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17장] 함석헌의 야인혼과 저항정신

2013/03/04 08:00 김삼웅

 

 

‘가슴에 화살 꽂힌 사나이’가 함석헌이다.
양극성과 이율배반과 모순율과 동양 대 서양과 옛날과 오늘을, 들사람의 실타래로 교직하여 가이없는 한 필의 비단을 짠 사람이다. 생각은 천의무봉, 활동은 원융무애, 생활은 손방이였다. 그런 속에서 “깊은 사색의 골을 건너고 생각의 용광로에서 정련된 글이요 말이”(김경재) 쏟아졌다.

나는 함석헌의 수백 수천 편의 글 가운데 <들사람 얼>을 특히 좋아한다.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가 자전적 기록이라면 이 글은 함석헌의 자화상이다. 자신의 내면과 자신의 이상을 웅혼한 필치로 그린 자화상이다.

함석헌은 이 글에서 중국 전설상의 성군 요(堯) 임금이 젊은 시절의 친구 소부(巢父)와 허유(許由)에게 나와서 벼슬을 하자고 권하니까, 그들이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면서 영천수 흐르는 물에 귀를 씻었다는 이야기.

장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 왕이 벼슬을 권하자, 제사 돼지나 사당 안에 점치는 죽은 거북이보다 진창속의 돼지, 바다 감탕속의 거북이가 되고자 한다는 이야기.

천하의 권력자 알렉산더가 찾아와 버티고 서 있자, 해 드는데 그림자 지니 비키라고 호통친 디오게네스의 이야기.

한 개 선비로서 권부에 나선 후한(後漢) 광무제가 항상 마음에 걸린 동향의 벗 엄자릉을 궁궐로 불러 진수성찬으로 대접하고 함께 잠을 잘 때 그가 거침없이 황제의 배위에다 다리를 턱 올려놓고 자더라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므로 소부, 허유가 사실로 있었거나 없었거나, 자릉이 정말 광무 배때기를 눌렀거나 안 눌렀거나, 디오게네스가 과연 알렉산더를 사선으로 보았거나 말았거나 그건 문제가 아니다. 그것과는 별 문제로 이 이야기들은 참이다. 따지고 들어가면 다른 것 아니요, 두 편이 있다는 말이다. 요, 초왕, 알렉산더, 한광무 등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문명인과 소부, 허유, 장자, 디오게네스, 엄자릉 등으로 대표되는 ‘들사람’과 그리고 이 세상이 보기에는 문명인의 세상같지만 사실은 들사람이 있으므로 되어간다는 말이다. (주석 9)

함석헌의 야인정신은 조선시대 김시습에 이르러 피날레를 이룬다. 김시습의 이야기지만 자신의 모습이다.

김시습이 미친 모양을 하고 다니며 길가에서 오줌을 쌌다. 그것이 누구냐? 그가 길을 기다가는 주저앉아 “이 백성이 무슨 죄 있소?”하고 통곡하던 바로 그 민중 그 자신이 아닌가? 오줌을 쌌다니 어디다 싼 것일가? 세조의 정치에 대해, 바로 세조의 얼굴에 싼 것이지 뭐냐? 칼을 갈아 물을 잘라도 물은 오히려 흐른다고, 사람의 모가지는 자를 수 있어도 민중의 오줌인 신화, 전설, 여론은 못 자를 것이다. (주석 10)

이것은 함석헌 자신이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이 거처했던 경무대와 청와대에 오줌을 갈긴 정신을 뜻한다.
함석헌을 야인, 들사람으로 부르는 것은 90평생에 한번도 관직에 들지 않았다는 단순한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생각, 사고, 행동패턴에 있어서 야성이기 때문이다. 노자와 장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 문천상의 천지정기(天地正氣)를 좋아하며, 소부와 허유의 ‘세이(洗耳)정신’을 사랑하는 야인이다. 어김없는 자신의 모습이다.

함석헌은 소크라테스의 독백, 세례요한의 석청, 모세의 시나이 산, 디오게네스의 통나무, 간디의 아힘사와 진리파악, 휘트먼의 <풀잎>, 소로의 윌든 호숫가의 통나무집, 매월당 김시습의 ‘미친오줌’, 토머스 페인의 <상식>, 성삼문의 의기를 높이 사고 좋아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권력보다는 야인, 지배보다는 자유를 택한 들사람들이다. 시대의 아웃사이더이다. 당대의 패배자이지만 영원한 승자이다. 이들은 속박이나 규제의 생활이 아니라 자유로운, 해방된 삶을 추구하며, 이것을 신념과 생활에 일치시킨 사람들이다. 함석헌도 이들처럼 자유분방하게, 천의무봉하게 살았다. 일제에 필봉을 들이대고, 소련군대에 달려들고, 이승만의 처를 ‘경무대 여우’라고 질타했다. 박정희 쿠데타의 새벽에 모두 침묵할 때 5.16을 세차게 비판하고, 전두환을 줄기차게 질타했다. 그리고 바벨탑으로 둘러쌓인 기독교계에 맹타를 날렸다. 어용 지식인, 곡필 언론인들에게 끊임없이 경종을 울리고,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국민을 일깨웠다.

함석헌은 권력(자) 비판에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말과 글을 쓸 때는 민중의 말과 글을 구어체로 사용하고, 말과 글이 통하지 않을 때는 서슴없이 행동에 나섰다. 단식투쟁, 삭발투쟁, 거리시위를 감행하고, 재판정에 설 때는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베옷을 입고 출정했다. “자유는 감옥에서 새끼를 치고 나온다”고, 젊은이들에게 감옥가는 것을 두려워말라고 가르치고 몸소 실행했다. 투옥, 연금, 수배, 도청이 일상사가 되었다. 권력과 제도언론이 언로와 지면을 봉쇄할 때는 70노령을 돌보지 아니하고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여 광야의 계명성이 되었다.

함석헌은 야인, 들사람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들사람이란 제 몸을 찢는 사람이다. 그는 문화를 모른다. 기교를 모른다. 수단을 모른다. 체면을 아니 돌아본다. 그는 자연의 사람이요. 기운의 사람이요. 직관의 사람, 시의 사람, 독립독행의 사람이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듣지 않는 사람,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않는 사람이다. 다만 한 가지, 천지에 사무치는 얼의 소리를 들으려 모든 것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다. (주석 11)

바로 함석헌의 자화상이다. 아니 씨알, 이단자, 아나키스트, 아웃사이더, 유목민, 풍류가의 진정한 모습이다. 함석헌은 ‘천지에 사무치는 얼의 소리’를 듣고자 하고, 이것을 씨알에게 알리는 언론인이었다. 그는 이 일을 “하느님의 발길에 채여서”한다고 말하였다.



주석
9> 함석헌, <들사람 얼>, 41~42쪽, 한길사, 1985.
10> 앞의 책, 44쪽.
11> 함석헌, <인간혁명>, 일우사,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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