 일컫는 말로 쓰이지만 17세기 스페인에서는
음식이나 부엌 집기, 그릇 등을 주제로 하고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묘사하는 그림을 의미했다.
초기 벨라스케스는 이 보데곤의 전통을 담은 여러 그림을 제작하곤 했으나,
곧 종교재판소의 예술 분야 자문을 담당했던 장인 파체코의 의견을 좇아 종교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한 펠리페 4세는 국사의 대부분을 올리바레스(Gaspar de Olivares, 1587~1645) 재상에게 일임했는데,
세비야 출신인 재상은 같은 고향 사람인 벨라스케스를 궁정화가로 추천해 그의 마드리드 입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벨라스케스는 궁정화가들이 참여한 회화 시합에서 승리하면서 왕의 신임을 얻게 되고,
이윽고 〈바쿠스〉를 제작해 왕의 마음을 확고하게 사로잡게 된다.
이 작품은 술의 신 바쿠스(디오니소스)가 농부들 틈에 앉아 한 사람에게 화관을 씌워주는 장면으로 연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농부들은 비천한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지만, 벨라스케스는 그들을 힘겨운 노동을 이겨낸,
그야말로 신의 축복을 받을 만한 존재로 그리고 있다.
한동안 〈술꾼들〉이라는 제목으로 불렸던 이 그림은 중앙의 모자를 쓴 남자의 흥겨운 표정에서 보듯
낙천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다른 인물들보다 훨씬 매끈하고 환한 피부를 가진 바쿠스는 카라바조의 〈바쿠스〉를 차용한 것으로 보이며,
중앙의 인물은 벨라스케스가 흠모하던 스페인 화가 호세 데 리베라의 인물 유형과도 흡사하다.
화면 아래 바쿠스의 발치에 놓인 술병, 그릇, 술잔 등은 보데곤 화가로서 쌓아올린 벨라스케스의 정확하고
사실적인 묘사 기술이 집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불카누스의 대장간〉 캔버스에 유채 / 223×290cm / 1630년경 제작 / 프라도 미술관 1층 11실
펠리페 4세의 신임을 얻게 된 벨라스케스는 당대 유럽 최고의 화가로 전성기를 맞고 있던 루벤스가
스페인에 잠시 체류하던 시절, 그와 직접 대면할 영광을 맞게 된다.
벨라스케스는 루벤스의 충고대로 이탈리아 여행을 꿈꾸게 되고,
이윽고 왕의 허락을 받아낸 뒤 제노바, 베네치아, 그리고 로마와 나폴리 등에 1년여 동안 머물게 된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에 머물던 시절 남긴 걸작이다.
화산을 연상시키는 용광로에서 일을 하느라 대장장이의 신으로 알려진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는 신화에 의하면
주피터르의 바람둥이 기질에 잔뜩 독을 품은 아내 주노(헤라)가 남편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혼자 만들어 낳은 아이로,
화가 치민 주피터르의 발길질에 올림포스 산에서 떨어져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한다.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아폴론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이가 바로 불카누스로,
그의 몸이 비스듬한 것은 바로 그의 다리가 성치 못하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비운의 불카누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것을 다 만들어내는 기막힌 기술로 신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며,
급기야 미의 여신 비너스와의 결혼에도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의 ‘바람둥이 양대 산맥’ 중 하나가 남신 주피터르라면, 여신은 단연코 비너스이다.
그녀는 마르스(아레스)와 사랑에 빠졌고, 그림은 이를 태양의 신 아폴론이 고자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림 속 불카누스는 다른 일꾼들과 마찬가지로, 대장장이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서민적인 분위기를 풍기고는 있지만 군살 없이 탄탄하고 대리석 같은 피부를 지닌 그야말로 완벽한 몸매는 ‘
인체의 이상화’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통을 벨라스케스가 습득한 결과로 보인다.
오른쪽 일꾼이 막 다듬고 있는 갑옷은 빛이 닿는 부분에 일어나는 색의 변화를
면밀하게 잡아내는 베네치아 화가들의 화풍을 떠올리게 한다.
마찬가지로 아폴론이 두르고 있는 붉은 옷의 색조를 빛의 강약에 따라 미묘하게 변주시켜낸다거나
쇠를 달구는 솥, 일꾼들이 걸친 옷가지 등의 질감을 표현해내는 능력은
티치아노나 틴토레토의 능숙함과 비견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가 애초에 누군가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것이 아니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진일보된 기량으로 완성한 이 작품은
스페인으로 돌아오자마자 펠리페 4세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팔렸다.
참고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39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35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4XX4810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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