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06월 15일 12:40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14:00 중국 항주국제공항에 도착.

(2시간 20분 소요, 시차 -1시간) 


▲ 항주국제공항에서 대학교 후배이기도 한 송영길 전 인천시장이 우리 인문기행 일행에 합류했다.

공항에서 숙소 크라운플라자 호텔로 이동 중.

  

▲ 황산 크라운플라자 호텔로 이동(3시간 30분 소요)





안휘성 지도  ⓒ《중국인문기행》p224.


안휘성은 중국 중앙부 양자강(揚子江) 하류 유역에 있다.

성수기에는 안휘성의 최남단인 황산까지 가는 인천발 직항이 있는데, 이번에는 비수기라 항주(抗州)를 거쳐서 갔다.


인천공항에서 항주공항까지는 1시간 45분, 항주공항에서 황산시내까지는 버스로 3시간 30분이 걸렸다.

* 항주공항 : 예전의 소산(蕭山)공항.


▲ 이번 인문기행에 참가한 분들이 함께한 기념 촬영.


부부로 오신 6쌍 12분, 부자 1쌍 2분, 중국에서 거주하고 있다가 항주공항에서 합류한 2분,

서울대, 서강대 등 대학에서 정년 퇴임하신 분들과 교장 선생님을 마치고 정년 퇴임하신 분들,

다산 인문학 강좌 등을 통해서 참여하게 된 분 등 34분과 송재소 교수 등 스텝 4분

그리고 조선족 현지 안내원을 더하여 총 39분이 이번 기행에 함께하고 있다.


 당월패방군(棠樾牌坊群) / 포가화원(鮑家花園)  


올해 국가급 여행 풍경구 AAAAA로 승격된 당월패방군은 총 7개의 패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패방은 명·청대에 이르는  400여 년 동안 당월촌의 포(鮑)씨 가문에서 배출한

충신, 효자, 열녀들의 공덕을 널리 선양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황산시(黃山市) 시정부 소재지인 둔계구(屯溪區)에서 27km, 흡현고성(歙縣古城)에서 10km 정도 가면 된다.

여기에는 송,원나라부터 명청시기에 이르기까지 800여 년된 고촌락-당월촌이 있으며

장엄한 7개 패방, 듬직하고 우렁찬 남사당, 청아하고 유일한 여사당,

포씨가문의 효도를 요해할 수 있는 효도사당과 각종 종법, 공익, 문회, 서원, 의창 등 기념 건축물이 있다.


  패방군과 연결되어 있는 포가화원은 역사를 전제로 하여 휘상저택원림을 배경으로 하였으며,

분재를 주제로 국내외 각종 유명한 분재가 있으며 정자 등 원림 건축물이 있다.


휘주문화의 대표로 손색이 없는 웅대한 규모를 보여주고 있고 정원의 중심에 위치하며

호수, 나무 ,가산, 꽃들이 잘 어우려져 황홀한 경관을 만들었다.


풍경구는 2005년도 국가여유국으로부터 4A급 여유경구로 평선되였으며 황산시 <10가> 여유명소로 되어 있다.

당월패방군에는 고대의 패방, 사당, 민가는 <휘주고건축 3절>로서 걸작들이 모여 있으며

한폭의 아름다운 휘상고리도를 그리고 있다.


* 위치 : 안휘성 황산시 흡현. www.paifangqun.com

* 당월(棠樾) : 팥배나무 그늘.《시경》<감당(甘棠)>편에 '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이라 함.

棠은 '팥배나무, 아가위나무', 樾은 '나무 그늘'의 뜻.


고휘주문화여유구전경도(古徽州文化旅游區全景圖)  http://www.guhuizhouta.com


棠樾牌坊群(당월패방군) 강택민(江澤民, 1926~ ) 서


풍경구 개요


 황산 흡현 패방군 포가화원 풍경구는 산수가 아름다운 흡현 당월촌 내에 위치해 있다 .

고패방,고사당,고민가,포가화원으로 조성되었다.


여기는 고성흡현과 10 떨어져 있고 시정부가 위치해 있는 둔계하고는 27 떨어져 있다.

당월은 포씨 가문이 집거하고 있는 지역이다.


가문은 남송시 건연 년간에 자리를 옮겨 여기에 와서 정착하기 시작해서 거의 800여 년 동안 살았다고 한다. 

 ,,, 핵심으로 석패방은 양쪽에서 중간으로 순서대로 차례로 배렬되어 반호형으로 펼쳐져 있다.


서에서 동으로 순서가 포찬효행방,자효리방,포문령처왕씨결효방,락선호시방,

포문연처결효방,포봉창효자방,포상현상서방으로 되어 있다.


일곱개 패방은 엄숙하고 정엄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조용하고 품이 있게 서 있는 돈본당 남자사당은 북쪽에 앉아 남쪽을 향하고 있다.


세 개 문, 다섯 개 방이고 오풍루문정으로 전체 구조는 간결하고 훤하게 지여졌다.

은행나무를 기둥으로 하고 장목은 들보로 쓰고 벽돌, 나무, 돌조각들을 사용하여

곳곳마다 유가인생철리와 문화수양을 드러낸다.


중합지미 뚜렷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사당안에는 종족관리제도를 새긴 비각들과 <가경상유삼도비>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는 종법제도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실례들이다.

 둘도 없는 청이당 즉 여자사당은 남쪽에 앉아 있고 북쪽을 마주하고 있다.


다섯 개 문 삼진 마두벽으로 전체 사당의 구주는 치밀하게 잘 짜여져 있고

그 조형은 유창하고 안은 수려하고 밖은 소박하여  단정한 느낌을 준다 .


사당의 벽은 전부 벽돌조각으로 되어 있어 그 모습 또한 아기자기한 느낌을 줄 뿐만아니라 화채롭다.

그리하여 휘주지방에서 사당돌 조각의 으뜸으로 불리운다.


 패방군과 인접되어 있는 포가화원은 휘상개인 정원을 배경으로 하여 휘파분재를 주제로 삼아

휘파분재 예술의 정화들이  모여 있고 동시에 국내에서도 각지방파 분재들의

대표작품들이 집결되어 있어 이는 하나의 비교적 고품격의 분재 관광기지이다. 


이 정원 면적이 21.73 헥타르이고 그 중에 인공호수와 분재정원이 각각 5.33 헥타르 차지한다.

분재의 만발을 전시하고 정원에 여러가지 분재 품종이 모두 갖춰져 있다.


형태가 다양하고 아기자기하며 서로 아름다움 모습을 다투며 자랑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하나의 대형산수조합이라고 할수 있다.


풍경구는 국가중점문물보호단위이고 세계문화유산신보지,국가4A급 여행풍경구이며

또한 "황산시십가여행 풍경구이다.



역사적 기원


 당월은 흡현시내에 1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북쪽 소나무 우거진 능선의 용산을 가까이 하고 있고  남쪽 분지-평원옥야을 인접하고 있다.


근원 황산의 풍낙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멀리로는 부정산을 평벽으로 풍수설에서

산을 베고 물을 안고 평원을 마주하고 있다라고 선택할수 있는 이상적 위치다.


지금까지 여전히 마을 입구에 역대에 흥건된 일곱 높고 거대한 석패방군이 우뚝 솟아 있어

휘주에 둘도 없는 장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동시에 마을안에 현재 보존하고 있는 사당 민가 화원도 휘주특색의 대표성을 반영하고 있다.

당월촌의 형성은 남송건연년간 ( 1130)까지 추적할 다.


부읍 (지금의 흡현현 시내) 서쪽문은 으로 유명한 포용이 높은 관직은 못했어도

평생 서향마을에서 산업을 넓혀 차츰 부자가 되었다.


그는 지금의 당월을 이상적인   휴한지소를 만들수 있는 곳임을 욕심내고 여기에 별장을 지었다.

후에 당월포씨는 그를 시조공으로 존칭했다.


포용이후 당월은 단지 한 곳의 포씨가문의 또 다른 원림업이었고 따로 건설을 하지 않았다.

사세종손 포거미는 산천이 아름답고 원전이 넓어 자자손손 백세대업을 일을수 있겠노라해서

부읍서문에 집식구들을 데리고 당월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팔백여년간 당월촌은 포씨씨족들만이 사는 곳으로 되었고 

성쇠기부를 거쳐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다.

 

 패방은 황산에 부여한 역사 훈장이다.

역사상에 매세대마다 황산(휘주)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나왔다.


이팅구이, 주희, 호개문, 왕모음, 대진, 호정, 도행지, 황빈홍 등 걸출한 인물들이  태어났다.

흡현에서만 해도 명청 두 조대에 524명의 진사 ,1531명의 거인, ”부자상서”, ”동포한림들로 마을의 명성을 높였고

연과삼전선,십리사한림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아 있다.


더우기 이 주리학의 고향에서는 부녀들은 봉건주의 절개를 지켜야 한다는 관념 때문에 깊은 해를 받았고

유림외사에서 나오는 왕삼구와 같은 절부열녀들이 아주 많이 나왔다.


 구시대에 충효결의우수했던이런 사람들을 표창하기 위해서 황산시 각 지방에는 대량의 패방들이 세워졌다

그 역사 흔적들은 여러번 파손을 당했지만 지금까지도 100여 좌의 패방들이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당월패방군이 바로 그 중에 대표작이다.

 당월패방군은 7 패방이 명나라 3 청나라 4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으며

봉건사회 충효결의론리도덕의 개요를 묘사해 냈다


그 중에 명나라 패방의 횡편에는 어제자효리라는 대자가 새겨져 있다

황제가 휘상 포수손부자를 표창하기위해서 세워준 거다


역사책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원나라 때 흡현의 수장이 달이 부대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서 백성들을 노략하고 살해했다.

그때 당월포씨 부자는 반란군에게 잡히게 되었는데 한사람만 살려준다구 누가 죽고 누가 살지를 결정하라고 했다.


그런 부자는 서로 자기가 죽기를 다투고 대방을 살려 달라고 하는데

그 행동이 하늘도 감동시킬 정도로 심지어 반란군도 감동되어 차마 죽일수가 없어서 사람을 풀어 주었다고 한다.


 후에 조정에서 이 일을 알고 그들을 표창하기 위해서 이 패방을 하사하였다.

청나라 건융황제도 포씨종사를 위해 제련하기를 : ”자효천하무쌍리,금수강남제일향.” 

그리고 전해지기를 당월포씨 가문은 그 때 벌써 ””””패방이 있었고 패방만 없었다고 한다.


그 마을 포씨세가 에서 포숙방시기에 양회소금운송관리로 강남염업 명맥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황제에게 자 패방을 세울 수 있게끔 청하여 가문을 더욱 빛내기 위해서

양식 십만단과 은3만 냥을 받쳐 제방을 팔백리나 재보수했고  세 개 성의 군사들의 양식을 부여하였다.  


그 공로로 결국 조정에서는 허락을 해 주었다.

그리하여 당월촌 마을 입구에는 또 하나의 호선락사라는 의자패방이 세워졌다

흡현에서 많은 패방들 중에서 이같은 이상입사,이사보상정치적 경제적 상호 일관성의 긴밀한 관계는 종종 볼수 있다.

 

일곱개 패방


패방(牌坊)은 문짝이 없는 대문 모양을 가진 중국 특유의 건축물이다.

본래 집의 출입문이나 마을의 입구에 마을을 드나드는 문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그리고 궁정, 능, 사당, 관청을 비롯하여 절의 어귀에도 세운다.

 패방은 훌륭한 인물을 기리는 기념물인 경우가 많다.


인물과 관련된 기념물로써의 패방은 국가에 공을 세웠거나 부모에 효도를 하거나

또는 남편을 위해 정절을 지킨 인물들, 즉 남에게 모범이 되만한 공로가 있는 사람들에게

국가에서 그의 공을 인정하여 황제의 명으로 세워진 것들이다.


공덕(功徳)패방 정절(貞節)패방 등이 있다.

따라서 패방이 많다는 것은 그 지역에 인물이 많이 났다는 것을 말하며

이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매우 큰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패방의 기둥은 2~6개이며 낮게는 수 미터에서 높게는 10여 미터에 달한다.

지붕을 여러 층으로 얹은 것도 있다.


나무로 만든 것을 목패방이라 하고, 돌로 만든 것을 석패방 또는 석루(石樓) 그리고 패루(牌樓)라고도 부른다.

인재를 많이 배출한 후이저우에는 패방이 넘쳐난다.  


 이곳 패방은 모두 7개인데 명대(明代)의 것이 3개, 청대(淸代)의 것이 4개이다.

흡현 주변에서는 어디로 가든지 패방이 보이는데 이곳이 가장 아름답다.


드넓은 논 속에 7기의 패방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은 음악적인 조화마저 느끼게 한다.

이것들은 소금장수를 하면서 부를 이룬 포씨(鮑氏)가 일족의 공적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포찬효행방

 

자효리방

포문령처왕씨 결효방


락선호시방


포문연처오씨결효방


포상헌상서방

 




Baojia 포가화원


포가화원은 청나라 건융, 가경년간에 저명한 휘상 염법도원춘추시기
이름있는 승상 “관포지교”에 나오는 포숙아의 후대 포기원의 개인화원이었다. 


현재 중국에서 제일 큰 개인 정원과 분재 관람지이다.
이는 세계에서도 둘도 없는 당월 패방군에 위치해 있다.



주로 휘파분경이 주제이고 동시에 국내에서도 유명한 분재들을 모은 정화라고 볼수 있다.
패방군풍경구와 한일체로 용합되어 있어 완벽한 휘상고려를 구성하고 있다.


이는 전영적인 고휘파정원과 휘파포가화원분재가 서로 결합된 중국 개인정원 정화이다 .
소주에 졸정원, 유원, 사자림과 무석에 려원, 매원기명,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 전쟁시기에 파괴되었다.


현재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이는 중국에서 제일 큰 개인정원과 분재풍경구이다.
지금 정식으로 비물질세계 문화유산과 세계기네스기록에 신청한 상태이고 “동방원림지모”라고 불리고 있다.


분재애호자들의 “매가”이다.
패방군풍경구와 한일체로 용합되어 있어 완벽한 휘상고려를 구성하고 있다.


이는 전영적인 고휘파정원과 휘파포가화원분재가 서로 결합된 중국 개인정원 정화이다 .
소주에 졸정원, 유원, 사자림과 무석에 려원, 매원기명,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 전쟁시기에 파괴되었다.


현재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이는 중국에서 제일 큰 개인정원과 분재풍경구이다.
지금 정식으로 비물질세계 문화유산과 세계기네스기록에 신청한 상태이고 “동방원림지모”라고 불리고 있다.


주요 관광 프로젝트의 분재 정원 : 포가화원에는 정품원, 유파원, 산석원이 있다.

분재정원은 산석분재를 주요로 하고 화초나무분재를 보조로 하고 있다.


휘주사람, 황산스타일, 천상인간 등을 주제로 했다.

제일 큰것은 정원에 제일 안쪽에 있는 강산유지다교이다.


정원내에 분재들은 대다수가 가지가 휘여든 목본식물로 주로 재배상대로 하고 있다,

모습들은 다양하여 줄기고 굵고 커서 신기한 것도 있고 형태가 구블구블하여 고풍스러운 것도 있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것도 있고 아기자기하게 귀여운 것도 있어 미감을 장식할수 있는것들로 있다.

그 중에는 분재예술인이 수년간 열심히 재배해낸 휘파특색이 농후한 남국풍정 있다.


 주로 넓은 풀밭, 입구광장, 광장합, 사계절화원(식물풍경구,춘하추과각색식물관광구),

향토화원(황산포가화원지구특색식물), 휘주문화 전시관(유명한 서예나 화가가 모은 진적들,문방사보 등), 다원파, 송림파,

유락호, 수조호, 관어지, 경제수생식물원(), 산수폭포, 유람선 부두, 분재재배기지, 도바, 다루, 주작방 산수폭포가 있다.

 

공원의 보물

 


"남국풍정"는 가지높이가 1.28 m,넓이는 2.8 미터이다. 
현재 중국에서 제일 으뜸으로 가는 대형고용분재 중의 하나로 이백여 년의 역사가 된다.


제일먼저 포씨화원의 수집품이었다. 후에 광동으로 유전되었다. 
포가화원에서 제일 비싼 가격으로 회수한 정품이다.


찐하게 그린 눈섭마냥 빽빽하게 자란 나무잎은 땅과 하늘을 덮었고 
엉켜서 자란 가지와 끝없이 자라는 뿌리는  평화롭고 국태민안을 빈다는 뜻을 품고 있다.
세계에서도 보기드문 이 분재는 곤명엑스포, 곤명 국제 원예 박람회에 나타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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